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명 좋아요’ 조정민 목사가 하용조 목사에 쓴 편지

국민일보

‘1600명 좋아요’ 조정민 목사가 하용조 목사에 쓴 편지

입력 2023-03-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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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베이직교회 예배당 모습.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가 자신을 예수께 이끈 故 하용조 목사에게 쓴 편지가 많은 크리스천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개척교회 10주년을 기념하며 ‘목회 스승’에게 올리는 편지에서 조 목사는 ‘교회가 제도에 갇히지 않으며 목사가 괴물이 되지 않겠다’는 고인의 생전 목회 철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조 목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베이직교회가 10년을 맞으면서 저를 목회의 길로 인도해주신 故 하용조 목사님께 편지를 썼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편지는 ‘목사가 목사에게’라는 저서에서 조 목사가 실었던 글과도 같다.

MBC기자 출신으로 언론사 내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2004년에 퇴사한 뒤 미국 고든콘웰신학교 대학원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스승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소식을 “제가 베이직교회가 된 것”이라고 운을 뗀 그는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고백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하 목사가 자신에게 한 번도 사역에 대해 강요한 적 없다고 했다. 이는 스승인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에 따르라는 중요한 가르침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실 목사님은 제 등을 떼밀지 않으셨습니다. 신학교 가라고 직접 말씀하신 적도 없고, 목사 안수 받으라고 친히 말씀해주신 적도 없습니다. 다만 신학교 원서를 갖고 나타나자 ‘내가 조 집사 신학을 놓고 5년 기도했는데 때가 된 것 같다’고 짧게 말씀해주셨지요. 미국 신학교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하실 때도 학교 이름을 일러주시지 않고 신학교 투어를 해보고 결정하라고 하셨지요. 늘 그러셨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음성을 듣기보다 스스로 음성을 들으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마치고 이틀 후에 바로 귀국하라고 하셨을 때 내심 놀랐습니다. 저는 보스턴을 떠나 미국 남부 지역으로 가서 목회할 생각으로 기도할 때였으니까요. 귀국한 다음 날 확대당회에서 이제 조 전도사와 동역하게 되었다고 소개하시더니 저녁 무렵 다음날 주일예배 설교를 하라고 하셨지요. 당황스러웠지만 순종했습니다. 아마 목사님은 기억하시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두고두고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는 미국 보스턴 온누리교회 전도사를 감당하고 서울 온누리교회 부목사, CGNTV 대표이사를 거쳐 2013년 3월 베이직교회를 개척해 현재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러면서 하 목사에게 배운 목회의 기초인 ‘당신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에 매달렸다고 했다. 때때론 “후배 목사들은 사랑이 메말라서 사역이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사역이 너무 많아지면서 많은 성도가 ‘사역 중독증’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5년간의 언론사 생활에서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희생한 일을 떠올리며 “교회는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교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전부 아닙니까? 일이 없을 수 없지만 일 때문에 사랑을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담임목사. 국민일보 DB


그러기에 그는 새 교회를 세우며 “아무 사역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여서 성경 읽는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보통 교회의 익숙한 사역 구조가 없는 베이직교회에 어떤 이들은 당혹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우리 교회는) 사역이 없고 훈련이 없고 직분이 없다고 하면 더러 이 교회 왔다가도 발길을 돌린다. 어떤 분은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당신은 모든 제도가 다 갖춰진 교회에서 훈련받고 직분 받고 도움받아 목사가 되었으면서 어떻게 당신 섬기는 교회는 그 모든 것을 갖추지 않고 이토록 불편하고 무성의한 목회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저는 별 답변을 하지 않는다. 다 갖춰진 교회로 가시는 편이 이 교회를 그런 교회로 만드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름처럼 ’베이직’한 그 교회에서 한 거라곤 아침, 주일 예배와 각자 성경 읽기가 전부라고 했지만 “그런데 변화가 일어난다. 기도가 달라진다. 가정이 달라진다. 일터까지는 잘 모르겠다. 성도들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한다”고 했다.

여전히 대여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베이직교회를 두고 그는 “무상으로 임대 해주는 공간에서 매주 의자를 접었다 폈다 하고 있다. 덕분에 건물에 갇히지 않았다. 건물 밖의 교회로 시선을 돌렸다”고 했다. 성도 전체가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한 달에 한 번, 나머지는 흩어져서 소그룹으로 또는 공동체로 예배를 드린다며 밤하늘의 수많은 별 같은 ‘뭇별 예배’를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손을 잡고 밤하늘의 뭇별을 보며 일러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는 ‘시선 예배’를 통해 “병원에 입원한 친구 병실에서, 시골에 계신 부모님 교회를 찾아가서, 순교지에서 함께 믿음의 선배들 족적을 되새기면서 그렇게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그는 하 목사가 ‘7년된 교인은 다 떠나라’고 생전에 한 말을 언급하면서 “흉내라도 내보자고 시작된 걸음이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더러는 이단이 아닌가 해서 떠나기도 했고 더러는 예전 교회로 돌아갔고 더러는 안락하게 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많다”고 했다.

조 목사는 마지막으로 “편지를 이만 줄이기에 앞서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다”며 하 목사가 생전 새신자와 나눈 대화를 공유했다.

“목사님,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요…. 교회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사요…. 목사는… 괴물입니다.”


그는 “베이직교회는 ‘제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제도가 되기 직전에 다 흩어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정말 ‘괴물’이 되지 않겠다. 괴물이 될 만하면 주님께서 바로 데려가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조 목사의 편지에는 1600개의 ‘좋아요’가 달렸고 “감동적이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하용조 목사. 국민일보 DB


1984년 서울 용산의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하 목사는 기독방송국 ‘CGNTV’와 기독출판사 ‘두란노서원’ 등 활발한 미디어 사역을 펼치다 2011년 8월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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