성범죄자도 몸치료 OK… 엉터리 법에 무법천지[이슈&탐사]

국민일보

성범죄자도 몸치료 OK… 엉터리 법에 무법천지[이슈&탐사]

[상담시장 X파일] <6화>도떼기 상담시장①

입력 2022-06-04 00:02 수정 2022-06-04 00:02
이슈&탐사팀 박장군 기자가 한 민간자격 발급업체에서 2시간 만에 딴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펼쳐 보고 있다. 엉터리 심리상담사가 쏟아지는 배경에는 그럴싸한 자격증을 쉽게 내주는 민간자격시장이 있다. 이한형 기자


“난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집에서 (심리상담으로) 아주 알차게 돈을 벌고 있다.” 자칭 심리상담 고수라는 남자가 전화상담 중에 내담자에게 자랑처럼 떠벌렸다는 말이다(엉터리 심리상담사 자격증, 3주 만에 187명이 낚였다). 그는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상대로 엉터리 상담을 하고는 돈을 받아 챙기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내민 자격증은 가운데 글자만 다른 ‘한국 무슨 진흥원’이라는 사설업체 2곳에서 발급한 심리상담사 1급 민간자격 2장이다. 각각 8만8000원짜리 자격증이다. 이걸로는 아쉬웠는지 삼성 공채 출신이니 어디 부부학교 수료니 하는 이력을 덕지덕지 갖다 붙였다. 그는 자신에게 상담받는 사람에게 “나한테 돈 내고 배워서 어플에서 상담하며 돈 벌어라”고도 꾀었다고 한다. 엉터리 상담으로 돈 벌고, 엉터리 상담사를 배출하면서도 돈 벌겠다는 얘기다.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벌 받는다” “양아치짓 하지 마라” 같은 막말을 퍼부었다는 게 피해자 전언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한 자칭 심리상담사가 자격이라며 내세운 민간자격증. 이름이 비슷한 업체 2곳에서 발급한 것으로 돼 있다. 두 업체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이름은 동일했다. 심리상담사 1급 강의 내용과 강사도 같았다. 둘 다 수강료는 무료, 발급비는 각각 8만8000원이었다. 모 온라인 플랫폼 캡처

“기사를 보고 억울함이 다 해소되고 속이 다 후련해졌습니다. 제대로 된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상담을 잘하는 훌륭한 상담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자격 상담사들이 좀비처럼 등장, 활개치고 다니는 이러한 행태는 속히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을 통해 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어처구니없겠지만 저 ‘상담고수’가 저지른 불법은 하나도 없다. 애초 법으로 정해진 심리상담 자격이라는 게 없다. 그러니 자격이 아예 없어도 심리상담사를 자처할 수 있다. 원하면 심리상담센터도 차릴 수 있다. 성범죄, 폭력, 사기 같은 전과가 있어도 가능하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찬 심리상담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런데도 심리상담사나 심리상담센터를 도맡아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이슈&탐사팀이 확인한 이 세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엉터리 자격도 신청만 하면 등록된다

민간자격을 관리하는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에서 3일 '심리'로 검색한 결과. 다양한 심리상담, 심리치료 관련 자격이 4252건 등록된 것으로 나온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 캡처

엉터리 심리상담사 난립 배경에는 헐값에 자격을 공급하는 민간자격시장이 있다. 상담시장만큼이나 관리가 허술한 영역이다. 온갖 자격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간자격 발급업자들은 자기주도학습코칭지도사부터 반려동물관리사까지 손을 안 대는 영역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돈벌이가 되는 장르가 심리상담, 심리치료다. 심리 관련 민간자격 이름을 한번 보자. 성심리, 컬러심리, 원예심리, 미용심리, 타로심리, 다문화심리, 푸드아트심리, 반려동물타로심리 …. 끝이 없다. 뒤에는 대부분 ‘상담사’나 ‘치료사’가 붙는다. 이런 자격만 업체마다 수십 종을 팔고 있다. 취재팀이 딴 심리상담사 1급은 이 중 하나에 불과하다(“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

민간자격을 관리하는 기관은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이다. 이곳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에 등록된 심리 관련 민간자격은 지난달 19일 기준 모두 4251개였다(‘심리’가 들어가지 않은 상담 관련 자격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2008년엔 9개뿐이었다. 이후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더니 2015년엔 한 해 동안만 543개가 쏟아졌다. 연간 신규 등록건수가 7년 만에 60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고도 매년 400개 이상 더 찍어냈다.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엔 그나마 343개로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513개로 튀어 올랐다. 올해는 지난달 19일까지 벌써 229개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월평균 45개가 넘는 이 속도가 지속된다면 연말엔 550개를 넘기며 사상 최다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만큼 민간자격 만들기가 쉽다. 직능연에 신청서만 내면 된다. 이때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한데 이건 값싼 사무실 하나 임대해서 관할 세무서에 신청하면 그냥 나온다. 자격증을 발급할 자격이 있는지는 묻지도 않는다. 애초 그런 자격도 없다. 이렇게 서류를 준비해서 냈다면 넉 달 정도 기다리면 된다. 직능연도 새 자격의 품질이 어떤지, 신청자가 그 자격을 내줄 만한 사람인지 꼼꼼히 따지지 않는다. 자격기본법이 제한하는 몇 가지 유형만 아니면 된다.

심리상담 현황 묻자 짜증낸 복지부

직능연이 법에 따라 거절하는 민간자격은 크게 3가지다. ①다른 법령이 금지하는 행위 ②국민 생명·건강·안전과 국방에 직결되는 분야 ③선량한 풍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 민간자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분야도 있지만 그건 예외적 경우다. 정부는 심리상담이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적어도 ‘국민 건강’이 포함된 ②번에 가까워 보이지만 의료 행위까지는 아니니 막을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치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규제를 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무부처가 (심리상담을) 치료라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심리적 힐링’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정부는 심리상담을 대수롭지 않은 행위로 본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주무부처는 무슨 심리냐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타로심리) 농림축산식품부(꽃차색채심리) 등이 더러 끼지만 대부분은 보건복지부로 등록된다. 하지만 말이 주무부처지 관련해서 하는 일은 없다. 누가 해당 자격으로 상담소를 차리고 사고를 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다. 취재팀이 접촉한 정부 부처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리상담센터 관리 현황을 묻는 취재진에 당연하다는 듯 “심리상담센터가 저희 소관은 아니죠”라는 말부터 했다. 그는 “카운셀링(상담) 영역이 굉장히 넓은데 여기에 관련된 민간자격증이 5000개가 넘는다”며 “심리상담센터는 개설할 때 마트랑 똑같다. 사업자등록만 하면 된다. 그래서 복지부가 소관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세간의 심리상담은 복지부가 간여하는 ‘정신건강을 위한 심리서비스’와는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리상담센터들을 관리하는 별도 기관이 없는 거냐는 질문엔 “그것도 아니고 (그냥) 이익단체라니까요”라며 답답해 했다. 그는 “마트 개설할 때 정부가 관리하는 거 봤느냐”며 “이게 퀄리파이된(자격을 갖춘) 서비스여야 된다고 생각했으면 본인들(관련 학회 등)이 시작 때부터 민간자격증을 좀 제어를 하거나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자도 몸치료사 자격 딸 수 있다

여기 2명의 전과자가 있다. 한 명은 여자아이에게 몹쓸 짓을 해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A씨. 다른 한 명은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몰다 행인을 치는 바람에 금고형 집행유예를 받은 B씨. 둘 중 심리상담사 1급이니 2급이니 하는 상담 관련 민간자격을 만들어 팔 수 없는 사람은 누굴까. 아니, 누구여야 할까.


무면허 운전자 B씨는 안 되지만 성범죄자 A씨는 된다. 이상하지만 현행법이 그렇다. B씨는 집행유예가 끝날 때까지 민간자격에 관련한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A씨는 심리상담 자격증 발급기관을 차릴 수 있다. 스스로 전문가라며 여성 회원을 직접 교육하는 것도 가능하다. A씨가 살인을 저지르고 출소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자격 종류도 상관없다.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몸치료사, 성상담사, 아동심리상담사 …. 듣기만 해도 아찔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가능하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또 이런 자격을 따서 전문가 행세도 할 수 있다.

자격기본법은 국가기술자격법이나 국가자격과 관련된 법을 어겨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집행유예 중인 경우에만 자격 등록을 막는다. ‘자격’에 관한 법을 위반했을 때만 제재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무면허 운전자는 처분 수위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아동성추행범이나 살인범 등 강력범은 몇 년을 살고 나와도 제재 대상이 아니다. 결격사유를 ‘자격’이라는 단어로 좁혀 놓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생긴다.

최근 실제로 한 성범죄 전과자가 민간자격을 발급하겠다며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만들어 팔겠다는 자격증은 신체 접촉이 포함된 분야였지만 역시 제지당하지 않았다. 이럴 때 자격 관리 기관은 주무부처에 “저 사람 주의 깊게 보라”고 귀띔해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법이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취재팀이 확인한 주무부처들은 “그걸 우리가 왜?” 하는 반응을 보였다. 요주의 인물을 알려주더라도 제대로 챙겨볼 것 같지 않았다.

“좀 극단적으로 얘기할게요. 자격발급업체 대표가 살인죄로 감옥에 갔어요. 그럼 그 사람이 등록한 민간자격을 날렸으면 싶잖아요. 근데 못 해요. 자격기본법상 형법을 위반한 경우는 못 날려요. 사기꾼도 마찬가지고요.” 심리상담 관련 민간자격 실태를 잘 아는 이 취재원은 “심리상담은 특히 가스라이팅하기 딱 좋은 분야”라며 “그러니 의료처럼 국가자격화하고 자격기본법에도 갱신제도를 넣어서 (기존 민간자격을) 하나씩 정리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민간자격 발급하는 사람들이 복지부 앞에 가서 데모를 하겠죠. 그럼에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민간자격 포장지 돼버린 주무부처들

민간자격은 일단 등록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자격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발급 절차는 적절한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는 사후에도 없다. 검증이 전무하다. 업자들은 매년 자격당 부과되는 등록면허세만 꼬박꼬박 내면 된다. 스스로 폐지하지 않는 이상 발급 권한은 그대로 유지된다. 새롭게 추가될 뿐 사라지지는 않으니 자격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정부는 업체들이 자격별로 검정연도, 검정횟수, 접수자·응시자·취득자 수와 합격률 등 자격 취득 현황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공개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수치를 부풀려도 알 길이 없다. PQI를 확인하니 대부분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취재팀이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딴 업체도 올해 4월 말까지만 해도 취득자 정보를 공시하지 않았다. 취재가 본격화하자 어느새 빈칸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한 민간자격발급업체 홈페이지에 올려진 심리상담사 1급 자격 소개. 주무관청이 보건복지부라고 밝혔지만 이는 복지부가 해당 자격의 전문성을 보증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정식 등록됐다는 것 역시 특별한 의미가 없다. 신청만 하면 거의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해당 업체 홈페이지 캡처

업자들은 자신들이 내주는 자격이 국가자격인 것처럼 보이려고 자격증 소개에 주무부처를 적어 넣는다. 자격증에 박기도 한다. 예컨대 심리상담사는 복지부, 스포츠심리상담사는 문체부, 부부심리상담사는 여성가족부가 각 자격을 보증하는 기관인 양 적힌다. 해당 자격과 관련해 실질적 기능을 하지 않는 정부 부처들이 정작 업자들에겐 근사한 포장지로 쓰이는 셈이다. 이건 불법이 아니다. 각 부처를 승인·심사·검증기관으로 적으면 거짓·과장광고가 되지만 ‘주무부처’라고 표기하거나 그냥 이름만 쓰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이름값은 톡톡히 누리는 것이다.

그 법안을 왜 썩히고 있나

심리상담업계의 혼탁함과 이를 부채질하는 민간자격 실상을 정부나 정치권이 모르지 않는다. 국회엔 자격기본법을 보완하는 개정안이 전부터 3개나 올라와 있다.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4월 대표 발의한 법안이 그나마 가장 종합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교육부와 협의한 이 개정안은 민간자격 발급업체의 결격사유에 ‘벌금형 이상의 성범죄’를 새롭게 추가하고 등록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해 사후검증 절차를 두는 게 골자다.


이거라도 추진하면 될 테지만 법안은 발의된 지 1년을 넘기도록 국회 상임위원회 서류더미 속에 묻혀 있다. 언제 통과될지 기약도 없다. 국회는 정쟁거리가 아니니 관심이 없고, 정부는 법이 그러니 어쩌겠냐며 복지부동이다. 우리만 몰라서 엉터리 상담사들에게 당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결격사유를 등록할 때 한 번만 보고 안 보는데 갱신제도가 생기면 5년 뒤에 또 들여다볼 수 있다”며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갈 시점인 만큼 국회가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떼기 상담시장②’에선 심리상담사 자격 법제화를 둘러싼 갈등을 전한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 시리즈는 국민일보 홈페이지 이슈&탐사 코너(www.kmib.co.kr/issue)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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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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