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등짝만 붙일 수 있으면 2-1

국민일보

[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등짝만 붙일 수 있으면 2-1

입력 2023-02-01 15:40 수정 2023-02-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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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미국에서 십 년 만에 엄마를 보러 나오겠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나온다는 것이다. 여섯 식구가 지내기에는 너무 옹색하다고 몇 번에 걸쳐 거절했더니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집에 등짝 붙일 곳이 없어 아예 없어요?”
“아니지 사면이 벽체로 된 집이니까 등짝 붙일 곳이야 있지.”
“그럼 됐어요. 우린 훈련이 잘된 가족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들과 나 엄마와 함께 뒹굴고 싶어서 고국에 가는 거니까요.”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십 년 만의 방문인데 가슴이 쿵쿵 뛰면서도 솔직하게 내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다. 손자 손녀들에게 할머니가 여유롭고 모양새 있게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바득바득 날짜는 다가오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여전히 퇴근 후 집에만 들어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막내아들이 누나 가족이 한국에 온다는 말을 들었나 보다. 대뜸 어느 호텔에 예약했느냐고 물었다. 아니 나와 함께 지내겠단다. 말끝을 체 맺기도 전에 “엄마 그건 안돼요. 그 비좁은 데서 40여 일은 어떻게 함께 지낸다는 거예요”하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엄마 노릇은 나이가 들어도 어렵다. 황산성 변호사의 ‘엄마는 변호사라면서 왜 그리 모자라’라는 책이 생각났다. 나의 아이들은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의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답을 찾고 있을 때 딸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엄마, 옛날 그 당찬 용기 다 어디다 버렸어? 이번 기회에 할머니 노릇 좀 해봐요. 아이들 좋아하면서 한국말 하라고 다그치지만 말고.”
“딸아 그럼 엄마 시키는 대로 잘 할 수 있겠지?”
“그래요. 엄마가 애들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바래요.”

순간 스쳐 가는 생각이 나를 깨웠다. 가만히 생각하니 난 참 어리석은 바보였다. 잘 훈련된 천사들이 나를 찾아오는데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망각했던 것이다. 한국말 배우려는 천사들을 내게 맡기는데 나는 약 먹은 파리처럼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너 아동부 교사자격이 있었던 거니.’
‘그래 맞아 아동부 아이들에게 성경 암송은 사명이며 필수라고 했었지?’

어릴 때부터 암송은 반드시 습관화해야 한다고 했으면서 어리석은 자여! 잠시 머뭇거리다 두리번거렸으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메아리가 울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 가슴에서 내 양심에서 깨우침이 밀어 올리는 소리였다. 나는 순간 무릎을 꿇었다. 자초지종을 고백하고 줄줄이 낱낱이 회개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쉽고 명확한 단어 “Do it now”를 외치며 행동하고 있었다. 박스를 준비하고 철 지난 것들을 정리하고 가구 몇 점은 사무실로 옮기고 책은 모두 박스에 넣고 옷장과 거실에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며칠 동안 정돈한 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20여일 남았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딸에게 연락했다. 이젠 아무 염려 말고 출발하라고 했다. 안심시키려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딸의 웃음소리가 주저앉아 걱정하던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나는 퇴근을 해도 아이들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일정표대로 김장을 했다. 백김치와 오이소박이를 담그고 비트를 구해 피클을 만들었다. 장조림과 멸치볶음 콩장 전복장도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우리나라 사과, 배, 천혜향과 단감과 청포도 등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젠 손자 손녀들과 딸이 보낸 카드와 사진들을 벽에 붙이고 걸고 어린 시절 딸의 흔적들을 현관과 벽체의 여백을 건너가며 장식했다. 며칠만 기다리면 아이들이 도착한다. 주문한 온 가족의 면 잠옷을 찾아왔다. 부드럽고 포근한 잠옷을 입히고 손주들과 보낼 시간을 생각하니 십 년쯤 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그 무엇에 비교할 바 없는 소중한 보물들이다. 후회 없는 날들을 만들어야지.<다음편에 계속>


<눈물은 향기다>

눈물은 두 눈에서 흐른다
한쪽 눈만 우는 일은 없다
언제나 눈물은 동시에 흐른다
눈물보다 더 진실한 우정은 없다
눈물보다 더 진한 물도 없다
거짓이 없는 눈물,
돈독한 우정도 사랑의 맹세도
눈물보다 더 진한 맹약은 없다
두 눈의 눈물은 진실을 담아
천상으로 보내는 전달자다
머나먼 하늘 길에 빛의 수레를
하늘들 그 위의 하늘 끝 종착역에
내 눈물은 신에게 향기로 올라간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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