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학원 빠지고 어딜 가냐고요? “통학로 지키러!” [르포]

국민일보

초딩이 학원 빠지고 어딜 가냐고요? “통학로 지키러!” [르포]

안산시 정재초 안전지킴이단 동행 취재
인도·차도 구분 없어 차 사이로 피해 걸어야
불법주정차도 점령…“친구랑 다 같이 걷는 길” 바라는 아이들

입력 2023-06-10 17:05 수정 2023-06-10 17:05

지난달 31일 오후 4시. 어린이 6명이 안산시 상록구 정재초등학교 스쿨존을 걷던 중 뒤에서 불쑥 나타난 차 한 대를 피해 양쪽으로 흩어졌다. “차에 치이는 거 아냐?”라는 말도 들렸다. 구슬땀을 흘리던 아이들 손엔 종이지도와 빨간 동그라미 스티커가 쥐어져 있었다.

정재초 스쿨존 안전을 개선하고자 뭉친 ‘어린이 안전지킴이단’의 최고참인 6학년 강유민, 김민, 김예린, 목지민, 윤예지, 이은지(13) 어린이들이다. 이날 안전지도 제작을 위한 보행환경조사에 나선 안전지킴이단을 동행했다.

보행 환경 조사에 나선 어린이안전지킴이단이 차량을 피해 길 한쪽으로 비켜있다. 서혜원 인턴기자

과속, 좁은 인도, 불법 주정차… 아이들 빨간 스티커 붙인 곳은
출발지는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학교 앞 이면도로였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없는 탓에 한 눈에도 아이들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학교가 공업 지대와도 가까운 탓인지 공업용 트럭이나 화물차가 아이들 옆을 지나는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비켜서서 기다리던 안전지킴이단 어린이들은 그런 상황이 익숙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전지킴이단이 이면도로에서 트럭이 지나갈 때까지 길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서혜원 인턴기자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유민 학생은 “골목길에서 택시가 빵빵거리더니 아저씨가 안 비키냐고 소리지른 적도 있어요”라고 일화를 전했다.

특히 최근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스쿨존에서 우회전하는 버스에 치여 숨진 고(故) 조은결 군의 사고 소식을 접한 뒤로 대형차 사고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커졌다.

김민 학생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봤어요. 제 나이 또래인데 사망했다는 것부터 마음이 아프고 슬퍼요”라고 했다. 강유민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그 뉴스를 듣고 나서 우리 동네에서 그런 사고가 나지 않게 안전지킴이단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안전지킴이단이 보행환경조사 중 벤치에 앉아 안전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혜원 인턴기자

스쿨존이지만 시속 30㎞ 제한을 지키지 않는 차들도 있었다. 안전지킴이단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사이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건널목을 지나쳐 갔다. 눈으로 보기에도 제한 속도인 시속 30㎞를 가뿐히 넘을 듯한 차량을 보고 목지민 학생은 “차들이 너무 빨라요”라고 지적했다.

이 차가 지나친 건널목은 왕복 4차로에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학교 정문 바로 앞만 보행자 신호등 설치가 의무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은 스쿨존 내에서는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더라도, 운전자는 보행자 유무에 상관없이 건널목 앞에 ‘일단 멈춰야’ 한다.

정재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보행자전용도로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다. 보행자 전용도로의 폭은 1.23m다. 김영은 인턴기자

보행자 전용도로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정재초 정문 앞 인도는 70m가량 이어지다가 끊겼다. 폭도 1.3m가 채 되지 않아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가득 찰 만큼 좁았다. 아이들도 자주 ‘길막(길을 막음)’을 당한다고 토로했다.

도시계획법 도시계획시설기준에관한규칙에 따르면 보행자전용도로는 폭이 최소 1.5m 이상이어야 한다. 상록경찰서 관계자는 “정재초 정문 앞길은 차 한 대도 간신히 다닐 만큼 좁아 인도를 더 넓히면 차가 지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정재초 앞에서 한 학부모가 아이 둘을 데리고 하교하고 있다. 오른쪽의 보행자전용도로는 폭이 좁아 주민들은 왼쪽의 '공원 길'을 택했다. 김영은 인턴기자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좁은 인도 대신 정자가 있는 작은 ‘공원 길’을 이용했다. 약 30m인 이 길은 주차장 옆 좁은 이면도로로 이어졌다. 학교 앞이지만 완전한 인도가 없는 셈이다.

이마저도 불법주정차 차량이 점령하고 있었다. 안전지킴이단은 인도를 걷다가도 주차된 차들을 이리저리 피해 걸어야 했다. 안전 지킴이단 아이들은 손에 든 지도에 빨간 스티커를 연달아 붙였다. 불법 주정차가 이어진 길을 표시한 것이다.

안전지킴이단이 길가에 세워진 불법주정차차량과 전기자전거를 피해 지나가고 있다. 안전지도에 표시한 불법주정차차량 현황이다. 서혜원 인턴기자

문제는 이 같은 열악함이 오래된 빌라가 밀집돼 있어 주차 공간이 부족한 정재초 스쿨존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라는 점이다. 상록경찰서 관계자는 “스쿨존 내 불법주정차 차들을 단속하고 있지만, 주차 공간 충분하지 않은 탓에 주민들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안전지킴이단 어린이들이 만나서 함께 등교하는 편의점이 있는 거리. 네이버지도 캡처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길인데도 스쿨존에서 빠진 곳도 있었다. 학교와 5분 거리인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안전지킴이단 아이들도 아침마다 이곳에서 만나 함께 등교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 편의점 앞으로 애들이 ‘겁나’ 많이 다니는데 스쿨존이 아니에요”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스쿨존은 이 편의점의 옆 가게인 미용실 앞 도로까지만 해당한다. 도로교통법상 스쿨존은 초등학교 주 출입구를 중심으로 반경 300m 내에서 정해지고 필요에 따라 500m까지 확대할 수 있는데, 해당 편의점은 정재초 정문과 직선거리로 약 288m 떨어져 있다.

안산시 철도교통과 관계자는 “스쿨존을 정하는 기준은 따로 없다”며 “통학 동선이나 교통량,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데, 예전에 지정된 구역이 유지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바람은 “친구들과 다 같이 걷는 길”
안전지킴이단이 직접 제작한 안전신문

다만 전혀 안 바뀔 듯한 정재초 통학로도 안전지킴이단의 노력 속에 조금씩 안전해지고 있다.

2021년 부곡동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주민 모임 ‘안전드림’ 활동 일환으로 꾸린 안전지킴이단 아이들은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안전지도가 담긴 ‘안전신문’을 제작,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통학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린 것이다. 아이들은 정재초와 부곡초의 안전지도를 각각 그려 신문에 실었다. 이은지 학생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 정재초 지도 그릴 때가 제일 재밌었어요”라고 말했다.

안전지킴이단이 제작한 통학로 지도. 부곡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지역 주민들도 아이들의 노력에 공감했다. 그 결과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정재초등학교 통학로를 개선하기로 결정됐다. 안산시 철도교통과는 정채초 스쿨존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정재로11길’의 현장조사도 완료했다. 이어 학생들의 실제 통학로를 파악할 때는 안전지킴이단이 만든 지도를 참고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안전지킴이단 어린이들이 지난해 10월 27일 부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안전드림(Dream) 정책 제안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부곡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안전지킴이단은 지난해 10월 ‘보행 정책 제안 간담회’도 열어 안산시 도시환경위원회장과 시의원 등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 앞에서 준비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아이들이 발표한 사례 중에는 건널목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건넌 일도 있었다. 이 같은 노력이 반영돼 해당 건널목에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도 설치될 예정이다.

안전지킴이단 활동을 지도하는 사회복지사 이현석(30)씨는 “아이들이 직접 위험한 요소를 찾고 바꿔 달라고 목소리를 내니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것 같다”며 “모든 변화를 끌어낸 건 우리 안전지킴이단 아이들”이라고 했다.

지켜보는 어른들도 안전지킴이단이 기특하다는 반응이다. 정재초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선경(40)씨는 “요즘 스쿨존 사고가 잦아 걱정인데 이런 활동 덕분에 우리 아이가 안전할 수 있어 엄마로서도 동네 주민으로서도 고맙다”고 말했다.

김예린 학생 어머니 최현아(49)씨도 “아이가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며 책임감도 느끼고 좋다. 예린이가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해서 학원 시간도 뺐다”고 말했다.

안전지킴이단 어린이들이 통학길 지도에서 위험한 곳을 지적하고 있다. 서혜원 인턴기자

안전지킴이단 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 말에 아이들의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학교 끝나도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는 것. 영락없는 초등학생인 이들이 통학길 안전에 바라는 것 또한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친구들이랑 다 같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되면 좋겠어요!”

서혜원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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