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소아청소년들의 불안 대처 방법

국민일보

[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소아청소년들의 불안 대처 방법

불안 품을 수 있는 능력 있어야 극복

입력 2023-03-23 10:15

중학교 1학년 여학생 K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다. 이후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지하철이나 길이 막히는 버스도 타질 못한다. 터널도 통과하지 못한다. 광장이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나면서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영화관에 가도 출구 근처에만 앉고 쇼핑물에 가도 출구를 계속 확인해야 하고 출구에서 멀어지면 불안해한다.

K의 공포감은 처음엔 엘리베이터에 갇힌 것처럼 폐쇄된 곳에서 탈출할 수 없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일어났다. 택시는 중간에 원하면 내릴 수 있으니 나았지만, 고속버스나 지하철 등은 자신이 내리는 장소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특징이 있다. 비행기는 특히 더 그랬다. 사람이 많은 광장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공포를 경험한 후로는 남의 시선이 의식되는 유사한 상황으로 확대됐다.

이 또한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만 노출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통제가 안 되는 곳은 피하려고만 한다. 숨이 차거나 속이 메슥거리는, 어지러운 신체 감각에 예민해져 조금이라도 숨이 차고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오면 그 이상을 상상하게 되니 사람이 많은 곳도 피하게 된다. 숨이 차는 느낌이 들면 어지럼과 미칠 것 같은 공포감이 함께 따라오며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이 차는 운동도 하지 못하고 어지럼이 싫으니 놀이기구 등도 타지 못하고 흔들의자에도 앉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신체 감각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감각으로 이를 피하려 하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이 별로 없다.

처음 엘리베이터에 갇힌 상황은 실제로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이때 자율신경계의 반사적 반응으로 공포반응이 유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생존에 필요한 적응적 반응이다. 하지만 이후 지하철, 버스, 비행기나 극장 등에서 반응은 상황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속삭이는 ‘걱정과 불안’이다. 도망치고 피하려 하면 더 심해질 뿐이다. 걱정과 불안에 먹이를 주어 점점 덩치를 키울 뿐이다. 실재하지 않는 위협이라고 자신을 설득해 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재하는 위협이 없다는 걸 몸으로 경험하지 않고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불안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

불안을 품고 엘리베이터와 지하철도 타보고 터널도 통과해 보고 극장이나 쇼핑몰에도 나가야 한다. 자신의 불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라. 어떤 불안도 지속하지는 않으며 파도처럼 오르내림을 볼 수 있다. 집에서는 병에 빨대를 꽂고 숨을 가쁘게 쉬어 보거나 회전의자에 앉아 의자를 돌려보자. 두려워하는 신체 감각을 경험하며 그 감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해 보자. 시냇가에 앉아 나뭇잎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는 것처럼. 나란 존재는 그 불안이나 걱정을 풀고 있는 시냇물처럼 넓고 큰 존재이므로.

중국식 손가락 그물(Chinese finger trap)을 상상해 보라. 중국식 손가락 그물은 길이 7cm, 지름 1cm 정도 되는 짚으로 짠 원통이다. 원통형 손가락 그물의 양쪽 구멍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넣어 보라. 손가락을 넣은 후 빼내려고 노력해 보라. 손가락을 빼내려 할수록 손가락이 원통에 더 매여서 빠져나오기 점점 어려워짐을 발견할 수 있다. 원통이 손을 압박하고, 혈액순환이 힘들어지는 불편감을 느끼고 당황하게 된다. 원통에서 손을 빼려고 계속 힘을 주고 노력하는 게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마음이 만든 불안이나 걱정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조여드는 손가락 그물과 같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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