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秋 부총리 향해 “전출 막지 말라”…기재부 내부 게시판 ‘들썩’

국민일보

[단독] 秋 부총리 향해 “전출 막지 말라”…기재부 내부 게시판 ‘들썩’

달라진 기재부 위상 반영…‘중국산고기’ 용어도 등장
기재부 인사팀도 댓글…“과거 영광 잊고 현실 문제 고민해야”

입력 2023-06-08 06:30 수정 2023-06-08 08:32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기획재정부 내부 익명 게시판인 ‘공감소통’에 ‘부총리님, 전출을 막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다른 부처로 전출을 하려는 기재부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며 “자유롭게 나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글에는 2주 만에 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기재부의 업무 환경 개선과 자유로운 전출·전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한때 부처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였던 기재부의 위상이 나날이 하락하고 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인사 적체로 기재부를 떠나 다른 부처로 옮기려는 직원들의 숫자도 증가 추세다. 그러나 인사혁신처의 ‘1대 1 트레이드’ 지침에 따라 전출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만약 기재부 4급 서기관이 다른 부처로 전출하려면 같은 급수의 공무원이 기재부로 전입 신청을 해야한다. 또 해당 직원이 기재부의 업무를 소화할 만큼 능력이 있는지 따지는 심사 과정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기재부를 나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오려는 사람이 없어 ‘인력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덩달아 기재부 직원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8일 “모든 직원들의 공통된 얘기다. 내부 불만이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기재부 익명 게시판은 업무 환경 성토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한 직원은 “왜 우리 부처만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선택지가 퇴사밖에 없느냐”라고 댓글을 남겼다. 다른 직원은 “업무량이 너무 많은데 부서에 사람이 없다”며 “번아웃이 와도 꾸역꾸역 일해야 하는 게 너무 괴롭다. 업무 펑크가 나도 다 담당자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한 직원은 “더 이상 조직이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비판했다.

다른 기재부 직원은 “우리 조직은 누가 봐도 지속 가능성이 없다”며 “시키는 것에 별말 안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아 억지로 유지되는 조직”이라고 자평했다. 다른 직원도 “가겠다는 사람만 넘치고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조직 입장에서는 결원을 막을 방도가 없으니 전출 동의를 못해주는 것”이라며 “오고싶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직원도 “조직이 경쟁력을 잃었다면 규제로 사람을 막을 게 아니라 시장의 선택을 수용해야 한다”며 “오히려 사람이 나가서 승진 적체가 해소되는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일갈했다.

‘중·국·산·고·기’라는 용어도 익명 게시판에 등장했다. 저연차 사무관들 사이에서 기피 부서로 꼽히는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기재부의 앞 글자를 딴 용어다. 과거 이들 부처는 국가 경제정책과 현안을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이 컸다. 그러나 부처 특성상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릴 뿐 아니라 대통령실이나 여당 지시에 따른 맞춤형 업무가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 직원은 게시판에 “중국산고기는 인기가 없다”고 적었다. 그러자 다른 직원이 “중소벤처기업부나 국토교통부는 승진이라도 빠르다”고 답변했다.

서울 세종시 중앙동 청사. 연합뉴스

게시판이 들썩이자 기재부 인사과 관계자 A씨가 직접 해당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 여론을 달래기도 했다. A씨는 “전출을 전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전 부처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정도 있고, 우리부 내부 규정도 있다”며 “전출을 원하면 인사팀에 연락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자 “인사과의 벽이 매우 높다” “개인적 만남 전에 구체적인 전출 규정부터 공개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기재부 인사과에 따르면 실제로 전출을 신청한 직원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기재부 직원은 “전출이 어느정도 가능할 때 직접 신청을 해야지,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청하면 편한 부서 가려고 했다고 소문만 난다”며 “모두가 눈치를 보며 전출을 암묵적으로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내부에선 지난해 5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취임 이후 인사 문제가 다소 해소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재부 관료 출신으로 직원들의 고충을 잘 아는 추 부총리가 내부 복지나 승진 등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다만 타 부처에 비해 여전히 느린 승진이나 사무관을 향한 업무 떠넘기기 현상, 일부 직원에게만 제공되는 유학 혜택 문제 등 근본적인 구조 개선은 아직 요원하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이제 기재부가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부처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