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피해 쉼터로 온 윤하, 21살 되면 수당도 없이 퇴소[이슈&탐사]

국민일보

오빠 피해 쉼터로 온 윤하, 21살 되면 수당도 없이 퇴소[이슈&탐사]

[미완의 해방일지] 5화. 날개

입력 2022-10-26 00:02 수정 2022-10-26 00:02
친족성폭력의 몇몇 극단적 사례를 다루는 언론 보도는 대체로 피해자의 ‘인생’에는 무심합니다. 주로 수사보고서나 판결문을 인용하다 보니 범죄사실, 그러니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단편적으로 전하는 데 그칩니다. 이런 접근은 자칫 자극적 보도로 흐르고 가해자에 대한 단발성 비난으로 끝납니다. 그 일이 피해자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그들이 신고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건과 통계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여름 두 달여에 걸쳐 중·고등학생부터 딸을 키우는 50대 여성까지 17명의 생존자(살아남은 피해자)를 전국에서 만났습니다. 그중 10명이 현재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10대, 퇴소한 지 얼마 안 된 20대입니다. 200자 원고지 3400장에 담긴 취재 기록은 저마다 삶을 일으켜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의 해방일지였습니다. 그 일부를 5회에 걸쳐 전합니다. 이 보도로 지금 피해를 당하고 있거나 잠재적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려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감시망과 안전망이 강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삽화=전진이 기자


‘오르리라 날아오르리라/ 자유를 향해 높이 날아오르리라/ 좌절과 허무의 세계에서 벗어나리라/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이 세상을 벗어나리라/ 끝없이 날개짓만 한대도 나는 원없이 자유로우리라.’

충남의 특별지원보호시설(특별지원시설)을 거쳐 간 민영(가명·22)씨가 쓴 시다. 시의 화자는 이어 ‘희망의 세계에서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새로이 태어나리라’고 염원하고는 ‘오르리라 날아오르리라’고 거듭 갈구한다. 그 비상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내 속에 내가 새로이 태어나는 그날까지’라고 화자는 결심하고 있었다.

시가 담긴 액자에는 앙상한 가지를 뻗친 새까만 나무들 위로 흰 새가 날개를 힘껏 펴고 날아가고 있었다. 배경은 희망이라고는 없는 세상처럼 온통 누렇게 시들었는데 가슴을 활짝 연 새 주위로만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민영씨는 현재 병원에서 실습 중인 예비 간호사다. 수년 전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으로 가족을 피해 이곳에 왔던 그는 ‘좌절과 허무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이 새롭게 태어날 ‘희망의 세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구조되지 못했다면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위한 특별지원시설은 전국에 모두 4곳이 있다. 경기, 충남, 경북, 경남에 1곳씩이다. 이들 시설은 2010~2014년 설립됐다. 피해자가 가족의 회유나 협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범행 특성 탓에 정확한 위치와 시설 이름 등 모든 게 비밀에 부쳐져 있다. 취재팀은 친족성폭력 생존자라 할 수 있는 아이들과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충남, 경북, 경남의 시설을 방문했다. 무더웠던 지난 7월 초 가장 먼저 찾은 충남 시설은 팥색 외벽에 붙은 나비와 네잎클로버 모형만이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쉼터임을 조용히 암시하고 있었다.

충남의 특별지원보호시설 안 다목적실 한쪽 벽에 입소생들이 받은 상장이 전시돼 있다. 20여개 상장 중 절반 이상이 윤하(가명·15) 것이었다. 이슈&탐사팀

“안녕하세요.” 막 학교에서 돌아온 윤하(가명·15)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폭염을 뚫고 오느라 볼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이영아 원장은 윤하를 ‘쉼터 에이스’라고 소개했다. 다목적실 한쪽 벽에 걸린 상장 23개 중 절반이 윤하 것이었다. 전교회장과 반장 임명장, 체육대회 입상, 봉사상 등이 윤하의 적극성과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예의 바르고 나무랄 데 없는 아이”라는 칭찬을 받는다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윤하는 4년 전 2살 터울 언니와 함께 이곳에 왔다. 자매 몸에 손을 댄 건 중학생 친오빠였다. 3남3녀 중 맏이인 오빠는 언니를 성폭행하고, 윤하와 막내 여동생을 추행했다. 아빠가 일하러 나가 있는 동안이었고 집에 있는 엄마는 딸들을 지키지 못했다. 엄마와 오빠에게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이들 가족은 천막이나 다름없는 집에서 살았다.

운이 좋았다. 지역 돌봄프로그램 상담원이 아이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함께 온 여성단체 소장이 부모를 설득해 세 자매를 분리시켰다. 그때 윤하와 언니가 충남의 시설로 왔다. 여동생은 경북의 보호시설로 갔다가 최근 이곳으로 넘어와 약 2년 만에 언니들과 재회했다. “처음 왔을 때 바람 불면 훅 쓰러질 정도로 뼈밖에 없는 마른 몸이었어요. 윤하 머리카락에 이랑 서캐가 가득해서 참빗으로 빗어준 기억이 나네요.” 이 원장이 윤하를 지긋이 보며 말했다. 윤하는 “내가 앞으로 살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뗐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 구조되지 못했다면 상장으로 가득한 이곳 벽면은 절반이 빈자리였을 것이다.

따뜻함을 원하는 아이들

중학생인 윤하는 아직 천진난만해도 될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 있었다. 똑 부러지는 인상이었다. 그래도 1주일 전 만난 아빠 얘기를 할 땐 여전히 부모 품이 그리운 아이처럼 “행복했어요. 엄청 보고 싶었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같이 살 때) 엄마는 놀이터 가지 말라고 하는데 아빠는 만날 가자고 그러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예쁜 말도 많이 해주셨어요.” 윤하는 따뜻함을 원하고 있었다.

윤하가 그대로 방치됐거나 특별지원시설 대신 일반 보육원에 들어갔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원장은 “우리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맞춤 쉼터라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과 자립 지원에 대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며 “일반 보육시설에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문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없지만 이곳 직원들은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모두 이수해 기본적 이해를 갖춘 상태로 아이들을 만난다”고 설명했다.

충남의 특별지원보호시설을 거쳐 간 민영(가명·22)씨가 쓰고 그린 작품. 앙상한 가지를 뻗친 나무와 새가 그려져 있는데 새 주위로만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슈&탐사팀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과 지낸다는 점은 공감대 형성과 서로 간 지지에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취재팀이 각지 특별지원시설에서 만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시설에선 같은 성폭행 피해자 사이에서도 가해자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선뜻 말할 수 없었고, 말하고 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며 “이곳에 와서는 아픔을 이야기하면 ‘너도 그랬냐. 나도 그랬다’고 공감하면서 위로를 해줬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동병상련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기 상처를 객관화할 수 있고,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회복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몰라서 못 보내는 곳

학교에서는 교직원이 아동학대 의심 사례를 알게 되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친족성폭력도 물론이다. 대개는 담임교사나 상담교사가 상담 도중 학생에게 피해 사실을 듣고 알게 된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아이 몸에 난 상처나 아이의 학교생활로 가정폭력 징후를 포착하고 먼저 다가간다. 아이가 참다못해 교사를 찾아가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학교 밖에서는 피해 아동·청소년이나 주변인이 1366, 117, 한국여성의전화(02-2263-6464) 같은 긴급상담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도 사건은 경찰에 우선 접수된다.

112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이 해당 지역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서울을 비롯한 광역 단위 시는 자치구에, 여타 지역은 시에 아동학대전담팀을 두고 있다. 경찰은 가해자를 상대로 형사 절차를 밟고, 지방자치단체는 피해 아동·청소년을 보호시설로 옮기는 보호조치를 진행한다. 다양한 시설 중 어디로 보낼지는 원칙적으로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열어 판단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도맡아 결정한다.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일이 위원회를 소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원회 심의는 구색인 셈이다.

이 체계엔 또 다른 빈틈이 있다. 친족성폭력 사례가 발견되더라도 피해 아동을 특별지원시설로 연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담당 공무원 대부분이 몰라서 못 보낸다.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보건복지부 지침을 따르는데 특별지원시설은 여성가족부 소관이라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복지부가 제공하는 시설 명단에는 특별지원시설이 없다. 이런 부처 간 벽 때문에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도 복지부 소관 시설인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으로 가게 된다.

복지부 “쉼터 활용해 달라” 요청 묵살


현재 특별지원시설 연계는 운에 맡겨진다. 보통은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등 민간단체가 사후 관리 과정에서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임을 알고 시설 이동을 제안한다. 정부는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아동학대 대응 역할을 강화했지만 친족성폭력 등 개별 사례를 고려한 대응은 원활하지 않은 모습이다. 한 특별지원시설 관계자는 “시설 연계를 주로 하는 상담소들이 (여기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서 ‘이런 거 있는 줄 몰랐다. 진작 알았으면 우리 애들 그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라고 한다”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맥이 빠진다”고 말했다.

특별지원보호시설협회는 2020년 7월 복지부에 매뉴얼 개정을 건의하는 공문을 보냈다가 사실상 묵살당했다. 이들은 당시 건의문에서 “아동성학대 중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의 사건 초기 개입에서 원가정 분리 판단 및 시설 입소가 필요할 시 특별지원시설에 먼저 연락해 업무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동학대 대응 매뉴얼’에 지침을 수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은진 협회 대표는 “참조용으로라도 넣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실어주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부실한 연계 시스템은 시설 전체의 정원 미달로 이어지고 있다.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 시설은 올해 7월 말 기준 입소자가 9명에 불과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충남(정원 16명) 11명, 경북(15명) 11명, 경남(15명) 9명으로 모두 정원에 한참 못 미쳤다. 전국에 4곳밖에 안 되는 시설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 이른 홀로서기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운 좋게 특별지원시설로 연계되더라도 몇 년 뒤면 자립이라는 난관에 부딪힌다. 규정상 만 19세까지 지낼 수 있고 원하면 2년 더 머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21살이다. 이 나이에 스스로 벌어서 집세를 내고 학비도 감당하면서 먹고살아야 한다. 전국 4개 특별지원시설 중 2곳은 이들을 위해 일종의 기숙사인 자립지원 공동생활시설을 함께 운영하지만 모두 받아주지는 못한다. 이곳에서는 최대 4년(2+2년)을 지낼 수 있다.


이와 달리 복지부 지원을 받는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은 만 24세까지 머물 수 있다. 그동안은 만 18세만 돼도 퇴소해야 했지만 보호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아동복지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최근 통과됐다. 하지만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기 때문에 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

퇴소 후 받는 자립수당 차이도 시설별로 벌어지는 중이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시설을 떠날 때 정부로부터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받는다.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나올 땐 이 돈에 더해 최대 5년간 매달 35만원의 자립수당이 지원된다. 내년엔 자립수당이 월 40만원으로 오르지만 친족성폭력 피해자인 특별지원시설 퇴소자와는 무관한 얘기다. 이 원장은 “보호종료아동이 사회의 관심을 받는 동안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네 힘으로 알아서 살라’는 듯 광야에 던져져 있다”며 “정부가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당장 자립을 앞뒀거나 이미 퇴소한 이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자립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시설 선생님에게 물어보곤 하지만 실망스러운 답변만 돌아온다. “최근 자립해 나간 친구들이 문의 전화를 몇 번 해왔어요.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우리 시설은 법적으로 해당이 안 돼서….” 경북 시설의 최미아 선생님은 안타까워했다.

자립 후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원금을 받아도 자금 관리나 구직에 실패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정애 경기지역 특별지원시설 원장은 “아무리 지원금을 준다손 쳐도 자립이 제대로 안 돼 결국 다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전락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발선
삽화=전진이 기자

“내 인생은 여기서 시작했어요. 지금은 안 되는 것도 있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노력하면서 제 길을 가는 거죠.” 고등학교 3학년 윤수(가명·18)에게 6살 때부터 살아온 경북의 특별지원시설은 집이자 인생의 출발점이다. 전에는 ‘나 혼자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혼자 살아도 괜찮겠구나’ 한다고 윤수는 말했다. “자립해서 각자 사회생활하는 언니들 보니까 동기부여도 되고, 또 나의 미래나 이런 걸 생각하니까 기대와 설렘이 있어요. 그걸 계기로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고, 키워야 할 역량 같은 것도 찾아나가고 있어요.”

윤수는 “사람들이 가정 내 성폭력에 민감하게 대처해줬으면 좋겠다”며 “분리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피해자)이 적응할 수 있도록 서포트(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해방일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정 내 학대로 고민하는 아동·청소년이나 이런 사례를 아는 분은 전화 1366(한국여성인권진흥원), 117(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02-2263-6464(한국여성의전화)로 연락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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