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 日 애니 무너진다”… ‘토토로’ 지브리마저 두 손 든 까닭

국민일보

“10년 내 日 애니 무너진다”… ‘토토로’ 지브리마저 두 손 든 까닭

후계자 찾기 난항에 수익성 악화
“대기업 힘 빌리는 수 밖에 없어”

입력 2023-09-23 11:17 수정 2023-09-23 12:38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1988년 공개한 장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

“이제는 대기업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 사장은 지난 21일 지브리 경영권을 일본 민영 방송사 니혼테레비에 넘기는 이유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니혼테레비는 일본 최대 신문사인 요미우리신문을 발간하는 요미우리 그룹의 민영 방송사다. 지브리의 존속을 위해선 독립 경영을 유지하기 보다 대기업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85년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세계적인 히트작을 다수 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니혼테레비가 지브리 사장을 지명한다. 지브리는 니혼테레비의 경영 지원을 받아 작품 제작에만 전념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 일본 도쿄도 코가네이시 스튜디오 지브리 본사에서 스즈키 도시오 지브리 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스즈키 사장은 지난 21일 도쿄도 코가네이시 소재 지브리 본사에서 니혼테레비에 대한 지분 양도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82세, 나도 75세”라며 “작품 제작은 지금처럼 계속하되, 경영은 대기업 힘을 빌리기 위해 오랜 인연이 있던 니혼테레비에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니혼테레비는 1985년 미야자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TV 최초로 방영한 방송사다.니혼테레비는 지브리 지분 42.3%를 다음 달 6일 취득해 최대 주주에 오를 예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인 지브리가 대기업 산하로 들어가자 일본 내부는 “올 것이 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이 고령화되고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지브리 역시 생존을 위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제국데이터뱅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30%는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3일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10년 내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지반 침하가 일어날 수 있다”며 “저임금과 기술 계승의 어려움은 지브리가 창업했던 1980년대와 지금이 변한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딜레마에 시달려 왔다. 니혼테레비에 경영권을 넘기기 전에도 스즈키 사장은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경영을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이를 반대하고, 아들 역시 고사했다. 앞서 미야자키 감독은 여러 차례에 걸쳐 후계자 찾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2013년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개봉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7년 이를 번복하고 다시 제작 일선으로 돌아왔다.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감독·각본을 맡는 등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내부에선 “애니메이션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OTT 서비스 확산과 함께 ‘귀멸의 칼날’ ‘최애의 아이’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지브리와 같은 독립 제작사의 생존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로고, 2008년 개봉한 ‘벼랑 위의 포뇨’, 2011년 개봉한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0년 개봉한 ‘마루 밑 아리에티’. 각 화면 캡처

과거 지브리는 ‘이웃집 토토로’ 등을 제작할 때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작품마다 70명 안팎의 인원을 모아 제작한 뒤 해산하는 일을 거듭했다. 고질적인 저임금도 문제였다. 1989년 ‘마녀배달부 키키’ 개봉 당시에도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의 급여는 통상 월급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신규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지브리는 정규 직원을 채용하고 고정 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세계적 인기에도 경영난이 심화되자 지브리는 2014년 결국 제작팀을 해산했다. 미야자키 감독와 오래 손발을 맞춘 직원들이 퇴사하고, 다시 작품마다 소수 인원을 채용하는 관행으로 되돌아왔다.

일각에선 대기업의 품에 들어간 지브리가 다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주도하길 기대한다. 미국 디즈니와 같이 장편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OTT 등 글로벌 진출, 지적 저작권(IP) 확대 등으로 작품성과 수익성을 모두 개선하는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포(老舗)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대기업 산하에 들어가면서 참신한 작품과 비즈니스 구조를 갖추는 것은 성장하는 산업의 건전한 모습”이라며 “지브리 팬들의 신뢰와 기대에 부응하는 운영이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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