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폭력의 시기, 아이에게 꼭 들려줘야 할 말

[기고] 폭력의 시기, 아이에게 꼭 들려줘야 할 말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입력 2023-08-07 16:06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커피 등이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인근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아빠, 아빠, 오늘 학원에서 애들이 다 살인예고 얘기만 했어요. 인터넷에도 여기저기 글이 올라오고, 우리 동네에도 경찰들이 잔뜩 와 있더라구요.”

찌는 듯한 무더위에 벌건 얼굴을 한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 말이다. 이 한적한 변두리도 온라인에 게시된 수십 건의 살인예고 장소 중에 포함된 것이다. 폭력 난동은 불안과 공포가 치솟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됨에 따라서 모방범죄 확산을 불러올 수 있다. 잇따른 폭력 난동과 협박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위험에 노출된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은 공포와 불안전감이다. 사회가 안전하다는 막연한 신뢰감이 위협을 받는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장소나 범인의 거주지 근방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이나 근처에 사는 사람의 경우 두려움, 불안, 불안전감이 더 커질 수 있다. 참혹한 폭력 범죄에 대해 불안과 슬픔, 먹먹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꺼내놓고 서로 대화하며 공감하는 것이 좋다.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어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과 어린이도 폭력 난동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른들이 못 본 체 무시하면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상상과 유언비어에 빠져들 수 있다. 그냥 덮어두는 것보다 아이의 나이를 고려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단하게 사건을 설명하고 아이의 감정, 걱정과 불안을 자세히 물어봐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겪고 있는 두려움을 어른이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며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것을 인식하여 안전감을 회복할 수 있다. 어른과 우리 사회가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려주면 더욱 좋다.

“그 사람은 왜 폭력을 저지른 거예요?” 어른이나 아이나 어김없이 묻는다. 이 질문에는 명쾌한 답이 없다. 폭력이 발생하는 경위는 매우 복잡해서 그 사람의 인생사와 사회 문제가 엮여 있다. 특정 정신질환, 성별, 나이, 직업, 계층, 출신 등의 부류를 정해 폭력을 해당 집단의 문제로 치부하면 그 집단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만 조장할 수 있다. 불확실한 원인에 매달려 불안을 키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건설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특히 중증 정신질환과 관련된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해소하여 발병 초기에 즉시 치료를 시작하고 회복과 재활을 받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폭력 난동의 원인을 정신질환 탓으로만 돌리면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서 병이 있어도 치료받기를 꺼리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신건강 문제는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시점에나 겪을 수 있는 흔한 문제이며, 때로는 일시적인 마음의 고통을, 때로는 무거운 중증 정신질환을 가질 수 있다. 편견과 낙인은 일부 정신질환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가장 경계해야 할 방해물이다. 범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이 정신질환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로 확대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면 이겨낼 수 있어.”
아이에게 꼭 들려줘야 할 말이다. 비난과 혐오는 모든 것을 악화시키고 공감과 위로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한다. 참혹한 폭력으로 인해 충격과 비탄에 빠진 사망자 유가족의 애도를 돕고, 부상자와 그 가족, 현장 목격자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 공감과 위로가 담긴 정신건강 지원이 시급하다. 또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방지하고 치료 체계를 개선하여 조기 치료와 재활로 안내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가 환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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