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손댄 아빠, 방관한 엄마들… 난 좋은 엄마 될 수 있을까[이슈&탐사]

국민일보

딸 손댄 아빠, 방관한 엄마들… 난 좋은 엄마 될 수 있을까[이슈&탐사]

[미완의 해방일지] 4화. 엄마

입력 2022-10-25 00:03
친족성폭력의 몇몇 극단적 사례를 다루는 언론 보도는 대체로 피해자의 ‘인생’에는 무심합니다. 주로 수사보고서나 판결문을 인용하다 보니 범죄사실, 그러니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단편적으로 전하는 데 그칩니다. 이런 접근은 자칫 자극적 보도로 흐르고 가해자에 대한 단발성 비난으로 끝납니다. 그 일이 피해자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그들이 신고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건과 통계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여름 두 달여에 걸쳐 중·고등학생부터 딸을 키우는 50대 여성까지 17명의 생존자(살아남은 피해자)를 전국에서 만났습니다. 그중 10명이 현재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10대, 퇴소한 지 얼마 안 된 20대입니다. 200자 원고지 3400장에 담긴 취재 기록은 저마다 삶을 일으켜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의 해방일지였습니다. 그 일부를 5회에 걸쳐 전합니다. 이 보도로 지금 피해를 당하고 있거나 잠재적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려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감시망과 안전망이 강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삽화=전진이 기자


소망(가명·21)씨는 지금도 ‘공주 수첩’을 잊지 못한다. “예쁜 걸로 골라 봐”라는 엄마 말에 덥석 집어든 수첩은 맘에 쏙 들었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간 마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물건이었다. 그 수첩에 엄마 얼굴을 그려보기도 전에, ‘사랑해요’라는 말을 삐뚤빼뚤 써 보이기도 전에 엄마는 사라졌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엄마. 4살이었다. 소망씨 인생에서 엄마란 존재가 지워진 나이가.

엄마가 되는 꿈

초등학교에 올라가고 새엄마가 들어왔다. 아빠의 성폭력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다. 그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딸 몸을 만졌고, 그러다가 점점 과감해졌다. 그는 딸을 달래서 더욱 제 뜻대로 하려고 그랬는지 그 일이 있고 나면 친구처럼 잘해줬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폭발해서 손찌검할 때면 숨죽이고 맞아야 했다. 새엄마는 지켜주지 않았다. 그때 뺨을 맞은 후유증으로 소망씨는 지금도 가끔 ‘삐-’ 하는 고음이 귓가에 울리는 이명에 시달린다.

지난 7월 경북에서 만난 소망씨는 “그때는 아무도 가르쳐준 게 없어서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며 “나중에 그게 아닌 걸 알고는 좀 슬펐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뛰어노는 소리랑 웃음소리가 가득하다든지, (가족끼리) 외식을 한다든지 이런 모습이 나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돼서 공허하고 슬프고 좀 속상했던 게 많았어요.”

소망씨는 지난해 거처를 옮겼다. 중2 때부터 새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낸 특별지원보호시설을 떠나 지금은 자립지원 공동생활시설에서 독립을 준비 중이다. 이곳은 성인이 돼 쉼터를 나가야 하는 이들이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보조시설이다. 쉼터에선 만 21살까지만 지낼 수 있는데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기는 어렵다. 당장 집이 문제다. 자립지원시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이들에게 최대 4년간 기숙사 역할을 한다. 특별지원시설에선 선생님들이 엄마처럼 옆에서 시시콜콜 챙겨주지만 이곳에서부턴 거의 모든 걸 홀로 감당해야 한다.

친족성폭력 피해로 부모와의 연을 끊은 이들은 이른 나이에 스스로 삶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서 미리 구직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거나 2년제 대학을 나와 돈을 벌면서 4년제 편입을 준비한다. 소망씨는 후자다. 그는 청소년수련관에서 방과후 교육을 담당하면서 상담심리학과 편입을 준비 중이다. 특히 가출 청소년을 돕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아픔과 방황을 토대로 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상담사가 되는 게 바람이다.

출처=픽사베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엄마’라는 존재를 자기 인생에서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며 살아온 그는 무엇보다도 좋은 엄마가 되길 원했다. 어린 소망이는 부모에게 방치되고 학대당했다. 소망씨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환경과 습관이 반복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기억 속 두 엄마와는 다른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요. 엄마가 단 한 번도 학교에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제 딸, 제 아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아요.” 소망씨는 “결혼을 일찍 해서 젊은 엄마가 되고 싶다. 세련된 엄마가 돼서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저를 자랑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멋진 엄마가 된 자신의 모습이 이미 눈앞에 선한 듯했다. “혹시 모르죠. 잘 키우면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엄마가 된 생존자

잠결에 “엄마, 엄마” 부르는 중년의 엄마를 보며 딸은 마음이 미어지는 모양이다. “자꾸 밤에 제가 엄마를 찾는대요. 그러면 너무 슬프다고. 저도 한동안 왜 지금까지도 엄마를 찾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상담선생님은 ‘지금의 네 엄마 말고 정말 네가 그리는 엄마를 찾는 걸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이해는 하면서도 지금도 꿈속에서 엄마를 찾고 있는 걸 보면, 흠 …. (이유를) 모르겠어요.”

푸른나비(활동명)의 엄마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동학대 현장의 방관자였다. 첫 성폭력은 8살 무렵 부부싸움을 한 엄마가 잠시 집을 나간 사이에 일어났다. 그는 축 늘어진 딸에게 “누구한테든 오늘 일을 얘기하면 엄마는 집에 안 들어올 거”라며 침묵을 강요했다. 그날부터 아빠를 피해 집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잠들었지만 깨고 나면 늘 아빠 옆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행동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다.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해 힘든데도 엄마는 울지도 못하게 했다. 화를 내지 못해 짜증을 내면 “이상한 애”라고 했다. 엄마는 한 번도 아빠를 막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푸른나비는 말했다. 그는 가해자인 아버지를 비난했지만 어머니에 대해선 “솔직히 그렇게 나쁜 여자라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이 아직까지 있다”고 말했다. 머리는 ‘엄마도 똑같이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마음이 제대로 가닿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삽화=전진이 기자

푸른나비는 딸을 키우면서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딸에게 늘 미안했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부족한 엄마 같았다. “저렇게 어린아이를 학대하거나 아이 말을 안 들어주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특히 엄마를 보면서 ‘저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했고요. 근데 어디서 ‘부모한테 받은 사랑이 없으면 줄 수도 없다’고 이러면 좌절하는 거예요. 나는 받은 게 없는데 어떡하지. 우리 딸을 때리는 거 아냐? (딸이) 내가 무서우면 어떡하지. 이러면서 우리 딸을 키웠어요.”

조심스럽게 키웠다. 그림을 그리는 딸이 무엇을 그리는지, 일기장에는 뭘 썼는지 훔쳐본 적이 없다. 그 오랜 세월을 통제와 간섭을 당하며 살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딸의 생활을 존중하고 싶었다. 딸은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활동가로 살기로 한 엄마를 이해했다. 엄마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남들처럼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걸) 많이 안타까워하죠. 그런데 피해 상황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아요. (제가 쓴) 책도 안 읽었어요. 못 읽겠대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은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제 몸을 꼬집는 것처럼 아픈 일이다.

푸른나비에게 딸은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사람인 듯했다. 지난 5월 인터뷰하는 4시간 동안 그가 행복해 보인 순간이 있다면 딸이 이야기에 등장할 때였다. 부모에게 당한 일에 치를 떨다가도 딸 얘기를 할 때면 시종일관 목소리가 밝았다. 그는 “딸은 저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잘 키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줄 때 좋죠”라며 지긋이 웃어 보였다.

아이가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집

친족성폭력을 겪은 20대 여성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면서도 두 가지를 내심 걱정했다. 하나는 결혼식이다. 부모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고 초대할 만한 일가친척도 없다. 부모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자신이 당한 그 불편한 일을 끄집어내거나 거짓말을 해야 한다. 결혼 상대가 그 점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들의 부모나 친척까지 그러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디서든 뒷말이 나올 것이다.

“저는 그래서 결혼식도 안 하고 싶어요. 전 상관없는데 상대방 가족은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까진 나이가 있는 분들은 고정관념이 있는 분들이잖아요.” 혜래(가명·26)씨는 학창시절부터 남들 다 하는 평범한 결혼식 풍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남자친구에게는 숨길 수만은 없어서 부모랑 살고 있지 않다는 정도만 말해뒀다.

삽화=전진이 기자

결혼 이후를 상상하면 아이에게 보통의 사랑을 줄 수 있을지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사랑을 주는 부모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이들은 자기 부모처럼 아이들을 대할까 봐 걱정했다. 그 시절 따뜻한 가족은 창밖에나 있었다. 멀리 있지도 않았지만 그게 ‘우리 집’은 아니니 딴세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동경하게 됐는지 모른다.

“가족이나 가정이라는 걸 못 느껴본 거 같아요. 엄마 아빠 언니 이렇게 4명이 그냥 한 집에 사는 느낌이었어요.” 현경씨(가명·21)는 “친구 집에 가면 친구가 ‘엄마’ ‘아빠’ 부르면서 ‘이거 해줘’ ‘저거 해줘’ 그랬는데, 저는 그런 걸 못해봐서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했다.

※가정 내 학대로 고민하는 아동·청소년이나 이런 사례를 아는 분은 전화 1366(한국여성인권진흥원), 117(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02-2263-6464(한국여성의전화)로 연락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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