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느낄 새도 없었죠” 200명 구한 경찰관 [아살세]

“아픔 느낄 새도 없었죠” 200명 구한 경찰관 [아살세]

2023 생명존중대상 수상한 하승우 순경
빠른 판단으로 시민 200명 침착히 대피

입력 2023-12-16 00:04
1층 상가에서 소화기를 가지고 불을 끄려는 하승우 순경의 모습 . 대구경찰청 제공

휴가 중이던 젊은 경찰관이 화상을 입고도 화재 진압에 기여하고, 시민 200여명을 대피시켰습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불길에서 자신보다 시민을 먼저 생각한 대구경찰청 제5기동대 소속 하승우(28) 순경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하 순경은 지난 8월 25일 오후 경찰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고 대전의 한 식당에 방문했습니다. 그는 동기들과 회포를 풀던 중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건물 내부를 보니 시커먼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하 순경은 “불이 났다”는 한 상인의 말을 듣고 발화 지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층 화장실 천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상가 관리인 2명과 함께 인근에 놓여 있던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연기도 많고, 불길도 거센 실내에서 하 순경은 화재 낙하물에 얼굴을 맞아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대구경찰청 제5기동대 소속 하승우(28) 순경 모습.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대피도 버거웠을 당시의 상황. 하 순경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하 순경은 지난 11일 국민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긴박한 상황에서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 순경은 2차 화상을 막기 위해 옷으로 낙하물을 급히 털어냈습니다. 소화기 3대에도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 순경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소화기로는 더 이상 진화가 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고 1층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달라고 주변에 요청했습니다.

하 순경은 이후 동기 한 명을 급히 불러 정전으로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갔습니다. 1층을 제외한 2~6층은 자욱한 검은 연기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민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신원을 간단히 밝힌 뒤 건물 밖으로 대피해달라고 외쳤습니다. 시민들은 그의 지시를 따르며 모두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이 화재로 크게 다친 이는 하 순경뿐이었습니다.

지난 8월 25일 오후 7시 10분쯤 1층 화재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2층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구경찰청 제공

하 순경은 조기 진화도 시도했습니다. 그 덕에 다른 층까지 불이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하 순경은 “시민들을 다 대피시키고 나와서야 긴장이 풀려 연기와 화상으로 인한 아픔이 몰려왔다”며 “2~3주간 통원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 순경은 지금 이마에 남은 흉터를 제외하고 다친 부위를 거의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는 “최초 응급조치를 빨리 받아 상처가 심하진 않았다. 이마 쪽에만 흉터가 조금 남고 나머지는 거의 티 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불이 난 상황이 무섭진 않았을까요. 하 순경은 “‘내가 정말 도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화재를 막상 닥치니 ‘할 수 있을까’나 ‘해야 된다’라는 생각보다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 순경은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주관 ‘2023 생명존중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선 “정말 기뻤지만 이렇게 큰 상을 정말 받아도 될지 얼떨떨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는 과거 의무경찰로 복무하며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기억이 인상 깊어 경찰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하 순경은 “누군가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나서서 움직일 수 있는 경찰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어려운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큰 불 앞에서, 나 말고도 구해야 할 사람이 많은 현장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고 누구나 고민하게 됩니다. 하 순경도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불길과 연기를 마주한 경찰관의 몸은 당연하게 시민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방유경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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