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그저 조금 ‘다른 이웃’일 순 없나요

국민일보

발달장애인, 그저 조금 ‘다른 이웃’일 순 없나요

[인터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발달장애 자녀 둔 다섯 명의 어머니

입력 2022-06-25 18:00 수정 2022-06-25 18:00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왼쪽부터) 정순경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 강복순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 서은석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사무국장, 방수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이 국민일보와 인터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다운증후군 처음 보는 데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영희(정은혜 역)를 보고 정준(김우빈 역)이 변명처럼 내놓은 말이다.

누구나 극 중 정준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은혜씨와 그 어머니인 장차현실씨 인터뷰(7일자 1·8면)를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것은 ‘은혜씨가 과연 복잡한 질문을 이해하고 잘 답해줄 수 있을까’였다. 이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인터뷰 당일 은혜씨는 기자가 던지는 질문에 조금은 느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답을 내놨다. ‘우문현답’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은혜씨가 대답을 준비할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에 대해 우리가 비장애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 갖춰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반복된 삭발투쟁으로 짧은 머리 위에 모자를 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5명이 우리를 반겼다.

김수정(56) 서울부모연대 회장은 뇌병변·자폐·시각장애를 가진 아들(28)의 어머니다. 강복순(54) 부회장은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지닌 딸(23)과 함께 산다. 서은석(47) 사무국장의 아들(21)은 자폐를 가졌다. 정순경(52) 부회장과 방수진(43) 조직국장은 뇌병변·지적장애를 가진 21살, 15살 아들을 각각 키우고 있다.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선 긋기’
눈앞에 장애인이 있는 데도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그저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로 여기며 동정하거나. 이렇듯 편견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태도 하나하나에 장애인과 그 가족은 울고 웃는다.

“아들이 인물은 좋은데…” 여느 어머니가 자기 아들 칭찬을 마다하겠냐마는 장애아들을 둔 수정씨에게 이 말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수정씨는 주변으로부터 “아들은 잘생겼는데 인물이 아깝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 뒤로 꼭 “요새는 수술하면 낫는대. 줄기세포도 좋대”라는 말이 따라온다고 했다. 수정씨는 “대놓고 차별하는 분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교묘하게 배려라는 핑계로 장애인 부류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세요”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어머니들은 사회가 장애인을 안타까운 존재로, 어딘가 아픈 존재로, 시혜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복순씨는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는 “제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어린아이들이 ‘저 언니 왜 저래’하고 물어봐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저 언니 아프니까 (말하면) 안돼’하고 아이랑 그 자리를 피해버리세요. 우리는 언제든지 설명해 줄 수가 있는데 묻지도 않고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겐 그 순간 ‘장애인은 아프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리는 거죠”라며 “저희 딸은 단지 이렇게 태어났고 장애를 가지고 일상생활을 하는 아이예요. 그걸 다양성으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은 그저 아픈 사람이라고 선을 그어버리죠”라며 한숨 쉬었다.

방수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어머니들은 장애인을 향한 그릇된 편견이 차별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특히 비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향적 정보를 접하면서 편견이 부추겨졌고, 차별도 굳어졌다는 것이다.

수정씨는 최근 발달장애인이 가해자가 된 사건의 보도를 언급하며 사건·사고의 단편만으로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안 좋은 소식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고, ‘상동 행동(같은 동작을 일정 기간 반복하는 행동)’을 위험신호로 보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자폐를 가진 초등학교 여학생의 활동 지원을 함께 해온 수진씨는 이 시선을 피부로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발달장애인이 가해자가 된 뉴스가 막 나온 시점이었다.

그는 “애가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니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 이상으로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따가운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생 어린 여자애가 위협적이면 얼마나 위협적이겠어요”라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은석씨는 어느덧 엄마보다 훌쩍 커진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가끔은 아들을 무서워하는 주위 시선을 이해한다고 했다. “키가 175㎝에 90㎏이 넘게 나가는 친구가 내리막길을 뛰어서 내려가면 주위 사람들이 홍해처럼 싹 갈라져요. (모르고 보면) 당연히 무섭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석씨는 장애인의 이러한 행동이 폭력적 행동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동 행동은 누군가를 해치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라, 어떠한 자극으로 인해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반응이에요”라며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상동 행동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같이 살아가지 않았기에, 같이 사는 법을 모른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아니잖아요.”

‘왜 차별적 시선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복순씨는 이렇게 답했다. 장애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은 그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현실이 누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강복순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열연을 펼친 은혜씨로 흘렀다. 수진씨와 순경씨는 “드라마에서 장애인을 향한 긍정적인 키워드를 보여줘서 좋았어요”라며 “막연히 모르니까 무서운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이 장애에 관심을 두고, 우리도 노출이 많이 되면 사회가 더 통합될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은석씨도 “함께 마주치는 과정을 통해 비장애인도 장애인에 대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게 중요해요”라며 동조했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 한 명으로 스며든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저희 아이를 많이 이해해주세요. 어릴 적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왔거든요. 어르신들은 ‘로보캅처럼 다리에 기계를 차던 그 친구구나’하며 알아봐 주세요. 이젠 덩치가 많이 크긴 했지만요. 동네 꼬마들도 먼저 인사하고 말도 걸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어디 다른 데로 갈 수가 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서은석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사무국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사회의 시선이 달라질 때 장애인 가족의 삶이 변화한다고 느낀 것은 은석씨뿐만이 아니었다.

“새로 바뀐 담임 선생님이 장애인들의 권리나 다양성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수업에 적용하니까 아이들이 너무 달라진 거예요. 작년엔 우리를 피했던 아이들이 저희 아들이 등교하거나 하교할 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저한테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하고요. 똑같은 아이들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었죠.”

수진씨는 통합 교육을 받던 아이가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달라진 등굣길을 이렇게 떠올렸다. 비장애인 아이들 틈에서 아이가 잘 지낼까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다던 수진씨는 그때 장애인을 향한 올바른 시선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국가 정책과 제도 개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수정씨는 ‘분리’를 기조로 한 정책과 지원을 문제로 꼽으며 “최중증 장애는 당연히 시설로, 특수학교로 가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 정책의 일반적인 기조에요. 다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도록 지원한다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자연스럽게 보고 익숙해질 거 아니에요”라고 힘줘 말했다.

‘평범한 이웃’이 되고 싶다는 작은 꿈
정순경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어머니들의 꿈은 단지 ‘평범한 이웃’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소박한 꿈을 위해 수차례 삭발 투쟁과 매주 삼각지역 앞에서 추모회를 하며 국가의 노력과 사회의 변화를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런 일이 있었어?”라는 무관심한 반응이었다.

수진씨는 “사람들에게 그저 많은 사건·사고 중 하나로만 인식돼요. 잠깐 반짝하고 원상복귀, 또 이게 반복…”이라며 변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복순씨는 그래서 더 외롭기도 하고 무섭다고 했다. 그는 “주변 반응을 보면 우리가 지금 하는 투쟁들이 우리만의 안타까움이고 여기서만 울리는 메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가 없어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럴수록 어머니들의 외침은 더 절박해졌다. 순경씨는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금연석을 상상하지 못했죠. 그런데 법률로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니까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우리 사회의 장애 인식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정말 많이 참았거든요. 이제는 강제성이 필요해요”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가 만난 다섯 어머니들은 모두들 평범한 이웃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문득 복순씨가 기자에게 “우리 삶이 어때 보이나요. 비참하게 보이시나요”하고 물었다. 기자들이 답할 말을 찾는 사이 수진씨가 “저는 제 아이의 장애로 인해서 불행하지 않아요”라며 웃어보였다.

그 대답을 들은 복순씨는 “저희가 우리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부모들이 그냥 내가 키우기 힘들어서 맡기자는 게 아니고 제대로 지역 사회 안에서 살게 하고 싶은 게 저희의 꿈인 거예요. 그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며 힘을 내는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들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다. 어머니들은 3박 4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며 웃다가 곧 진지한 표정이 돼 말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볼 때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근데 장애인도 그저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저희 아이가 제가 죽은 후에도 그냥 지금 사람들하고 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거죠. 그 희망이 이뤄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몰랐다, 배운 적 없다’는 변명 대신 이제는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절실하다는 어머니들. 그들이 거리의 외침을 끝낼 길은 우리 사회가 먼저 손 내밀고,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다.

서민철 인턴기자
이찬규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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