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봉사 탓에 주말 여행도 언감생심”

국민일보

“교회 봉사 탓에 주말 여행도 언감생심”

이귀연 전도사 박사학위 논문에 담긴 ‘번아웃’ 실태…“안식에 대한 훈련도 이뤄져야”

입력 2023-03-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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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하지만 이렇듯 소박한 소망들이 그에겐 언젠가부터 가닿지 못할 꿈처럼 돼버렸다. 가령 대학 동아리 활동만 하더라도 교회 봉사 시간과 겹치는 주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언감생심일 때가 많았다. A씨는 “대학부에서 사역하면서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는 아니더라도 바다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해외 간다는 것도 아니고 강릉이라도 가보고 싶은데…. 친구 만나는 것도 힘들어요. 이런 상황들 때문에 불만이 쌓여 가는데 제가 선택한 거여서 (불만을 호소할 곳도 없고)…. 생각하는 걸 쉴 틈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거의 매일 머리가 되게 무겁고 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교회 봉사자들이 마주한 ‘번아웃’

A씨의 이 같은 이야기는 최근 공개된 총신대 일반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한국교회 봉사자의 번아웃 경험 탐색을 통한 척도 개발 연구’에 담겨 있다.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사역하는 이귀연 전도사가 사랑의교회 특별사역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아 진행한 연구다. 논문엔 A씨의 사연 외에도 교회 봉사 탓에 신체적‧정서적 탈진, 즉 번아웃(burnout)을 호소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전도사가 주로 서울과 경기도 지역 교회에서 사역하는 봉사자 95명을 상대로 개방형 설문(주어진 객관식 응답 항목 없이 응답자가 자유롭게 질문에 답하는 형태)을 진행한 내용이다. 이 전도사는 번아웃 척도 모형을 만들기 위해 이 같은 설문을 실시했으며 응답자 10명을 상대로는 심층 인터뷰도 추가 진행했다.

개방형 설문 결과를 토대로 답변의 카테고리를 분류했을 때 번아웃 원인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과도한 봉사’(192건)였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한 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거나, 봉사 탓에 여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한 답변이 여기에 해당한다. 교회에서 찬양팀을 이끌었다고 소개된 B씨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그는 이 전도사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전) 7시부터 연습해서 8시에 예배드리고 끝나자마자 교사로 일하고 (그다음엔) 집사님 댁에 가서 잤어요. 너무 피곤했던 거죠. 나는 학생인데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휴가도 못 가고 수련회만 갔죠. 갔다 오고 나서 목소리를 완전히 잃었어요. 2~3개월 말을 못 했어요.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과정보다는 성과를 우선시하는 ‘성과주의 문화’(66건), 성도들의 불평이나 무관심과 씨름해야 하는 ‘봉사 대상자와의 갈등’(65건)도 번아웃 원인으로 많이 언급된 내용이었다. 특히 ‘성과주의 문화’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답변들은 일부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눈여겨봄 직하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역이 나중엔 사람은 없고 시스템만 남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어요. (이런 점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그다음 주가 되면 똑같이 그렇게 돌아가고….”

“(담임목사님은) 선교엔 관심 없고 확장하는 데 관심 있으신 분인데 부목사님도 (그런 담임목사님을) 쫓아가고, 교회가 이렇게 기업화돼도 되나 싶고….”

봉사자들이 번아웃을 느끼는 시기로는 ‘주요 직책이 맡겨졌을 때’(38건), ‘교회의 큰 행사 전후’(22건)라는 답변이 많았다. 번아웃을 경험할 땐 신앙 상담이나 조언을 구하는 이도 많았으나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도도 적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C씨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를 하루 아예 안 가고 다른 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예배당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근데 그것도 웃기잖아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이라는 게.”

봉사자에게도 ‘안식’이 필요하다

조건 없는 헌신과 열정을 강요하는 교회 봉사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년이나 초심자가 교회에 출석할 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령 한국복음화협의회가 지난해 8월 개신교 대학생 34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교회 개선 사항’을 묻는 말(복수 응답)에 ‘교회 봉사에 대한 부담을 너무 많이 준다’는 답변이 42%로 가장 많았다. 2·3위에 각각 랭크된 ‘목회자와 교회 성도들의 삶이 신앙적이지 않다’(34%), ‘목회자나 교인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다’(31%)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이 전도사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교회 내에서 봉사자의 번아웃을 ‘오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번아웃이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게 느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번아웃을 경험한 이들을 상대로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성도들을 신앙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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