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큐 ‘건국전쟁’에 부쳐… 이승만은 모세였다

[기고] 다큐 ‘건국전쟁’에 부쳐… 이승만은 모세였다

최상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베데스다 대학교)

입력 2024-02-13 13:53 수정 2024-02-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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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국전쟁’이란 다큐멘터리를 20~30만 명이 보았다고 뉴스가 되었다. ‘더 뉴스’(요즘 툭하면 더, The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고려하여)가 된 것은 선거철을 앞두고 한동훈 등 여러 정치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뉴스가 된 것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승만이 누구였는지?”라며 좀 알게 되었고, 이제야 “미안하고 죄송해졌다”는 집단 회개일 것이다. 5000만 명도 훨씬 넘는 대한민국 인구에서 몇십만이 봤다고 대수인가. 요즘 뜬다는 트롯 가수들의 유튜브 조회 수도 몇백만을 넘긴다는데 ….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무슨 말을 하랴. 진정한 가치는 화제나 뉴스거리 혹은 거품들이 한참 지난 뒤에 역사 안으로 조용히 걸어들어온 한 거인을 이제 보고 나서야 퍼뜩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구나’하는 것이 뉴스 아닐까.

“우리는 다른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른 것들에 붙여진 이름의 실제 속성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 안에 먼저 존재하지만, 그 이름의 의미는 나중에야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결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이해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단논박대전)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끈 민족의 지도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이끈 지도자다. 이 둘을 유추 비교해 봄이 필요할 것 같다. 모세처럼 이승만은 조선이란 애굽에서 조선의 백성들을 대한민국이란 새로운 나라로 끌어냈다. 이승만이 왜 모세였는가.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짚어본다.

이승만이 모세인 이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택한 종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모두는 물론 하나님이 택한 종이다. 그러나 그릇이 다른 것처럼 모세나 이승만은 그릇이 달랐다. 그 그릇을 불러내신 차원이 달랐다. 이승만은 모세처럼 이씨 조선의 왕가 집안이었지만 그 나라에 역심을 품었고 그 나라를 뒤엎기 위해 나섰다. 모세의 광야 같은 시절이 이승만에게는 한성 감옥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승만의 떨기나무는 성경이었다

이승만이 모세인 두 번째 이유는 그는 섬길 나라를 바꾸었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그의 나라를 바꾸었다. 이승만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나라를 바꾸었다. 여기에서 바꾸었다는 말은 물론 단순 국적 변경이 아니다. 자신이 바꾼 나라의 틀과 그 틀 안에 들어갈 정신(자유)과 이념(민주주의), 사상 (평등사상),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갈 경제 기반(자본주의)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애굽의 가마솥 옆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이 엄청난 내용을 이승만은 이해했고 실천했다. 그중 하나가 한동훈이 극찬해 마지않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뤄낸 농지개혁’이었다. 달리 말하면 조선 내내, 물론 그 이전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천민들은 노예였다.

왕족들과 태평세월 누리던 일부 세도가들의 기반인 땅을 모든 국민이 소유하도록 만들었다. 땅을 갈아엎지 않고는 나라가 세워질 수 없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가나안에 들어가 토지개혁 같은 영토 분배를 한 것처럼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도입하여 이후 농업 국가에서 산업국가로 탈바꿈하는 토대를 닦았다. 무엇보다 누구나 일만 하면 입에 밥알이 들어갈 수 있는 전 국민 밥그릇을 챙겨주었다.

이승만이 모세인 세 번째 이유는 이승만으로 인하여 6·25전쟁은 승리할 수 있었다. 6·25는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3자 공모 합작한 ‘식은 죽 먹기’였다. 오죽하면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일주일 뒤 부산에서 점심 먹자”고 했을까. 그만큼 다 된 밥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 같았던 이승만에 의해 대한민국이 지켜졌다. 누가 막을 수 있었는가. 결정적 구원자, 미국을 누가 불러내 올 수 있었는가. 트루먼과 맥아더와 유엔을 누가 움직일 수 있었는가. ‘스-모-김’의 흉계는 ‘트-맥-유’ 삼겹줄에 의해 결박되어 겨우 휴전선에서 동여매었다. 가나안 그 땅은 지금도 이스라엘과 그 땅 거민들(하마스 같은)과의 전쟁이 계속되듯 한국은 아직 미완의 승리, 가나안 정복 전쟁 같은 통일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승만에 의해 선이 그어졌고 막아냈다

이승만이 모세인 네 번째 이유는 한미상호 방위조약이다. 모세에게 십계명은 하나님의 언약인 것처럼, 이승만에게 한미상호방어조약은 한미간의 언약 같은 조약이 되었다. 십계명이 단순 문자가 아닌 것처럼, 대한민국을 지켜주고 번영토록 한 실천 프로그램이었다. 이승만이 밀어붙이고 이루어낸 한미상호방어조약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는 세계 최고의 딜이었다. 이 조약 때문에 오늘까지 대한민국은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승만이 모세인 다섯 번째 이유는 모세처럼 이승만은 조국에서 잠들지 못했다. 모세가 일생일대 대실수를 함으로써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비스가산 정상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그 생이 마감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이, 이승만도 4·19라는 일생일대 참사의 책임자로서 일평생 세계를 떠돌며 독립운동, 건국 운동을 했던 그는 자신이 세운 대한민국의 정착과 번영을 못 보고 하와이에서 잠들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의 비약, 상상은 자유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승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하셔야 할 일을 위해 모세 같은 한 지도자로 이승만을 택하셨다 믿는다. 하나님은 모세 같은 이승만을 통해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대한민국에 내주셨다. 이승만은 모세였다. “역사는 후대 사람들을 위한 의미의 해석”이란 요한 하위징아의 말이 이제야 다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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