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납치할까봐 7개월간 지하에 아이 숨겼어요”

국민일보

“러시아가 납치할까봐 7개월간 지하에 아이 숨겼어요”

“정신 건강 심각”… 우크라 최전선의 비참

입력 2023-03-31 06:00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지난 23일 수도 키이우에 있는 한 학교에서 경보 신호가 울린 뒤 지하실에 마련된 공습 대피소에서 공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최전선 지역 부모들이 ‘러시아의 아동 납치’를 우려해 자녀들을 지하실로 숨기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사샤는 “아이들이 숨어 있는 지하실에 갔을 때 한 아이는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며 “그곳에 있는 아이들의 손은 햇빛을 쬐지 못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아이의 어머니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갈 곳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이그나티우스 이블레프요케(27)도 “최전선 지역 주민 중 지하실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전기, 수도, 가스, 신선한 공기 없이 몇 달을 함께 지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3월 초 바흐무트 전투가 장기화하자 어린이들을 강제로 대피시킬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러시아에 강제로 이주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부모들이 대피를 거부하고 지하실에 자녀를 숨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들과 노인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하는 현지 경찰관 올렉산드라 하브릴코는 “부모들이 자식을 대피시키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가정집을 여러번 방문해 가족과 유대감을 쌓고 아이들과 함께 피난 갈 아파트 사진을 보여주는 식으로 설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임시로 생활하고 있는 지하실은 대체로 열악하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부 주민들이 가전 기구 등을 갖다 놓는 경우도 있지만 망가진 기기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위생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봉사자 이블레프요케는 “떠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 중 일부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며 “누군가 와서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이고 집도 주고 옷도 줄 테니 대피하자’고 하니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봉사자 사샤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간인을 위한 이주 방안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