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협박하는 이란 “국가 제창 거부시 가족 고문”

국민일보

선수들 협박하는 이란 “국가 제창 거부시 가족 고문”

이란 대표팀, 월드컵 국가 연주에 침묵
“혁명수비대가 선수단 감시한다” 주장도

입력 2022-11-30 00:02 수정 2022-11-30 00:02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25일(현지시간)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B조 웨일스와의 2차전을 앞두고 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정부가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 자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식으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할 경우 가족에 폭력과 고문이 가해질 수 있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스채널 CNN은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1일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 당시 국가를 따라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반정부 시위에 지지 의사를 표하자 이란 혁명수비대(IRGC) 요원들이 회의에 소집됐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선수들은 정부로부터 국가를 따라부르지 않거나 반정부 시위에 참여할 경우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선수들은 지난 25일 B조 2차전 웨일스와의 경기 때 국가를 불렀다. 이들은 입술을 작게 움직여 소극적으로 국가를 제창해 주목을 끌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 선수들이 단체로 애국가를 부르기로 한 것은 분명했지만, 이런 불편한 모습은 웨일스 선수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기세와는 차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카타르월드컵 기간 중 이란의 보안 요원 활동을 관찰하고 있는 CNN 소식통은 “이란 혁명수비대 요원 수십명이 차출돼 자국 선수들의 외부 활동이나 외국인과 접촉하는 금지 사항을 어기는지를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 요원들은 선수들을 협박한 뒤 포르투갈 출신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을 따로 만난 것으로도 전해졌다. 다만 구체적으로 오간 대화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다.

소식통은 “이란 당국이 잉글랜드와의 경기 전에는 선수들에게 승용차 등 승리의 대가를 약속했지만 국가 제창을 거부하자 가족과 선수들을 협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란 정부가 웨일스와의 경기 때 팬들 사이에서 가짜 응원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연기자 수백명을 투입했으며 미국과의 경기 때에는 연기자 투입 인원을 수천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한 이란 여성이 얼굴에 이란 국기와 피눈물을 그려 넣고 25일(현지시간)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B조 2차전 웨일스와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두 달여 간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일부 이란 축구 선수들은 대표팀 탈락 위험을 무릅쓰고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27일에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공식 SNS에 이슬람 공화국 엠블럼을 삭제한 변형된 모양의 이란 국기를 올리며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을 월드컵 대회에서 즉각 퇴출하고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란과 미국은 30일 새벽 4시 B조 조별리그 3차전을 치른다.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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