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숨진 대전 교사, ‘이례적 학폭위’ 실제 출석해 진술했다

국민일보

[단독] 숨진 대전 교사, ‘이례적 학폭위’ 실제 출석해 진술했다

“교보위 열어달라” 수일 뒤 요청… 끝내 묵살

입력 2023-10-05 16:42 수정 2023-10-05 17:27
대전지검이 2020년 10월 A씨에 대해 처분한 불기소결정서의 일부. A씨는 △시험시간에 뒤를 돌아본 학생에게 “넌 0점이야”라고 말한 일 △다른 학생의 배를 때린 학생을 혼낸 일 △교실에서 지우개를 씹고 있었는데 “껌을 씹었다”고 하며 혼낸 일 △색종이를 가지고 놀았다는 이유로 혼낸 일 △다른 학생 책에 우유를 쏟은 학생에게 “네가 똑같은 책으로 사줘야 한다”고 혼낸 일 등을 이유로 수사를 받았었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A씨의 사건을 송치했으나 검찰이 혐의가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국민일보DB

학생 생활지도를 이유로 장기간 고소‧민원에 시달렸으며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했던 대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2019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실제로 가해 학생 격으로 출석, 진술까지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A씨를 대상으로 한 이례적인 학폭위 개회 사실은 밝혀졌으나 그가 실제 출석까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A씨는 학폭위에서 가해자 측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피해 학생 측의 다음 순서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그는 학폭위가 마무리된 10여일 뒤 본인을 위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도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족은 학교 측이 근거 없는 학폭위를 열어 A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고, A씨의 정당한 보호 요청은 정작 관리자로부터 묵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은 이를 각각 관리자의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의 유족과 초등교사노조, 대전교사노조는 5일 A씨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부모들을 명예훼손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A씨가 재직했던 학교의 교장‧교감들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대전시교육청이 진상조사를 거쳐 수사의뢰를 예고한 학부모 2명 이외에 다른 학부모들도 피고소인 명단에 포함됐다. A씨 유족은 A씨의 사망 이후 많은 증거를 수집했고 다양한 경로로 A씨가 학교 현장에서 겪은 일과 관련한 제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박상수 변호사는 “총 8명의 학부모를 특정했다”고 말했다.

학교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 중에는 A씨가 2019년 대전 K초교 1학년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학폭위 아닌 학폭위’ 사건(국민일보 9월 15일자 3면 참조)이 있다. A씨는 친구의 뺨을 때린 학생을 훈계하고 교장실에 보낸 일 등으로 2019년 12월 12일 열린 학폭위에 섰었다. 학생끼리의 일을 대상으로 하는 학폭위에 담임교사가 가해 학생 격으로 서는 일부터가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통상의 학폭위와 형식부터가 달랐던 만큼, A씨는 애초 이 학폭위에 직접 출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A씨가 이 자리에 직접 출석해 학부모에 이어 진술을 했던 것으로 유족 측이 이번에 새로이 파악했다. 당시 학폭위에서는 A씨를 괴롭게 하는 질문이 이뤄져 다른 위원이 대신 답변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은 A씨가 학폭위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 같은 달 관리자에게 교보위 소집을 요청한 사실도 파악했다. A씨의 교보위 요청은 실제 있었으며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이미 확인돼 있다. 대전시교육청은 지난달 27일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A씨가 교보위 개회를 두 차례 요구했으나 학교 관리자가 교보위를 열지 않았으며, 이 관리자들에 대한 징계가 예정돼 있다고 밝혔었다.

A씨는 학생지도 행위로 학폭위에 출석만 했던 것이 아니다.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가 동반되면서 수사도 이뤄졌었다. 대전지검이 2020년 10월 최종적으로 혐의가 없다는 처분을 했다. “훈육을 넘어 학대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A씨는 혐의를 벗은 이후에도 3년간 담임이 아닌 교과전담으로 일해야 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다수 학부모로부터 4년간 총 14차례의 민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A씨 유족 측은 “이번 고소는 유족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전국 50만 교사가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A씨의 비극 이면에는 아동학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악성민원을 거듭하는 학부모의 갑질, 교사를 이러한 갑질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관리자의 미온적 대응이 있다는 게 교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A씨 사건은 교사의 지도행위를 놓고도 기계적으로 열리는 학폭위, 실효성 없이 유명무실한 교보위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도 작용했다. A씨 유족은 “사적인 제재가 많아 공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던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며 “이제는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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