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보다 빨랐던 경찰들… 연기 속 일가족 구해 [아살세]

국민일보

119보다 빨랐던 경찰들… 연기 속 일가족 구해 [아살세]

‘2022 생명존중대상’ 수상자 반상렬 순경
마스크 한 장에 맨몸으로 화재현장 진입

입력 2022-12-01 00:02 수정 2022-12-01 12:55
화성서부경찰서 소속 반상렬 순경. 생명보험재단 제공

119보다 먼저 화재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이 안전장비도 없이 매연 속에서 일가족을 구했습니다. ‘2022 생명존중대상’을 받은 반상렬(28) 순경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 6월 16일 늦은 밤, 화성서부경찰서 남양파출소 소속 최경영 경사와 반 순경은 여느 때처럼 경찰차로 순찰을 돌고 있었습니다. 자정을 앞둔 오후 11시58분, ‘옆 아파트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두 경찰관은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화재 현장이었습니다. 119 구조대는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습니다. 자력으로 불을 끄려던 주민들의 노력에도 진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화재 현장은 연기로 자욱했습니다.

반상렬 순경이 지난 6월 16일 자정쯤 도착했던 화재 현장에서 연기로 가득했던 구조 현장. 생명보험재단 제공

화재 가옥 현관문은 열려 있었지만 연기로 가득해 집안 상황을 볼 수 없었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화재 현장에 갇힌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거기, 사람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연기 속에서 돌아왔습니다. “사람 있어요!” 반 순경은 그 외침을 듣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연기 속을 더듬어가다 어렴풋이 구조자의 손을 발견했습니다. 반 순경은 그 손을 잡아 구조자를 데리고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일가족 중 남편은 구조했습니다.

누가 더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구조자가 말했습니다. “애엄마하고 아기요!” 반 순경은 아이들이 있다는 말에 연기로 가득 찬 위험한 현장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매캐한 연기를 뚫고 어둠 속에 작은 손전등만 든 채 집 안으로 다시 진입했을 때 안방 창가에서 여성 한 명과 놀라 울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반 순경이 아이 한 명을 안은 채 구조자들을 데리고 다시 나가려는데, 가득한 연기에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을 더듬어도 출구가 파악이 안 되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때 기적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동료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반 순경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따라 겨우겨우 구조자들을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마스크 한 장만 착용하고 화재 현장에 진입한 두 경찰관은 상황이 종료된 후 응급실에서 산소 치료를 받았습니다. 경찰관들은 치료 후 다행히 별다른 후유증은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상렬 순경 프로필 사진. 반상렬 순경 제공

이런 용감한 행동으로 지난 6월 화성소방서는 두 경찰관에게 인명구조유공 표창을 수여했습니다. 반 순경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위험한 순간에도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공헌한 우리 사회 속 의인을 발굴해 생명존중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실시하는 ‘2022 생명존중대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습니다.

반 순경은 “경찰 일이 항상 위험을 마주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는 만큼 고초보다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일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이런 큰 상을 받아 기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반 순경은 지난달 2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조자를 데리고 가득한 연기 속에 잠시 길을 잃었을 때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경찰이고, 일가족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지만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포함한 구조자까지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나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를 구하는 것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겁도 나고 두려움도 느끼는 ‘일상의 영웅’일지 모릅니다. 그런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내는 반 순경 같은 작은 영웅이 있으니 ‘아직 살 만한 세상’이겠죠. 이런 ‘일상의 용기’를 내주신 올해 ‘생명존중대상’ 수상자 23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은초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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