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리려, 엄마 살리려…간 떼어준 아버지와 아들

국민일보

아내 살리려, 엄마 살리려…간 떼어준 아버지와 아들

입력 2023-08-19 16:00
서규병씨는 아들 현석씨와 함께 아내 고명자씨를 위해 각자 한쪽 간을 떼어 고씨에게 줬다. 사진은 서규병씨와 아내 고명자씨. 서규병씨 제공

퇴직 경찰관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자가면역성 간경변증을 앓고 있는 아내이자 어머니에게 각자 하나씩 간을 떼어준 사연이 알려졌다.

강원도 춘천시에 거주하는 서규병(69)씨와 아들 현석(40)씨 부자는 지난달 2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내이자 어머니인 고명자(68)씨에게 각각 자신의 한쪽 간을 떼어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앞서 고씨는 10년 전부터 병환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오랜 투약으로 인해 부작용이 생겨 더 치료가 불가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 서씨는 본인 간이라도 떼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병원 의료진을 몇 달씩 설득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서씨의 수술을 쉽게 허락할 수 없었다. 고령인 탓에 자칫 수술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 서씨는 “저 역시 고령이라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이 위험하다며 만류하더라. 그래도 아내를 살릴 마지막 방법은 이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아들 현석씨 역시 일반적인 공여자의 절제할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두 명의 공여자에게 간을 받아 이식하는 ‘2:1 이식’ 방식으로 각자 간 일부를 떼어 고씨에게 주기로 했다.

서현석씨는 일반적인 공여자가 절제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위해 한쪽 간을 떼어 줬다. 뉴시스

긴 시간 진행된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이후에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남편 서씨는 적지 않은 나이 탓에 아들보다 2시간 30분가량 더 늦게 깨어났다.

고씨 역시 회복이 늦어져 3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다행히 고씨의 건강은 차츰 회복됐고 부자는 고씨가 일반병실로 옮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고씨는 기관절개술을 받아 말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남편과 아들에게 손글씨를 썼다.

고명자씨는 수술 후 남편과 아들에게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써 고마움을 전했다. 서규병씨 제공

그는 화이트보드에 “소중한 간을 줘서 매일 한 번씩 만지고 있다”면서 “아들 엄마가 미안해. 잘 먹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살자”라고 적었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첫째 아들이 심장판막증으로 치료 약이 없어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진단을 받고도 기적같이 살아났으나, 결국 대학 졸업 후 직장까지 다니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슬픈 상처가 있다.

한편 이들 부자는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킨 할아버지 서성섭씨의 아들이자 손자이기도 하다.

고명자씨는 수술 후 남편과 아들에게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써 고마움을 전했다. 서규병씨 제공

할아버지 서씨는 어린 시절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초등학교 연못에서 친구와 나라꽃인 무궁화를 몰래 심다가 일본 순사들에게 발각돼 고향을 떠나 피신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한국전쟁 때는 소대장으로 복무하며 홍천 삼마치 전투에서 조국을 지키다 전사했고, 현재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

아버지 규병씨는 경찰 재직 시 일선 수사 형사 등으로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퇴직 후에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밑에서 일하다 이번 이식 수술을 위해 직장을 떠나야 했다.

아들 현석씨 역시 평생을 장애로 살아온 형에게는 착한 동생이었고 부모에겐 착한 효자로 알려졌다.

오기영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