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님, 우짜든지 우리 동네에 사람 마이 살게 해 주이소”

국민일보

“도지사님, 우짜든지 우리 동네에 사람 마이 살게 해 주이소”

‘칠곡할매글꼴’ 할머니, 40년 만에 교단에 선 이철우 경북지사와 ‘마지막 수업’

입력 2023-01-25 12:36
이철우 경북지사가 25일 경북도청 미래창고에서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추유을·이원순·권안자·김영분 할머니를 초청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끝난 뒤 기념 촬영하는 관계자들. 왼쪽 끝은 김재욱 칠곡군수, 오른쪽 끝은 배한철 경북도의회의장. 칠곡군 제공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와 40여 년 만에 교단에 오른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마지막 수업’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꾹꾹 눌러쓴 손 글씨를 디지털 글씨체로 만든 ‘칠곡할매글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네 명의 경북 칠곡군 할머니는 도백(道伯)이 마련한 수업에 참석해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이 지사는 25일 경북도청 미래창고에서 70년대 교실을 재현하고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추유을(89)·이원순(86)·권안자(79)·김영분(77) 할머니를 초청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했다. 이종희(91)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를 위로하고 200만 명이 넘는 문해력 취약 계층에 관한 관심과 평생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들은 남다른 수업을 위해 10대 시절 입지 못한 교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이 지사는 할머니를 위해 교실을 마련하고 1978년부터 1985년까지 7년간 몸담았던 교단에 올라 할머니들의 일일 교사가 됐다.

건강과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한글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이원순·김영분 할머니를 위해 이날 강의를 ‘마지막 수업’으로 정했다.

일제강점기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참여하는 등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 최홍식(70)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장은 화환을 보내 수업의 의미를 더했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할머니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이날 수업은 반장을 맡은 김영분 할머니의 구호에 맞춘 할머니들의 인사와 이 지사의 큰절로 시작됐다.

이 지사는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르며 출석 체크를 하는 것은 물론 경북 4대 정신을 설명하고 가족과 대한민국 근대화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수업에 언급됐던 단어를 할머니에게 불러주며 받아쓰기 시험을 치르고 빨간 색연필로 직접 점수를 매겼다.

칠곡 할머니들은 이 지사에게 “할매들은 지방시대가 무슨 말인지 잘 몰라예. 우짜든지 우리 동네에 사람 마이 살게해 주이소”라고 적힌 액자를 전하며 지방시대에 대한 소박한 바람을 표현했다.

이어 김재욱 칠곡군수의 해설로 ‘칠곡할매글꼴 사진전’을 관람하는 것으로 더 큰 꿈을 위해 교사의 꿈을 접었던 이 지사와 학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할머니들의 마지막 수업은 막을 내렸다.

김영분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들은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때론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오늘 수업을 통해 마음에 억눌려 있던 한을 조금이나마 푼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철우 지사는 “칠곡 할머니의 글씨를 처음 보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 마지막 수업이 되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해주실 것”을 당부하고 “어르신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 평생 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여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2020년 12월에 제작된 글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 원로와 주요 인사 등에게 보낸 신년 연하장은 물론 한컴과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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