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거절한 까만 솜뭉치, 기어이 구해낸 부산 할머니 [개st하우스]

국민일보

방송국 거절한 까만 솜뭉치, 기어이 구해낸 부산 할머니 [개st하우스]

입력 2022-07-09 09:04 수정 2022-07-09 09:04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부산 서구의 꽃마을을 떠돌던 2살 스탠더드푸들 순둥이 모습. 지난 3월 발견한 60대 김천수 할머니의 후원으로 구조됐다. 제보자 제공

“부산 서구의 꽃마을이라고 하면 지역에서는 유명한 산책로거든예. 그날은 우리 강아지가 짖어가 풀숲에 가보니까 새하얀 푸들 한 마리가 탈진해 퍼질러가 있더라고예. 신경이 쓰여서 도저히 안돼가 저거 사료랑 먹을 거 좀 챙겨서 아침저녁으로 줬습니다. 일주일쯤 챙기다 방송국이랑 동물단체에 구조요청을 하는데 죄다 거절을 당했어예.”
-스탠더드푸들 순둥이 구조자, 부산 60대 김천수 할머니

지난 봄 김 할머니는 산책길에 커다란 유기견을 마주쳤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공원을 떠돌던 겁 많은 하얀 스탠더드 푸들이었죠. 할머니는 여기저기 동물단체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모두 거절.

많은 이들이 유기견을 목격하면 TV 속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방송국에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구조 요청의 95% 이상은 거절당합니다. 매정하다고 생각하나요? 한 생명을 지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구조는 끝이 아니죠. 돌보고 치료하고 입양자를 찾는 긴 과정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불쌍해도 구조 이후 대비가 없으면 어떤 단체도 쉽사리 나서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대다수 유기견의 운명은 이 순간 결정됩니다. 떠돌던 아이는 구조되지 못한 채 계속 떠돌다 결국 세상을 뜹니다. 부산의 2살 푸들 순둥이는 다른 길을 갑니다. 모든 건 간절했던 김 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순둥이의 구조 이후를 책임지기로 약속하면서 떠돌이 유기견 푸들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비틀비틀 “도와주세요”… 공원 떠돌던 새하얀 푸들

지난 3월 말, 김 할머니는 반려견을 데리고 옆 동네인 부산 서구의 꽃마을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인적 드문 숲길을 지나는데 얌전했던 반려견이 갑자기 짖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수풀 속을 살펴봤고, 잠시 뒤 탈진한 듯 힘없이 웅크린 18㎏급 하얀 스탠다드 푸들을 발견합니다. 푸들 특유의 솜사탕처럼 풍성한 털은 누더기 솜마냥 시커매져 있었어요. 수개월은 족히 떠돌이 생활을 한 듯했습니다.

녀석은 경계심이 무척 강했습니다. 낯선 할머니를 보고 놀라 10여m를 뒷걸음질쳤어요. 김 할머니는 “공원 구석에 숨어 지내느라 사람들이 버린 음식찌꺼기 같은 것도 못 먹은 듯했다”며 “근데 달아나면서도 내 시야를 맴도는 모습이 도와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유기견 시절 순둥이의 모습. 길게 자란 털이 오염된 채, 공원을 떠돌고 있었다. 제보자 제공

반려견으로 인기가 많은 푸들은 종류에 따라 3㎏급 토이푸들, 8㎏급 미니어처 푸들, 18㎏급 스탠더드 푸들 로 나뉩니다. 생후 3개월 퍼피 시기까지는 덩치가 비슷하지만 생후 6개월을 넘기면 크게 성장합니다. 부모견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분양받았다가 성견이 된 생후 1년 무렵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 비운의 견종이지요. 할머니가 마주친 푸들은 깨끗한 치아상태로 보아 2살 미만 어린 개체로 추정됐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아침저녁으로 공원을 찾아가 녀석의 밥그릇에 물과 사료를 부어주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녀석은 할머니가 떠나면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어요. 1주일쯤 지나자 녀석은 1~2m 앞까지 할머니를 마중 나왔죠. 사료를 챙겨주는 다른 주민의 반려견을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성격도 밝아졌어요. 할머니는 덩치만 컸지 순한 푸들에게 순둥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포획된 순둥이 모습. 김 할머니는 "성격이 순해서 고분고분하게 포획틀에 걸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제보자 제공

“순둥이 구조, 함께 해주세요”…3000명 마음 울린 구조 투표

순둥이에게 반려견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싶었던 김 할머니는 동물 구조사연을 방영하는 TV방송국과 동물구조단체 등에 전화를 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에 모두 전화를 해봤지만 ‘구조 여력이 없다’ ‘다른 곳을 소개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이틀 넘게 기다려도 결국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할머니의 구조요청이 거절당한 데에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동물 구조는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릴지 모르는 긴 구호 절차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고자가 구조 이후를 책임지지 않을 때는 구조단체나 방송국도 선뜻 구조에 나서지 못합니다. 그 모든 유기견을 다 돌보고 치료하고 입양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문득 수년 전부터 정기후원하고 있던 작은 동물구조단체를 떠올렸죠. 회원수 3000명의 팅커벨프로젝트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팅커벨에는 접수된 동물의 구조 여부를 회원 온라인 투표로 결정하는 독특한 ‘구조요청 시스템’이 있습니다. 신고자가 월 20만원 후원을 약속하면 일주일간의 구조요청 투표를 개설할 수 있고, 이때 다른 회원들은 1만원의 책임분담금을 내면 찬성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구조를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나누도록 시스템을 만든 겁니다. 이렇게 마련된 기금을 바탕으로 구조된 동물들은 수년간 안락사 없이 쉼터에서 입양을 기다리게 되죠.

후원자 수만 명 규모의 단체들 중에는 구조 여부를 대표 혹은 소수 운영진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량을 벗어난 무리한 구조를 벌이거나 구조 원칙이 일관되지 않아 비판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팅커벨은 회원을 운영에 참여시킴으로써 가용 예산이 부족한 소규모 단체라는 단점을 보완한 겁니다.

김 할머니는 순둥이의 구조 투표를 개설하기로 합니다. 할머니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 월 20만원이 부담스러운 건 맞지만 순둥이에게 새로운 견생을 선물하고 싶어 주저 없이 후원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구조에 동의합니다" 지난 4월 순둥이의 구조 동의를 묻는 투표가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포털 카페에서 열렸다. 김 할머니의 구조 요청에 109명의 회원이 호응하면서, 최소 정족수 50명을 넘겼다.

지난 4월 11일, 순둥이의 구조 동의를 묻는 투표가 열립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팅커벨 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는 “투표 결과 정회원 107명의 동의와 295만원의 구조 분담금이 걷히면서 순둥이의 구조는 확정됐다”면서 “소규모 단체로서 예산부족 등 어려움이 많지만 회원들에게 어려움을 알리고 함께 분담한 덕분에 매년 250마리의 유기견을 구조해 입양 보낸다”고 설명합니다.

마침내 순둥이는 유기견 생활을 마치고 경기도 양주의 팅커벨 보호소에 입소해 가족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이후 김 할머니는 부산에서 400㎞를 달려와 순둥이를 만나고 있어요. 할머니의 사랑과 황 대표의 꾸준한 산책 덕분일까요. 사람만 보면 벌벌 떨던 순둥이는 어느덧 사람과 교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순둥아, 너 이제 살았어" 유기견 푸들 순둥이가 지난 4월 구조돼 김할머니를 반기는 모습. 팅커벨프로젝트 제공

영리한 스탠더드 푸들, 순둥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5월 31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양주의 유기견 쉼터에서 순둥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순둥이의 입양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1년차 유기견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순둥이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무서워하더군요. 자신을 돌보는 쉼터 직원, 황 대표와는 친근했지만 기자가 다가가자 놀라 뒷걸음질쳤습니다. 미애쌤은 “떠돌이 생활 동안 성인 남성에게 많이 쫓겨난 듯하다. 개들의 접근 예절에 따라서 순둥이를 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애쌤은 큰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다가가는 ‘커브워크(Curb walk)’를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개들은 직진하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반면에 큰 원을 그리며 서로를 천천히 탐색하는 커브워크에서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다시 커브워크로 다가가자 순둥이는 놀랍게도 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얼굴을 핥는 등 친근함을 드러냈습니다.

행동전문가가 반원을 그리며 접근하는 '커브워크' 방식으로 순둥이에게 다가가는 모습. 소심한 견공일수록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최민석 기자

사람 손길에 익숙해지는 기초 터치교육도 순조로웠습니다. 순둥이가 먼저 사람 손에 얼굴을 올리면 간식 보상과 함께 얼굴과 어깨 등 다른 부위를 건드리는 교육으로 향후 순둥이가 목줄 착용, 병원 치료, 미용 등 기초 단계를 밟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입니다. 미애쌤은 “순둥이는 푸들답게 영리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가정 입양돼 교육을 몇 주간 반복하면 소심함을 대부분 극복할 것”이라고 총평했습니다.

순둥이가 터치교육을 받는 모습. 터치의 주도권을 순둥이에게 주자, 손길을 받아들였다. 최민석 기자

영리한 스탠더드 푸들 2살 순둥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비록 지금은 위생미용으로 털을 벅벅 민 상태지만 가을쯤이면 털이 자라 순둥이는 사랑스런 푸들의 모습을 되찾을 겁니다. 그 모습을 함께하실 분은 기사 하단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견생 2막을 기다리는 스탠더드푸들, 순둥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체중 18kg, 2살, 중성화 수컷
✔사람을 좋아하지만 소심한 성격
✔입질이나 공격성이 없으며 다른 개에게 사회성 좋음

*스탠더드푸들, 순둥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94번째 견공입니다.
(72마리 입양 완료) 순둥이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tinkerbell0102@hanmail.net으로 문의 메일을 보내주세요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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