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을 죽이나… 서비스직 자살자 매년 1000명 이상 [이슈&탐사]

국민일보

누가 이들을 죽이나… 서비스직 자살자 매년 1000명 이상 [이슈&탐사]

매년 1000명 넘는 서비스직 극단선택
정신질환 산재 인정 5년새 121.4% 증가
“‘자살 고위험군’ 세부조사 필요”

입력 2023-09-24 07:31 수정 2023-09-24 14:34


온 사회가 갑질의 폐해와 감정노동자 보호를 부르짖은 이후에도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숫자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일로 정신질환을 얻었다고 인정된 숫자는 5년 사이 2배 이상이 됐고, 대표적 감정노동자인 서비스·판매 종사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10년째 연 1200명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감정노동자 범위와 고위험군의 정밀 조사를 시작으로 선제적인 보호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 청구해 24일 입수한 ‘정신질병 산재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병 사유에 따른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2018년 201건에서 지난해 445건으로 121% 증가했다. 이 통계가 모든 갑질-감정노동 부작용을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산재 승인이 보수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증가세라는 평가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산재의 급격한 증가세의 유력한 이유로 ‘인식 변화’와 ‘여전히 심각한 갑질’을 꼽았다.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일단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이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 출신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아직 국민의 기대수준에 맞는 직장문화를 갖추지 못했다. 아직도 직장에서 폭력과 성희롱, 언어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산재 신청’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각종 제도가 개선되며 감정노동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고 이걸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갑질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감정노동 폐해를 막을 입법적 대책이 마련돼 왔으나 서비스직의 자살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보유한 최근 10년간의 한국인 자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비스 종사자 및 판매 종사자’의 자살자 수는 2021년 1267명이다. 10년 전인 2011년(1333명)에서 소폭 줄어든 숫자지만 서비스직의 자살 비중은 8.4%에서 9.5%로 오히려 늘었다.


김 교수는 “예전에 비해 감정노동자에 대한 각종 보호조치가 생겼지만 그들의 정신건강 수준이 확연히 좋아졌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는 일반 인구에 비해 우울증이나 자살 생각의 위험성이 2배가량 높다. 극단적 선택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 만큼 감정노동을 자살의 유일한 요인으로 단언할 수 없지만, 감정노동을 빼고 이들의 비극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최근 자료를 보면 과로와 갑질이 직장인 자살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고위험군’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조사와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감정노동자의 한 부류인 ‘커스터머서비스업’에 대한 보호조치는 상당히 개선됐지만 다른 부류인 ‘휴먼서비스업’은 아직 감정노동 범주에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 이렇다 할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콜센터 직원이나 백화점 판매원 등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직군의 이들은 감정노동자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지만, 교사나 요양보호사, 가사노동자 등 그 외 직군은 아직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진단이다.

백 교수는 자살 통계를 더 엄밀하게 작성해 ‘고위험군’을 밝혀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자살 통계는 사망 당시 직업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집계된다. 일터에서 오래도록 괴로움을 겪은 이가 자살 직전 실직했더라도 그를 ‘무직’으로 간주한다. 백 교수는 “대개 자살까지 이르는 이들은 좌절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실직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노동의 문제와 결과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살하기 전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 김지훈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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