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K 탑승해서 본 대한민국…호국의달 한·미 연합 초계비행

국민일보

F-15K 탑승해서 본 대한민국…호국의달 한·미 연합 초계비행

입력 2022-06-23 18:27
공군 F-15K 편대가 21일 부산광역시 상공을 초계비행하고 있다. 부산 황령산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 광안대교와 해운대를 끼고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부산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보급기지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최대의 수출항이자 세계 7위권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자랑하는 부산항으로 대표되는 도시다. 공군 제공

지난 21일 오후 2시쯤 대구공군기지 내 격납고에서는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F-15K 전투기 4대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국의 달을 기념하는 ‘한·미 연합 초계비행’에 나서기 위해 마지막 점검이 진행됐다. 공군은 6·25전쟁 주요 전적지 상공을 차례로 비행하며 호국선열을 기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단에선 국민일보를 포함해 4명이 취재진으로 선발됐다. 한·미 연합 초계비행에 기자단이 동승한 것은 처음이라고 공군 관계자가 전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한·미 연합 방위태세가 한층 더 굳건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차원으로 풀이됐다.

지난 21일 진행된 한·미 연합 초계비행에 앞서 공군 F-15K 탑승한 조종사와 기자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공군 제공

탑승 전 약 20분간 제11전투비행단 소속 강요한 소령이 브리핑에 나섰다. 강 소령은 ‘대구기지→포항·울산→부산·거제도→합천 해인사→세종→평택→강릉→대구기지’로 이어지는 경로를 설명하고, 세부 임무를 점검했다.

편대원들은 4대의 F-15K에 2명씩 탔다. 기자는 후방석에 동승했다. 전투기에 시동이 걸리면서 발생한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서야 전투기에 탔다는 실감이 났다. 오후 3시5분쯤 마침내 이륙 사인이 떨어졌다. 엔진의 굉음과 더불어 기체가 활주로를 빠르게 내달리더니 순식간에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제트 엔진의 폭발적인 가속에 몸이 순간 뒤로 젖혀졌다. ‘억’ 소리가 나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구름 한복판이었다.

구름을 통과하자 대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구기지는 공군 역사에서 뜻깊은 장소다. 강 소령은 “6·25전쟁 당시 우리 공군이 미 공군의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처음 들여와 1950년 7월 3일 역사적인 출격을 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기지를 떠난 후 불과 6분 만에 포항 상공에 진입했고, 이내 울산에 이르렀다. 편대는 울산공단과 포항제철 일대를 지나 부산항 위를 날았다. 공군은 “우리나라의 지난해 수출액이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을 환기시키는 메시지를 담아 경로를 정했다”고 밝혔다.

편대는 거가대교 상공을 거쳐 거제 조선소 상공을 날았다. 전쟁포로를 수용했던 거제도 수용소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뜻도 담겼다. 현재는 일부 유적만 남아 있지만, 이념으로 갈라진 전쟁이 부른 참상을 상기시키며 전쟁 억지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오후 3시35분쯤엔 경남 합천 일대에 들어섰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위를 날았다. 전쟁 당시 공군 조종사들은 가야산에 숨어든 북한군을 폭격할지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들은 고심 끝에 기수를 돌렸다고 한다.

편대는 오후 3시58분 무렵 정부세종청사가 위치한 세종시에 들어섰다. 이곳부터 평택 구간까지 한·미 연합 초계비행이 실시됐다. 미 공군 F-16 4대가 우리 공군 편대와 불과 수십미터 이내의 간격으로 다가와 팀워크를 과시했다. 2번기를 조종한 박진응 대위는 “평소 수시로 연합비행을 해온 덕에 이번과 같이 상호 근접 초계비행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후 4시2분 무렵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인 삼성전자 평택공장의 전경이 펼쳐졌다. 평택은 6·25 당시 미군 파견부대가 북한군과 맞서 첫 교전인 ‘죽미령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연합 초계비행이 마무리되자 우리 측 편대는 “비행 지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편대는 기수를 동쪽으로 틀어 강원도로 향했다. 오후 4시18분쯤 강릉 상공에 도달했다. 3번기를 조종한 한승훈 대위는 “강릉은 6·25 당시 공군의 전진기지가 있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우리 공군은 북한군의 중부전선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역사적인 단독 출격 작전을 폈다.

강릉 해안을 지나자 태백산맥의 준봉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종사들은 호국 영령들의 피땀으로 지켜진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할 것을 다짐하며 오후 4시55분쯤 기지로 귀환했다. 지상에 도착하니 머리와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날 초계비행은 약 3㎞ 안팎의 상공에서 시속 740㎞의 순항속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후방석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상당했다. 특히 강한 자외선이 곧장 내리쬐어 에어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4번기 조종사 김동욱 대위는 “오늘처럼 순탄한 비행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평소엔 급가속·감속, 급선회기동 등을 포함한 전투훈련 비행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행훈련 과정에서 조종사들은 중력의 약 6~9배에 달하는 압박을 수시로 겪는다. 편대는 강릉에서 기지로 복귀하면서 취재진에게 급선회기동 등 고난도 비행을 3~4차례 시연했다. 기자는 수초 간 6~7G 정도의 압박을 받았다. 체중의 6~7배의 중량을 온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숨이 턱 막히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기자가 고통을 호소하자 박 대위는 “조종사들은 끊임없이 교신도 나누고, 제대로 편대를 유지하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도 해야 한다”며 웃었다. 다행히 비행복 위에 겹쳐 입은 일명 ‘G-슈트’가 복부·허벅지 등을 자동으로 강하게 압박해 하체로 쏠린 혈액이 상체로 정상 순환했다. 덕분에 비행 중 기절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비행 내내 편대는 약 20m 폭으로 밀집 대형을 이루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F-15K의 전폭이 13.5m인 점을 감안하면 겨우 전투기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간격이다. 공군 관계자는 “훈련 시엔 3m 정도로 간격을 좁혀 비행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귀띔했다.

대구=국방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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