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까지 물 ‘찰랑’… 신림 반지하 ‘기적의 3분’ 있었다

국민일보

얼굴까지 물 ‘찰랑’… 신림 반지하 ‘기적의 3분’ 있었다

입력 2022-08-12 06:00 수정 2022-08-12 06:48
시민들이 지난 8일 밤 10시 폭우로 침수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 갇힌 이웃을 구조하고 있는 모습. SBS 화면 캡처

“됐다! 살았다!”

폭우로 수도권 곳곳을 수마가 할퀴고 간 지난 8일 밤 10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에서는 급박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빗물에 반지하방이 잠겨 어른 얼굴까지 물이 차올랐다. 자칫 참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상황. 이때 이웃들은 반지하방 창문에 달려들어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3분’을 만들어냈다.

급박했던 상황은 현장을 목격한 시민 나종일씨가 제보한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8일 반지하방이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던 곳에서 불과 4분 거리 떨어져 있던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뉴스1과 KBS, SBS 등을 통해 보도됐다.

KBS 화면 캡처

영상에는 반지하방에 이미 빗물이 가득 차올라 있는 가운데 이웃들이 구조에 안간힘을 쓴 장면이 담겼다. 이들은 “이거 깨야 해요” “뒤로 비켜” “차에 가면 창문 깨는 거 있어요. 그것 좀 갖다줘요”라고 외치며 창문을 깨고 안에 있던 이승훈씨를 구하려 애썼다.

빗물은 이미 이씨의 얼굴까지 차올라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이었다. 한 남성은 이씨의 이름을 부르며 “조금만 버텨. 침착해. 침착하게 있어. 조금만 기다려. 불빛 보고 오면 돼. 바로 손잡으면 돼”라고 독려하며 구조에 집중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켜서 구조를 도왔다.

찰나에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이들은 파이프렌치와 소화기 등으로 힘껏 창문을 쳤지만 물에 이미 잠겨 있어 수압 때문에 쉽게 깨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은 유리 파편에 손을 다쳤으면서도 구조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KBS 화면 캡처

“깼어, 깼어!” 소화기로 추정되는 물체로 수차례 때린 끝에 물속에 잠겼던 창문이 결국 깨졌다. “바로바로” “손 손 손! 숨 쉬어!” “다 나왔어, 괜찮아” 급박했던 상황을 추정케 하는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깨진 창문 사이로 이씨가 빠져 나왔다. 이웃들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이씨를 끌어안으며 안도했다. 주변에서 구조를 돕던 시민들은 “아 됐다. 살았다”라며 박수를 쳤다. 찰나 같던 3분의 사투 끝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SBS 화면 캡처

이씨는 SBS 인터뷰에서 당시 빗물이 종아리까지 차면서 탈출하려 했으나 수압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30분 정도만 더 있었으면 저 아마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며 “저도 항상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씨를 구한 이웃 중 한 명인 은석준씨는 당시 사람 소리가 들리자 반지하 호수를 확인하기 위해 주택 안으로 헤엄쳐 갔다. 그는 “발이 안 닿고 천장이랑 머리 하나 차이였다. 장롱도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냥 빼버렸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진학씨는 “약한 부분을 좀 치다보니 (창문이) 깨졌다”며 “그 과정에서 손이 조금 유리조각에 다쳤다”고 말했다.

박종연씨는 이미 다른 반지하 집에서 두 명을 구한 뒤 담벼락을 넘어와 구조에 동참했다고 했다. 그는 “방범창 깨고 여기 먼저 구하고, 여기 아가씨 구하고, 그다음에 저쪽으로 가서 저쪽도 갇혔다고 하더라고”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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