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6·25 전쟁 때 ‘기독교 의용대’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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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6·25 전쟁 때 ‘기독교 의용대’ 조직했다

입력 2022-06-06 18:04 수정 2022-06-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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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오른쪽 두번째) 기독교사상 주간이 2003년 미국 워싱턴주 시에틀에서 생전의 김병섭(가운데) 장로를 인터뷰 한 뒤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흥수 주간 제공


1950년 6·25전쟁 발발 초기 개신교 지도자들이 풍전등화에 놓인 국가를 지키기 위해 ‘기독교 의용대’를 조직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도자들은 국방부와 협의해 모병과 신분증 발급, 기초 훈련 등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부대 창설을 위해 상당한 논의를 진행했다.

다만 기독교 의용대 이름으로 참전하지는 못했다. 3000여 명에 달하던 의용대원은 북한군의 빠른 남하로 제대로 된 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국군 통신대와 미군에 편입된 뒤 전투에 참여했다. 당시 미군에 편입된 의용대원 300여 명이 카투사(주한미군 배속 한국군)의 전신다.

자칫 묻힐 뻔했던 역사를 발굴한 건 윤경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과 김흥수 기독교사상 주간, 서정민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최기영 서강대 교수 등 역사 학자였다. 이들은 2003년 미국 워싱턴주 시에틀의 김병섭 장로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의 육성을 담았다. 김 장로는 인터뷰 직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방대한 분량의 녹취록 일부는 2016년 목원대 신학연구소가 발행하는 ‘신학과 현장’에 실었다. 김 주간은 김 장로를 비롯해 의용대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인터뷰까지 추가해 기독교사상 6월호에 게재하며 기독교 의용대의 전말을 공개했다.

김 장로는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면려회전국연합회 회장으로 피란 중 대전에서 한경직 목사를 만나 이 같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의용대는 기독 청년들이 앞장서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출범했다. 논의의 시작은 대전에서였지만 국방부와 만나 구체적인 협의를 한 건 대구에서였다.

한 목사와 김 장로는 대구에서 장경근 국방부 차관을 만나 연대급(3000명) 모병은 교회가 하고 신분증 발급과 훈련·무기·식량 지원은 국방부가 맡는다는 내용의 협의를 마쳤다.

김 장로는 녹취록에 “7월 중순부터 대구 시내 주요 교회와 중심가에 포스터를 붙여 모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면서 “대구제일교회와 남산교회, 서문교회 등 세 교회를 병영으로 사용했고 찬송 ‘십자가 군병들아’를 군가로 제정한 뒤 대구 계성학교 운동장에서 국방부가 파견한 교관이 훈련을 담당했다”는 내용을 남겼다.

그는 “당시 공산당은 민족의 원수로 여기는 분위기가 컸고 교회가 나서 싸움을 말리자는 것보다 악에 맞서 생명 걸고 싸우자는 투쟁 여론이 컸다”면서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 놈들에게 박해당하고 해방 후 공산당에게 박해당하며 생긴 반감이 상당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주간은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지원병 중에는 강문규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김소영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 총무 등 훗날 사회 지도급 인사가 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다만 북한군 남하 속도가 빨라 7월 말 서둘러 부산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편제를 꾸리지 못했고 부산의 한 우시장에 모였던 병력이 국방부와 미군의 요청에 따라 각 부대로 재편돼 흩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급조된 기독교 의용대가 무리하게 참전해 전멸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용대 조직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국군과 미군으로 흩어져 전투에 참여한 게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기독교 의용대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조직한 '기독교 의용대 동지회' 회원 20여명이 2002년 대구에서 모임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주간 제공

국군과 미군에 배속돼 참전했던 의용대원들은 전쟁이 끝난 뒤 ‘기독교 의용대 동지회’를 조직해 모임을 계속했다.

김 주간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독교 의용대원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했다”면서 “이들은 ‘기독교 십자군 신상 기록표’까지 만들어 자신들의 활동상을 남기기 위해 애썼다”고 밝혔다.

이종배 새문안교회 장로가 2002년 작성한 '기독교 십자군 신상기록표' 모습. 김 주간 제공

기독교 십자군은 기독교 의용대의 첫 이름으로 강문봉 국방부 교육국장이 제안했었다. 하지만 십자군까지 창설되면 한 나라에 두 개의 군대가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기독교 의용대가 됐다.

김 주간은 “기독교 의용대에 대한 기록은 국가의 위기 앞에 용기를 내 군대까지 조직해 맞서려 했던 신앙 선배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라면서 “이번 사료 공개가 전쟁 중 한국 교회가 다양한 모습으로 이바지했던 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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