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보호법, 미완의 5년… ‘돈’ 아닌 ‘사람’ 문제로 접근해야”

국민일보

“감정노동자보호법, 미완의 5년… ‘돈’ 아닌 ‘사람’ 문제로 접근해야”

입력 2023-10-18 18:34 수정 2023-10-18 18:58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5년을 맞아 서울 중구 정동에서 진행된 '2023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5년을 맞아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이하 감정노동센터) 주최로 열린 ‘2023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에서는 희망과 아쉬움의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추상적이기만 했던 감정노동의 개념이 법률로 명문화되고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다만 여전히 제도와 현장 틈의 괴리가 존재하며, 감정노동자 보호가 형식적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이정훈 감정노동센터 소장은 18일 토론회에서 형식에 치우친 제도화, 갑질 가해의 고도화, 잠복해 있던 감정노동 피해의 노출, 현장의 더딘 대응 지속 등을 한국사회 감정노동의 여전한 문제로 지적했다. 이 소장은 이와 관련해 국민일보의 ‘죽음 부르는 갑질사회’ 연속보도 가운데 학교 교육 현장의 실태조사 대목을 언급했다. 교사들은 그간 감정노동자로 선명히 분류되지 않았고 보호 대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교사들도 학부모로부터 폭언·욕설, 악성민원을 빈번하게 듣고 관리자로부터 외면당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했으며, 피해가 잠복해 있었다는 점이 실태조사로써 발견됐다는 것이다.

“갑질을 당했다는 노동자의 비중(57.0%)이 비교적 높은 반면 갑질을 해봤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20.7%에 불과하다”는 국민일보의 인식조사 결과도 토론회에서 거론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권구형 고용노동부 직업건강증진팀장은 “갑질 피해자는 많은데 스스로가 가해를 했다는 인식은 낮은 만큼, 감정노동과 관련된 국민적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노동현장을 둘러싼 각 주체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를 ‘미완의 5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감정노동에 따른 피해는 종종 사회적 비용으로 치환돼 얘기되곤 하지만 이건 돈이 아닌 사람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시적인 정책과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로 발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보호 취지의 조례가 만들어진 지자체는 245개 중 76개(31%)에 머물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울시 보건소 보건의료인력의 감정노동 현황이 제시됐다. 지난 7월 서울시 25개 구 보건소 근로자 49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고객(민원인)의 정신적, 성적 폭력에 대한 위험군 비율이 89.0%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감정노동 보호제도에 대해 ‘모름/시행하지 않음’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실태조사 연구를 담당한 김진숙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보건소가 공공기관인 탓에 감정노동 수준이 민간의료기관 대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건소 특성을 고려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보건 인력과 예산을 지역 맞춤형이 아니라 일괄 적용하면서 최전방인 보건소가 ‘감정 쓰레기통’처럼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별 노인과 장애인, 치매 인구 등 취약계층 인구의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보건 인력과 예산을 배정하는 현 시스템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보건소의 감정노동 현황에 대해 “지금껏 제가 본 집단 중 감정노동 영역에 있어서는 가장 위험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공공기관부터 악성민원인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시작해 낙수효과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이경원 이택현 김지훈 기자 young@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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