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교사로 일할 뿐이었다” 대전 초등교사 유족 인터뷰 전문 [이슈&탐사]

국민일보

“아내는 교사로 일할 뿐이었다” 대전 초등교사 유족 인터뷰 전문 [이슈&탐사]

입력 2023-09-14 17:50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고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 A씨의 남편 B씨(46)는 지난 13일 대전 서구 대전교사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국민일보를 만났다. B씨는 아내가 반복되는 민원에도 불구하고 계속 교사로서의 일을 다하려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A씨의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B씨는 “선생님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안겨줄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B씨는 “나 같으면 민원이 들어오면 아무 짓도 안 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결국 뉴스에 나오는, 학생이 선생님이 있는 교단에 드러눕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국민일보와 B씨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13일 대전 서구 대전교사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대전 사망 교사의 유족이 국민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아내는 서울 서이초 교사의 사건이 알려진 뒤에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B씨=아내는 서이초 사건이 터진 이후로 “과거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너무 힘들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집회는 꼭 가야겠다”고 하면서 지난 7월 첫 집회부터 올라갔었다. ‘올라가는법’을 써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녀오면, 그래도 “내가 힘을 보탰다”면서 위안을 갖는 듯했다. 토요일에 다녀오면 그날 저녁이나 일요일에 앉아서 유투브를 봤다. 집회에 막상 직접 참석하면 사람들이 많고, 뒤에 앉아 있으면 잘 안 들리고 하지 않는가. 유튜브 방송 등으로 다른 선생님들이 겪으신 경험과 발언을 들으며 되새기고, 또 아파하고 했다. 매주 그렇게 집회에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2019년 1학년 담임교사로서 많은 일을 겪은 점이 거론된다. 2019년 그해를 전후로 아내가 달라졌다고 느꼈는가.
▲B씨=아내는 결혼한 이후에도 학교를 여러 곳 옮겨 일했다. 마지막 학교가 세 번째다. (아동학대 고소) 사건이 터졌던 학교 이전의 학교도 그곳에 있다. 학교에서 같이 생활한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2019년 사건 이전 학교에서는 아내가 한없이 밝고 명랑한 선생님이었다고 기억들을 하고 계신다. 사건이 발생한 두 번째 학교에서는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도 밝음을 유지하려 했는데,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 1학기 시점에 아내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내는 바른 소리를 잘 하는데,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당차다’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그 이후에는 바른 소리를 해도 민원인이나 관리자들이 “왜 저렇게 하는가” 하는 식이 된 것 같다.

-바른 소리를 한 예를 들 수 있겠는가.
▲B씨=구체적인 학교의 일은 잘 모르겠으나, 민원인들이 찾아와서 불만을 제기하면, 그냥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사과하고 민원인들을 일단 달래서 보냈으면 좋겠다고 관리자들은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런 데서 “왜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가” 했던 것이다. 한 학부모가 ‘인민재판’이라 주장하는 그 때에도, 그 글에 올려놓은 속의 말을 빌자면, “자신의 아이를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한다. (아내가) 사과하지 않아 아동학대 고소를 했다고 (학부모가)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는, (아내는) 병가를 내고 학교에 가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에게 “이만저만해서 너를 그리 지도했었다, 네게 상처를 주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돌아온 것으로 안다. 사과하라 해서 무턱대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정확하게 “네가 어떤 행위를 해서 내가 조치했다, 그것이 네게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달하고 온 것이다.

-학부모의 악성민원,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많았다. 이 일이 지난여름부터 이슈가 된 뒤 아내는 어떤 반응이었나.
▲B씨=나와 문제의 해결방안까지 논의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아내는 집회에 계속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뭔가 세상이 바뀔 것 같다’며 들떠 있었다면, 일정 시간이 지나서는 ‘왜 바뀌지 않지’ 하는 모습이었다. 교육부가 교권 보호의 대책을 발표했는데 법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런 발표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나왔다. 조금 바뀌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아내는 “그것은 선생님들의 의견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싸우겠다”고 이야기했었다.

지난 13일 대전 서구 대전교사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대전 사망 교사의 유족이 국민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아내는 비극을 겪기 직전에 4일 병가를 내고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B씨=상경하진 않은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까, 집에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하니 아이들 때문에 못 올라갔다고 선생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있다. 병가를 내고 마음으로만 동참한 것이다.

-근무하던 학교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 이전과 이후 벌어진 일들도 아내를 더욱 괴롭게 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B씨=그 전 주에 힘들어 했다. 교육부에서는 9월 4일에 병가나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면 파면 또는 해임까지 이야기했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분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갑자기 “파면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기에 “걱정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도 했다. “파면 당할 것 같다”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 선후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교에서는 9월 4일에 연가 병가를 낼 사람을 조사했다. 아내가 동참한다 밝혔고, 학교에선 총 4명이 참여하겠다고 밝힌 듯하다. 이후 교장 선생님이 4명과 상담을 하겠다고 이야기해서 더 부담감을 갖고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상담이 이뤄지진 않았다 한다. 다른 선생님들이 소식을 듣고 병가를 동참해 주셔서 4명이 아니라 더 늘게 되었고, 선생님들이 교장 선생님에게 “왜 4명을 타깃화하느냐” “하려면 전체회의를 하자”해서 어필을 해주셨다고 들었다. 교내장학란 교장이 참관하는 수업이라 이해하는데, 선생님들이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9월 4일 집회 참석을 둘러싸고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내에게 힘들게 작용했다고 말할 수는 있나.
▲B씨=그 당시 스트레스를 줬던 것 중에서는 큰 부분, 많은 부분이다.

-이것은 그간 지적돼온 갑질과 감정노동의 문제로도 보인다. 참아야 하는 노동자 앞에는 민원을 거듭하는 고객이 있고, 일터의 관리자는 이러한 악성민원에 단호히 대처하고 보호하지 못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B씨=나는 거기서 하나 더 시스템적 부재를 말하고 싶다.
-시스템의 부재란, 구체적으로는 무엇인가.
▲B씨=아동학대법이라고 하는 것. 구체적인 사례는 없이 법이라는 것이 너무 포괄적으로 러프하게 쓰여 있다 보니 끼워 맞추는 격이 된다. 시행령 시행규칙이나 교육부훈령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질 못하고 있다. 한번 아동학대 신고 당하면… 그런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학부모는 더욱 요구할 수 있고 그게 나아가 협박의 수단이 되는 것이고, 관리자들은 선생님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기초적인 시스템이 없을뿐더러 민원인을 달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니 점점 더 그렇게 갈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가 관리자의 피해로 돌아가거나 학교 명망에 문제를 주는 식이니 한계도 있다.

-2019년 사건 당시 아내는 교권보호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잘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B씨=“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 달라고 할 것”이라고 울면서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안 되고, 또 안 되고…. 그 말을 한번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여러 번, 1학기 때부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지도한 것을 두고 학부모가 시비를 걸고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고 그런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제지할 수도 없고, 손발이 잘려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럼에도 교보위는 열리지 않았던 것인가.
▲B씨=“교권보호위원회가 안 열려서 억울하다. 열려야 내가 뭔가 할 수 있는데, 나는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다. 그때 내가 “교보위가 열릴 요건이나 규정이 없느냐, 어딘가 지침이 있지 않겠느냐, 그걸 들고 오면 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뭔가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법과 매뉴얼이 있으면 그에 따라가면 될 텐데…. “그런 매뉴얼도 안 가지고 하소연을 하고 있느냐” 했던 기억도 난다.
-실제로 교보위는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 많지 않은가.
▲B씨=그렇다.

대전 사망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했던 학부모가 운영하던 음식점에 항의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지훈 기자

-한편으로는 비극적 사태 이후 민원 학부모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학부모의 가족 신원까지 공개됐다. 유족으로서의 슬픔이 있겠지만, 이 일이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기도 한다. 사망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심정인가.
▲B씨=사적 제재는 대한민국 법 체계 내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침묵) 그런데, 잘 모르겠다. 안타까운 것은,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겠지만, 법이라는 것… 곧 개인정보의 보호부터 신상 보호, 프라이버시 보호 등의 제도들이, 어떻게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상을 치르고 동네를 한번 돌아 봤다. 집에 짐 챙기러 와서 동네를 돌아 봤었는데… 그 음식점 앞에 경찰이 지키고 있더라.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또다른 곳에도 가 봤더니 그 앞에도 경찰이 지키고 있고. 어느 분이 ‘맘카페’에 글을 올려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지 말라”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입장문이 있기에 “이제 오셨네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썼다. 이것이 명예훼손 고발이 된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솔직히는 속이 많이 상하더라. ‘가해자들을 보호하고 가해자들을 위해서는 저렇게까지 하는데, 피해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네’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명예훼손 고발을 이야기하지’ 싶기도 했다.

-가해 학부모로 지목된 이들이 올리는 ‘해명 글’에는 유족으로서 화가 나겠다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계속되는 것도 비이성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B씨=제 마음 속의 양면이 있다. 교육 받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성의 잣대로 봤을 때에는, 사적 제재나 무분별한 비난 욕설, 쓰레기를 던지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려됐던 것은 어린 학생들이다. 성인은 거기서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하는 수준으로 하는 것이고, 조금 어린 학생들이 그 분위기에 취해 계란을 던진다거나 쓰레기를 던진다거나 물통을 던진다거나 하는 것이 있었다. 일종의 놀이 비슷하게 뭔가 이 역사의 현장에 와서 뭔가를 했다는 식인데 그런 모습은 조금 원초적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분노가 있겠지만 이성적이진 않다, 사적 제재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이게 교육 받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음 한구석에서 나온 외침이다.
-다른 한구석에서는.
▲B씨=또다른 순수한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그 분들의 해명 글을 보면서, 나는 ‘받아들이시라’고 쓰고 싶었다. 그게 내 감성으로서의 솔직함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심으로만 덮어둘 수밖에 없다.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 관리자의 방관, 교사의 감정노동은 멈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B씨=당연히 멈춰져야 한다. 아내가 교사노조 측에 자신의 사례를 제보하며 한 말이 있다(대전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교사노조가 지난 7월 교권침해 행위를 설문조사할 당시 본인의 경험을 전했고, 이때 “다시 돌아보며 매우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돼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교사의 지도방식만 문제 삼거나, 지금도 자신의 문제를 모르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이 시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전 사망 교사의 근무지였던 대전 한 초등학교에 조화가 놓여 있다. 김지훈 기자

-교사로 살아온 아내의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겠는가.
▲B씨=생전에 아내가 말했던, 선생님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안겨줄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학교는 유치원이나 보육원이나 보모가 아니다. 한명 한명을 돌보면서 ‘우쭈쭈’ 해주고 추켜올려주는 기관이 아니라, 집단이 사회생활을 배우는 곳이다.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엄할 때는 엄하게, 틀린 것은 바르게 고칠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부모 무섭다고 아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 말을 못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항상 학부모의 민원이 거세게 들어와도 지도를 했던 것이다. 나 같았으면 민원이 들어오고 하면 아무 짓도 안 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결국 뉴스에서 나오는, 학생이 선생님이 있는 교단에 드러눕는 학교가 될 것이다.

-자기 역할을 포기하면 병들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인가.
▲B씨=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힘들게 몰아붙이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다. 그게 바뀌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누구나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 사랑한다는 게, 무조건적인 ‘좋다 좋다’의 사랑이 아니라, 때로는 매를 들고 때로는 칭찬을 하고, 그러면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칭찬을 하면 ‘편애한다’며 아동학대, 꾸짖으면 정서적으로 아동학대다. 선생님들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내 의지와 소신을 갖고 아이들을 키울 바탕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률 대응도 논의할 예정이라 들었다.
▲B씨=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에 현재의 이 법 체계 내에서 그 사람들을 벌을 줄 수 있을까 회의감도 들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꼭 벌을 줘야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은 깊이 있게 하진 않았다. 교사노조 쪽에서도 항상 저에게 유족의 뜻이 어떤지 묻곤 하는데, 그럴 때에도 쉽사리 답을 못하고 있다. 첫째로는, 일단 경황이 없어 고민하지 못했다. 둘째로는 ‘왜 터졌는지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멀리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셋째로는, 아내의 명예회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아내는 단순히 나약해서, 자기 아픔을 못이겨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이 사회와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지, 나약한 것은 아니다. 처벌보다도 아내의 명예를 회복하고 다른 선생님들이 동일한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다만 그 사실관계들 속에서 드러나는 특출한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고 널리 공유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누구도 그런 일들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처벌을 원할 생각이다.

-아내가 남긴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B씨=아내는 서이초 사건 이후에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한번 바뀔 동력을 얻는 것 같다”는 기대를 했었다. 처음에는 참여하면서 기대했다고 보면, ‘공교육 멈춤의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내부적인 압박, 정부의 압박,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 힘도 많이 빠졌을 것 같고, 무력감도 느꼈던 것 같다. 아내가 물론 열사처럼 외치면서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자기의 그런 모습들을 남은 사람들이 잘 새겨서, 고인의 요하는 바를 잘 이끌어 나가 달라, 그렇게 끌고 나가기 위한 종을 울린 것이라 생각한다.

이슈&탐사팀 대전=이경원 기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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