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다고 버려진 이웃집 리트리버를 구조했어요” [개st하우스]

국민일보

“임신했다고 버려진 이웃집 리트리버를 구조했어요” [개st하우스]

입력 2022-10-08 09:03 수정 2022-10-08 09:03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여기는 1700개나 되는 공장이 철거 중인 경기도 김포의 재개발지구인데요. 떠나는 공장주들이 키우던 개들을 버리고 가는데, 유기견 중에는 만삭의 리트리버도 있었어요. 아무리 마당개라지만 평생 따른 주인에게 버림을 받다니, 너무 가엾어서 급히 구조했어요.”
-경기도 김포, 시네폴리스 재개발지구 김정연(가명·55)씨

거주민을 내보내고 건물을 부수는 재개발지역에는 어김없이 유기견 문제가 불거집니다. 재개발지역 유기견은 대부분 공장이나 주택 마당에서 묶여 길러지던 이른바 마당개들인데요. 재개발이 임박하면서 주인에게 폐기물처럼 버려진 겁니다. 동물 등록이 되지 않아 주인을 찾아 처벌할 방법도 없습니다.

6살 리트리버 설향이도 마당개였습니다. 설향이는 공장의 한 구석에 묶인 채 낯선 사람이 오면 짖고 직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근근이 살아갔는데요. 그러던 중 노란 철거 계고장이 나붙자 견주는 공장을 떠나고, 쓸모 없는 폐기물과 함께 설향이를 버리고 간 겁니다. 게다가 설향이는 다섯 새끼를 밴 만삭의 어미개였습니다.

폐공장에 묶여 꼼짝없이 굶어죽을 위기였던 설향이에게 도움을 준 이가 있으니, 제보자 김정연(가명·55)씨입니다. 오늘 개st하우스가 소개할 사연입니다.



사료포대 들고 동네 한 바퀴…유기견들의 대모

김포 한강시네폴리스 일반산업단지 구역은 원래 공장 1700곳이 돌아가는 대규모 공업단지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재개발이 예고되고 보상 협의를 마친 공장이 하나둘 철수하면서 현재 남은 공장은 20여곳에 불과합니다. 제보자 정연씨가 일하는 구이용 석쇠공장도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했죠. 오늘도 정연씨는 자가용을 몰고 폐허만 남은 공단으로 출근합니다.

김포 시네폴리스 재개발지구에는 공장주들이 버리고 간 유기견이 많다. 정연씨는 매일 유기견들에게 사료를 챙겨준다. 이성훈 기자

정연씨는 20㎏짜리 사료포대를 짋어지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견주에게 버림받고 평생 지켜온 공장터를 맴돌던 유기견들은 조심스레 정연씨에게 다가가 사료를 받아먹습니다. 정연씨가 돌보는 유기견 숫자만 20마리가 넘습니다. 정연씨는 “유기견 가운데 경계심이 강한 애들은 이렇게 밥만 주고, 사회성 좋은 개들은 사비로 중성화와 치료를 해서 입양처를 찾아준다”고 말했습니다.

농촌, 공단 등 소외지역에서 기르는 마당개는 대부분 동물 등록이 되지 않아 주인이 유기해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동물 등록을 관리감독하는 김포시 관계자는 “지난해 동물위생팀이 꾸려졌지만 축산동물 관리를 겸하는데다 직원 숫자도 4명에 불과해 동물 등록을 감독할 여력이 없다”며 “다만 유기견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해서 포획해 시 보호소로 보낼 수는 있다”고 밝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것은 정연씨처럼 지역에 남겨진 사람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정연씨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습니다. 정연씨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인근 주거단지의 주민들도 유기견 구호에 힘을 보탰습니다. 아파트 주민 70여 명이 단체 메신저방을 만들어 유기견 치료비를 걷고 정연씨가 구조한 유기견의 입양홍보에 나선 겁니다. 주민 이복남씨는 “정연씨는 천사라고 불릴 만큼 헌신적으로 유기견들을 구조한다”며 “3만원 5만원씩 모아 동물구조에 보탠 모금액이 1000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습니다. 정연씨가 1년간 구조해 입양 보낸 개는 14마리나 됩니다.

제보자가 지역주민과 함께 구조한 유기견의 모습. 제보자 제공

6년 키운 견주가 버리고 간 만삭의 리트리버

정연씨네 공장에는 아직 보호 중인 유기견 두 마리가 있습니다. 모녀 리트리버인 6살 설향이와 1살 성탄이입니다. 설향이는 인근 공장에서 묶어 키우는 마당개였습니다. 나름 품종견인 골든리트리버였지만 출근하는 직원이 없는 주말에는 밥을 굶고, 떠돌이 유기견의 새끼를 일곱 마리 낳는 등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매정한 견주를 대신해 정연씨는 주말마다 공단을 찾아와 설향이에게 사료를 부어주고, 태어난 새끼들에게 좋은 입양처를 찾아줬습니다.

리트리버 설향이가 구조된 인근 폐공장 모습. 제보자 제공

하지만 설향이네 공장이 철수를 앞둔 4월, 설향이는 또 새끼를 뱄습니다. 정연씨는 견주를 찾아가 “임신한 어미개이니 제발 버리고 가지 말라”고 설득했는데요. 견주로부터 “내 개는 알아서 키울 테니 참견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설향이 견주는 인사도 없이 급히 공단을 떠났습니다. 정연씨가 뒤늦게 도착한 현장에는 벌써부터 철거 요원들이 모여 공장을 허물 준비를 하고 있었죠. 정연씨는 ‘설마 임신한 개를 버릴까’ 싶은 마음에 걸음을 옮겼지만 아니나 다를까,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정연씨를 반겨주는 만삭의 설향이를 발견했습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정연씨는 설향이를 이끌고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공장에서 빠져나와 아늑한 직원 휴게실에 자리를 깔아줬습니다. 3일 뒤 설향이는 5마리의 새끼를 무사히 출산했죠. 다섯 강아지는 정연씨와 인근 주민의 도움으로 좋은 입양처를 찾아갔고 설향이는 정연씨네 공장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고생한 설향이, 좋은 가족 만났으면 해요”

국민일보는 지난달 20일 경기도 김포의 공장에서 임시보호 중인 설향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설향이의 입양적합도를 평가할 11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취재진이 직원 휴게실 문을 열자 반갑게 달려온 설향이. 정연씨의 도움으로 산책을 나서자, 설향이와 딸 탄이는 기다렸다는 듯 목줄을 잡아끌더군요. 얼마나 줄을 세게 당기던지 건장한 공장 사장도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설향이가 흥분을 가라앉히자, 미애쌤은 전후좌우 방향을 바꾸며 설향이를 이끌었는데요. 미애쌤은 그러면서 “개에게 끌려가지 말고, 보호자가 방향을 주도하는 산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설향이는 보호자와 발걸음을 맞추며 의젓하게 산책했습니다.

리트리버 설향이가 산책 교육을 받는 모습. 보호자가 방향을 주도하며 이끌자 금세 걸음을 맞췄다. 최민석 기자

정연씨네 공장도 올해 안에 공단을 떠날 예정입니다. 공장주는 두 모녀 리트리버가 함께 뛰어놀 마당이 있는 공장을 찾고 있답니다. 정연씨는 “그곳에서도 설향이네를 돌볼 생각이지만, 기왕이면 삭막한 공장보다는 따뜻한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설향이와 딸 성탄이의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영리한 리트리버, 설향이와 성탄이 보호자를 개별 모집합니다
*6살(설향이) 22kg 암컷(중성화 완료)
-사람을 좋아하며, 공격성이 없음. 산책을 즐김
-경미한 심장사상충이 발견됨, 3개월간 투약 치료 중

*1살(성탄이) 16kg 암컷(중성화 완료)
-신중한 성격이며, 공격성이 없음. 산책을 좋아함
-예방접종 3차 완료, 심장사상충 예방 주사, 건강함

✔모녀 리트리버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98, 99번째 견공입니다. (81마리 입양 완료)
-설향이와 성탄이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naver.me/Gu08oa1b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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