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 염려” 백종우 전 심리부검센터장 일문일답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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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 염려” 백종우 전 심리부검센터장 일문일답 [이슈&탐사]

입력 2023-09-24 07:32 수정 2023-09-25 13:52
매년 1000명 이상의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특별한 상황이 공유되거나 구체적인 유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들이 어떤 이유로 극단선택을 했는지 밝혀내기도, 단언하기도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現 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부)는 극단선택을 한 이들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사인을 밝혀낸다. 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 자살자의 생전 모습을 추적해온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과 폭력은 전염력이 있다”며 비슷한 자살 고위험군의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했다.

백 교수를 만나 감정노동자의 자살 실태와 위험성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의료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 교수는 과거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하며 자살자의 사인을 밝혀내는 작업에 참여했다. 윤웅 기자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장 출신이다. 심리부검이란 어떤 개념이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백 교수=전통적 부검이 사망자의 물리적인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심리부검은 사망 당시 고인의 상황과 심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가족과 동료의 인터뷰, 일기, 유서, 금융기록 등을 살펴본다. 현재는 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부에서 이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감정노동자의 자살은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심리부검의 영역에서 감정노동자의 자살을 해석한다면 어떤 특징이 있는가.
▲백 교수=심리부검 대상이 되는 분들을 보면 직장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다. 직장 문제를 밝혀내려면 동료들의 증언이 필수적인데, 동료들이 이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심리부검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유가족조차 괴로운 기억을 떠올려야 해서 많이 힘들어하신다. 심지어 애써 얻은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도 많다. 동료의 심리부검에 참여해 직장 내 일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종의 내부고발로 비춰지는데, 직장인 입장에서 그렇게 하기를 힘들어하신다.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매년 1000명 이상의 서비스직군 감정노동자들이 극단선택을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감정노동자 심리부검 사례가 있는가.
▲백 교수=직장에서 승진해 새로운 부서로 발령나고, 주변에서 모두가 축하하던 분이 직장 관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승진을 하면서 근무 지역을 옮겼고, 새로운 부서에서 굉장한 직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상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이때 얻은 우울증으로 끝내 돌아가셨다.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인간관계도 좋고 촉망받는 사람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유로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갑질과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는 세태가 끝내 노동자들의 자살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
▲백 교수=외환위기 사태 이후 2011년까지 높은 자살률은 노인 자살이 견인했다. 반면 그 이후로는 청소년, 청년, 여성, 화이트칼라(사무직) 자살률이 올라가는 추세다. 자살과 폭력은 전염력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굉장한 영향을 준다. 나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살면 뭐하냐’는 생각을 갖게 되는 ‘베르테르 효과’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노동 직군 종사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살에 취약하다는 해석이 가능한가. 감정노동자 가운데서도 특히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있겠는가.
▲백 교수=3차산업 사회로 접어들며 증가한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웃음을 상품으로 파는 사람들이다. ‘진상 손님’에게도 “고객이 왕이다”는 표현에 맞춰 만족시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콜센터, VIP를 상대하는 백화점, 중환자와 보호자를 상대하는 보건의료인 등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증가했음이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서비스·판매노동자들이 전체 자살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직장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피해를 참고 넘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한다. 문제를 크게 만드는 사람을 ‘무능력하다’고 평가하는 식이다.
▲백 교수=갑질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고립되고 직장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면서 이중고를 겪게 되는 상황이다. 서비스 업종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기업이 필수적으로 할 일이겠지만, 고객을 만나는 직원의 마음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에서 다산콜센터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욕설, 성희롱 등 감정노동자에 대한 폭력 발생 시 바로 수사기관에 고발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앞으로의 자살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에게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백 교수=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초반에는 교통사고로 매년 1만3000여명이 사망했는데, 최근에는 2000명대로 줄었다. 이는 단일 요소를 개선해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교통 관련 법과 제도를 고치고 중간분리대를 설치하고 과속 방지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나. 자살 예방도 똑같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또 북유럽에서 보여줬듯 직장에서의 트라우마 등이 있는 고위험군을 빠르게 선별해 정신과 치료같이 적절한 서비스에 연계해주는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살 관련 통계가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통계와 조사를 더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백 교수=미국이나 유럽같은 경우 자살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관과 검시관이 함께 출동한다. 안전 전문가인 경찰관은 자살·타살 여부, 자살 방법 등을 조사하고 의료 전문가인 검시관은 자살자의 당시 정신적 상태나 신체 질환 여부 등을 살펴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검시관 제도가 없어 자살 연구가 경찰 조사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 김지훈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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