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변질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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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변질된 우정

입력 2023-09-26 16:54 수정 2023-10-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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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 남편은 미국에서 학업 중인 아들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고국이 그리울 때면 제주도의 설록차를 마시며 향수를 달래곤 했다.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아주버님의 목소리였다. 나는 안부를 전하고 얼른 남편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군 수사기관에서 근무하실 때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혹시 김석동이라는 네 친구 소식을 아느냐”고 물의셨다. 남편의 고교 동창이던 그는 누나의 도움으로 미8군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파는 미제장사를 했다. 남편이 해외 근무 중에도 그의 아내는 인맥을 통해서 도와달라는 절절한 편지를 보내 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남편의 가족을 돕는 마음으로 여러 거래처를 소개해 주었다. 큰 거래처를 소개받아 도움을 받은 그는 큰 은혜를 입었다며 톡톡한 재미도 보았다고 고백했다.

석동씨에게 친누나 한 분이 있었는데 그의 남편은 육군 대령으로 군 복무 내내 무슨 일이든지 맡기만 하면 충성을 다하는 사명감이 투철한 분이었다. 누나로서 남동생 하나 잘사는 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처남이 고생하는 것을 알고 석동씨의 매부는 처남의 인성을 감지하지 못하고 예비군 중대장의 일을 맡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훈련병들을 관리하던 중 여러 가지 이유로 소집에 불참하게 되면 중대장에게 뇌물을 주는 독버섯 같은 부정거래가 행해진 것이다. 훈련병의 부모님이 상을 당했다든지, 중병으로 입원을 할 때에는 서류 제출로 그 사유를 보고 정상 참작을 한다. 그러나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출석카드에 도장을 찍어주는 부정을 다반사로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품을 챙긴 사건으로 고발이 들어와 군 수사기관에 붙들려 조사과정에서 같은 학교에 다닌 동생 친구임이 밝혀진 것이다. 아주버님이 나서서 그 정보가 윗선의 지휘관까지 통보되지 않게 하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는 얘기를 예전에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버님의 선처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그 친구는 얼마나 감사했을까. 군법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아주버님은 동생의 친구에게 은인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분명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 해외에 나와 있는 친구를 찾은 것은 그가 이제 성공하여 무역회사를 경영하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었다. 모처럼 과거 자신의 인생에 은인이 돼 주신 형을 통해 친구의 주소를 알아내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가 건축자재를 수입하기 위해 전문가인 친구를 찾아 친구의 형까지 동원해 연락한 것이다.

형은 친구의 소식을 전해주면서 “옛날 일이지만 석동이라는 그 친구 수많은 예비군 훈련병들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 사인을 해주던 중벌을 저지른 위험한 친구였다. 무슨 일로 너를 찾는지 모르겠으나 매사에 조심하라”고 하셨다.

몇 날이 안 되어 석동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이 친구 너무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네. 여러 가지로 지난날 고마웠다네.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 뭘 말만이라도 고맙네. 그런데 어인 일로 이 먼 곳까지 전화하게 됐나?”

“다름이 아니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건축자재를 수입하려는데 나는 영어도 못 하고 자네는 유창한 언어 실력과 기술사로서 건축자재에 해박한 지식도 가졌으니 도움을 받고 싶네”라고 했다. 국제계약 체결이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로 인해 아무래도 자네 같은 인재와 함께 국제사업을 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캐나다에 거처와 사무실이 있을 테니 함께 파트너로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남편은 친구가 성공해서 잘살고 있으니 지난 과거의 아픔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는 듯했다. 고향 친구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서로 좋은 기회라고 여겨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남편은 구체적인 내용을 팩스로 주고받으며 검토를 했다. 몬트리올로 연락해서 현지 본사와 여러 절차를 검토하고 남편의 이력서와 경력 증명서가 오갔다. 본사와 계약을 하기 위해 한겨울 독한 추위를 무릎 쓰고 출장을 가서 계약체결을 끝내고 계약금 2만 불도 지급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 계약서를 보내주고 비용 지급 후 서울에 연락했으나 차일피일 2~3주 송금을 미루고 있었다. 남편은 모든 상황을 알려 주었고 비용 문제도 함께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자기 회사에 어려움이 있어 무기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남편은 화를 내며 “도대체 무슨 경우냐? 이 친구야, 국제계약을 동네 애들 딱지치기 약속쯤으로 여기나”라고 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몬트리올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캐나다 현지 파트너가 한국 자기 회사 다른 부장으로 교체됐다면서 계약서를 들고 몬트리올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친구와의 약속을 깨고 서울 본사와 직접 거래함으로써 모든 수익을 독식하겠다는 의도였다. 모든 수고와 경비 그동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으나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한 개인의 실수가 국가 전체에 큰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못 하는 친구가 불쌍하다고 남편은 말했다. 외국 바이어들은 이런 식의 비굴한 계약을 가장 싫어한다. 남편은 외국 건설업체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합리적인 사고와 철저한 책임 의식에 익숙한 사람이다.

얼마나 황망했을까. 남편은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쓰디쓴 익모초를 맛보았다. 건설회사의 해외 공사 총책임자로 일하는 중에도 우리 한국회사(본사)가 국제법의 규정을 어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계약법을 지키지 않아서 그 힘든 일들이 헛수고로 돌아갔던 경우도 있었다. 남편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여러 날 식음을 전폐했다. 친구를 믿었던 자신을 질책하며 비애를 느꼈다. 누구나 부지중에 실수 할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기 위해 계획하는 것을 실수라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준 친구가 있을까. 예수님 한 분뿐이다. 우리 죄를 위해서 친히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요한복음 3:16). 우리는 친구로 인해 손해를 경험하면 그 감정마저도 쉽게 씻어내지 못한다. 남편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다. 빠듯한 이민 생활에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음에도 그 친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 인격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몇 년 후 친구 석동씨에게서 새벽 2시쯤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 친구”라고 부르며 외마디로 흐느끼고 있었다. 계속 미안하다고 흐느끼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참으로 괴로운 밤이었다. 그는 항문에 종양이 생겨 두 달째 엎드려 있다며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사죄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저려왔다. 나는 수화기를 바꿔 들고 그 방면에 최고의 전문의를 소개했다. 석동씨의 아내는 자신의 맘대로 남편의 병간호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석동씨의 어머니께서 종교를 이유로 피검사와 수혈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의 진료를 어머니 손에 맡기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중년의 아들이 사경을 헤매는데도 혈액검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어이없고 안타까웠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 : 7)

몬트리올에서 인생을 진실하게 바라보며 살았던 남편을 상상해 본다. 그는 영혼으로 말하고 있다. 혹시라도 지금 즉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그런 사람은 없는가라고 나에게 묻고 있다.


<땅의 품>

땅은 지쳐있다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오염
흙을 병들게 하고
물방개와 반딧불도 앗아갔다

땅은 앓고 있다
세상의 오물을 다 끌어안고
썩어 만신창이가 되어도
땅은 항시 제자리에 있다

땅은 어머니다
더러운 모든 것을 향한 손짓
내게로 내 품으로 오라한다
땅은 경계도 차별도 없다
품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것
다 끌어 안아주는 어머니

땅은 어머니의 위대한 품이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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