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썰] ‘철갑상어’서 ‘LA’로…미국 잠수함 이름의 비밀

국민일보

[軍썰] ‘철갑상어’서 ‘LA’로…미국 잠수함 이름의 비밀

입력 2023-04-01 05:55
미국 해군이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공격잠수함 스프링필드함(SSN-761·6000t급)이 지난 2월 23일 부산 해군기지에 입항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2월 25일 공개했다. 미 태평양함대 페이스북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잠수함 스프링필드함(SSN-761)이 예정된 방문에 따라 부산에 도착했다.’

미국 태평양함대는 지난 2월 25일, 이례적으로 핵추진 공격잠수함의 부산 해군기지 입항 사실을 SNS를 통해 공개했다.

여기서 스프링필드는 잠수함의 명칭, SSN-761은 잠수함의 함번이다.

SS는 ‘잠수함(Ship Submersible의 약어)’을 지칭하고, N은 핵추진(Nuclear-Powered) 방식으로 기동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로스엔젤레스급’은 무엇을 의미할까.

함정은 동일한 설계를 바탕으로 함형·톤수 및 기능이 유사하게 연속적으로 건조될 때 이들 전체를 망라해 ‘급(Class)’을 붙여 분류하고, 같은 급의 초도함(1번함)의 함명을 ‘급의 명칭’으로 사용한다.

요컨대, ‘로스앤젤레스급’은 1976년 11월 취역한 공격잠수함 로스엔젤레스함(SSN-688)과 동일한 함급·기능 등으로 취역한 잠수함을 통칭하는 표현인 것이다.

배수량 6000t급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부터 운용을 시작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은 총 62척이 취역했고, 현재도 약 30여척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아군 항공모함 전단을 겨냥하는 적 잠수함을 공격·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핵무기를 탑재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미 공격잠수함 전력의 중추를 구성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은 미국 공격잠수함 중 최초로 도시 이름을 함명에 적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스앤젤레스급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 미 해군에는 스터전(철갑상어), 웨일(고래), 토톡(도미), 그레일링(숭어) 등 각종 해양생물의 명칭을 잠수함 명칭으로 사용하는 관행이 있었고, 이는 로스앤젤레스급에도 적용될 예정이었다.

해양생물을 함정명으로 부여하는 관행에 반기를 든 인물은 미국에서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었다.

그는 무려 63년간 미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미 함정의 동력원을 핵에너지로 전환하는 ‘핵추진프로그램’을 추진했고, 끝내 미 해군의 동력원을 ‘핵추진’으로 바꿔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군이었다.

리코버 제독은 미국에서 취역하는 함정의 작명에 대한 공식 권한을 지닌 미 해군 장관에게 새로운 세대의 잠수함에는 국가의 도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설득했다.

당시 존 차피 미 해군 장관은 이를 수용했고, 1971년 5월 5일 소련에 대적하기 위한 새로운 세대의 공격잠수함에 ‘로스앤젤레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미 해군부가 2011년 의회에 제출한 ‘미 해군 함정 작명을 위한 미 해군의 정책 및 관행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코버 제독은 훗날 과거의 관행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물고기는 투표하지 않는다(Fish don’t vote)”고 답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대통령, 해군 장관, 국회의원 그리고 해군 고위관계자들은 미국 도시나 주(州)의 명칭, 전직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의 이름으로 함정을 작명하는 것의 이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라며 “해군·해병대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미 해군과 시민들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짓는 중요한 방법이었다”고 평가했다.

초도함 로스앤젤레스함(SSN-688)을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잠수함은 62척 중 단 1척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 주요 도시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일설에 따르면 리코버 제독은 ‘로스앤젤레스급’ 공격잠수함 사업을 꾸준히 지지해왔던 하원의원 12명의 선거구 내 도시 이름을 첫 12척의 함정 명칭으로 정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미 해군역사유산사령부(NHHC)에 이에 대한 공식 기록은 없다고 한다.

다만 LA타임스는 로스앤젤레스함의 퇴역을 기리는 2010년 1월 24일자 기사에서 “로스앤젤레스함의 모항은 하와이 진주만이었다”며 “이 잠수함은 로스앤젤레스시 당국자들이 해군, 특히 잠수함 전력에 대한 시 차원의 지원을 설득한 후에 (로스앤젤레스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1984년 취역해 2006년 퇴역한 LA급 잠수함 ‘하이먼 리코버함’(SSN-709)이었다.

이는 또다시 관행을 거스르는 작명법이었다. 당시 존 리먼 미 해군 장관은 잠수함 작명에 대한 규정에 어긋나는 데다, 생존한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진 않는다는 관행에 위반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잠수함에 하이먼 리코버 제독의 이름을 부여했다고 한다.

해양생물을 함정명으로 부여하는 관행에 반기를 들고, 잠수함에 도시명을 붙였던 리코버 제독의 이름을 잠수함 명에 붙인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다만 존 리먼 장관의 최종 결정이 1982년 미 의회가 이미 리코버 제독의 이름을 새로 건조될 핵추진 항공모함에 부여하겠다는 결의안을 내기 전에 이뤄져 사실은 리코버 제독을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핵추진 항공모함에 리코버 제독의 이름이 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LA급 잠수함에 리코버 제독의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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