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부끄러운 부자 청년

국민일보

[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부끄러운 부자 청년

입력 2023-03-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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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행색으로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 이를 걸인이라 한다. 예전의 걸인은 끼니가 어려워 밥을 얻으러 다녔다. 대문 앞에서 집주인의 눈에 띄면 배고프다고 하소연하고, 인정이 있는 주인이면 이것저것 바가지에 챙겨 담아준다. 가끔 잔칫집을 만나면 대박이 터지기도 한다. 그런 행운을 만나면 등에 달라붙은 배속 장기들에 기별이 가는 날이다.

요즘의 걸인은 다르다. 현금을 주어야 한다. 주머니에 단돈 천 원도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가 많은데도 아직 인정이 메마르지 않은 착한 시민들은 인정을 베푼다.

어느 날 전철 속에서 젊은 청년을 만났다. 곁에 바싹 다가서며 손을 내밀기에 고학생으로 보여 현금을 건네주면서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건강한데 막노동을 하더라도 공부하고 이런 일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일렀더니 “제 직업이 세상의 최고랍니다. 세금도 안 내죠. 가게도 필요 없고 재료도 안 들고 실컷 자고 적시에 걷으러 다녀요”라고 했다.

주일엔 S 교회가 자기 구역이고 단골이 수백 명이라고 했다. “거기 J 회장님은 50만원씩 줘요. 저한테 일부를 헌금해 주지요. ㅎㅎ 제가 한 달에 얼마 벌 것 같아요. 쓰고 있는 이 모자가 얼마짜리인 줄 아세요?” 한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수치심이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 정당하지 못한 것이 정당하고 당당하게 사는 거꾸로 가는 세상을 보는 마음에 착잡한 심정이었다.

성경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 얘기를 묵상해 보았다. 부잣집 문밖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배를 채우던 나사로는 죽어 천국에 갔다. 단 한 번 사기 쳐본 일 없고 부자 되려고 아귀다툼해 본 일이 없던 그는 하루속히 죽어 천국 가는 것이 그의 소망이고 꿈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훔쳐본 일이 없었다. 오직 병든 몸 늘 허기진 배속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제한된 자유의 몸이 영원한 자유를 찾아간 것이다. 부자도 죽었다. 지상에서 쌓아 올린 금탑의 대가로 지옥의 열쇠를 받은 것이다.

그 부자는 잠깐 여행 간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영원한 형벌이 이생에서 땅 위에 사는 동안의 삶의 현장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읽으면 읽어 내릴수록 한 편의 드라마인 이 대목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하던 일을 멈추고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게 하는 진리라는 것이다. 예화 같은데 진리라고 믿어질 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어휘로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둔다고 하였으면서도 품삯을 논하는 예로는 새벽부터 일하는 자나 오후 늦게 일하는 자에게 똑같은 삯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마음. 일의 양보다 사람의 진정성에 더 큰 가치를 두신 것일까. 결국 주인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대로 하신다는데 누가 반문 하겠는가! 긍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사람의 본질을 이미 알고 계심일까. 오른편 강도의 최후를 낙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 강도의 가치관과 마지막 순간 최선의 믿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 강도의 창자가 끊기는 최후 통곡의 회개를 받으신 것이다.

이 지상에서 그 누가 나사로처럼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 삶 전체의 소망이 오직 하늘나라에 있었으며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 그의 소망이고 꿈이었음을 보여주는 거룩한 한 편의 드라마다. 나사로는 세상에 잠시 순례자로 왔다. 나사로의 마음이 부럽다. 닮고 싶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 부자 걸인 청년이 눈앞에 가끔 아른거린다.


<아버지의 정신>

주르륵 풀리는 두루마리
단번에 두툼하게 잡힌다
노래처럼 귓가 맴도는
아버지의 절약정신
두루마리 휴지 왕실에도 없었다
휴지는 3면 치약은 2mm
우물물이 가득 고여 있어도
세숫물은 세 번 거듭 썼다
걸레를 빨고 화초를 적시고
하나님의 계명인 듯 순종했다.
어쩌다 더 잡힌 휴지는
반드시 다시 돌려놓았다

분명 엄동설한인데
무지갯빛 풍성한 청과물
수억대의 수려한 관상수
손닿는 곳마다 수두룩한 산소공급기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하였는가,
받아 누리기에 송구함은 없는가,
백번 곱씹어도 떨리는 감동
황금보다 현금보다 소중한 지금
우리들 인생 최상이 오늘이다
두 손등 적시는 감격의 눈물
절약의 대명사 아버지 덕분에
나는 늘 재벌이 된 듯
왕비가 된 듯 어깨를 펴본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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