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객원기자 칼럼] ‘돈과 영성’

국민일보

[김용원 객원기자 칼럼] ‘돈과 영성’

입력 2022-07-26 17:21 수정 2022-08-01 14:43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김용원 객원기자

돈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돈은 ‘피’며 ‘실탄’이라고 이야기한다. 피와 실탄. 금방이라도 내 몸속으로 들어와 혈관을 타고 흐르며 뇌리에 날아와 박힐 것만 같은 위력 있는 말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려고 애쓴다.

예배당에 나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만 염려하며 육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구한다면 당신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백성들을 내려다보시며 우리 주님은 얼마나 황망해 하실까. 돈이 다가 아니다. 돈은 우리들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 보시기에 주인이 없어 정함이 없는 것이며(딤전6:17),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하셨다.(눅16:10)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재산이 있던 터전을 버리고 떠났다.(창12:1) 욥 역시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렸을 때, 주신 것도 하나님이니 거두어 가시는 것도 당연하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욥1:21-22) 솔로몬 역시 아버지 다윗의 대를 이어 성전을 건축해야만 했다. 그 누구보다도 재정적인 필요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왕상3:5) 아브라함과 욥과 솔로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이 자신을 위한 부를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소유하기를 구했을 때 그 분은 은혜의 바다를 허락하셨다.

교회가 세속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직 이 땅에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목회자나 성도가 많다. 이들은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자신만 아는 부자들은 돈의 유혹과 권세에 속아 넘어가서 아쉽고 불편한 것을 못 느낀다. 돈의 위력을 과시하며 사람을 부리고 종으로 삼는 재미에 빠져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더 많이 모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이들이 보기에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을 찾아와 애원하듯 매달리며 변명만 늘어놓는 나약하고 귀찮은 존재다.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나 연합 사업을 할 때 보면 재정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이 과부의 두 렙 돈을 드리며, 먹고 죽으려고 남겨 둔 한 끼의 양식마저 바치는 자들이다. 가진 것이 없어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축복의 자녀들이 된다. 인색한 부자는 선행을 하자고 하면 갖은 핑계를 둘러대며 귀신처럼 빠져나간다.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며 저 혼자만 배를 불리다가 종국에는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하는 불쌍한 신세가 된다.(눅16:19-31)

주변에서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 목회자들 이야기가 무성하다. 하지만 별처럼 빛나는 미담을 간직한 참 목자도 많다. 자신의 미담을 소개한다고 하면 한사코 손사레를 칠 것이지만 이 시대에 돈보다 하나님을 택한 아름다운 이름들을 한 번씩 꺼내 불러보고 싶다. 그것은 우리사회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회 규모가 있을 경우 담임목사가 정년으로 은퇴할 때 집과 자동차, 퇴직 일시금 등 많은 돈을 드리는 일이 흔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신촌교회 오창학 원로목사(82)는 42년 목회 여정 중에 22년을 신촌교회 담임으로 시무하다가 은퇴했다. 그는 평생 자기 명의의 통장을 가져 본 일이 없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정년으로 교회를 은퇴할 때 2억 원의 퇴직금과 교회에서 마련한 8억 원을 주고 산 아파트를 포함, 10억 원을 드리자 받기를 거절하고 모두 교회에 기부했다. 이 대목에 와서 생각하건대 본인도 본인이지만 사모의 내조 역시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현재는 어마한 금액이다. 그의 기부 습관은 이번 한 번뿐이 아니어서 범인은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병장교로 강원도 원통에서 근무할 때 초가집교회를 리모델링하는데 신대원 입학등록금으로 쓰려고 준비해 둔 퇴직금을 전부 드렸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첫 헌신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목회 여정을 축복하시려고 첫 마중물로 받으신 것이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강원도 황지교회에서 6년 시무하고 떠날 때도 퇴직금을 교회건축헌금으로 바쳤다. 황지교회를 떠나 영락교회로 부임했다. 한경직 목사를 도와 수석부목사를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영락교회 사역을 마감할 때에도 퇴직금을 영락보린원과 모자원에 기탁했다. 영락교회를 떠나 신촌 로터리에 있는 신촌교회를 담임하고 떠날 때도 그랬다. 사람이라 마지막에는 유혹받을 만도 했지만 어김없었다. 어느 목자가 강단에서 외친 설교가 어느 정도 진실이었나를 판가름하는 것은 마지막 떠날 때의 처신을 보면 알 수 있다. ‘My life is my message.’ 간디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간디처럼 그 역시 삶을 통해 그가 달려왔던 참된 목회의 여정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해외 선교도 중요하고 국내 선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더 시급한 일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돈 앞에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처신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처럼 잘 따르고 두려워하는 돈의 규칙을 거부하는 일이다. 우리가 돈을 사용할 때 돈의 권세를 부끄럽게 해야 한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거저 주는 은혜를 선물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믿는 자의 권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불신의 골리앗은 무너지고 전도의 지경이 넓어질 것이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역시 그리스도인의 탐욕과 부의 축척이 위험하다는 것을 계속 경고했다. 그는 누가복음 16:9절을 본문으로 ‘돈의 사용’(The Use of Money)이라는 설교에서 돈에 관한 그의 ‘복음적 경제원리’(Evangelical Economic Rule)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정당하게 많이 벌고’(Gain all you can), ‘가능한 많이 저축하되’(Save all you can), ‘가능한 모든 것을 주라’(Give all you can)는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중에서 마지막에 있는 돈의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벌고 모은 돈으로 혼자만 배불리지 말고 가능한 모든 것을 주며 돈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무엇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결국 돈을 쓰는 것에 귀결된다. 돈의 사용은 한 사람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엄청난 영향력과 권세를 행사하며 믿는 자들마저 종으로 삼으며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며 위협한다. 그때마다 흔들리는 내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 때로는 서럽게 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돈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귀한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자들의 용기와 믿음을 생각할 때 나는 소리 내어 흐느껴 울게 되는 것이다.

◆김용원 객원기자는 부산대 행정대학원 석사, 숭실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전 숭실대 법과대학 강사로 활동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많이 본 기사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