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애들 때문에라도 살고 싶었는데…” 항암 환자의 절규

“초등생 애들 때문에라도 살고 싶었는데…” 항암 환자의 절규

의료계 집단행동 장기화에…절망 넘어 포기하는 환자들

입력 2024-04-01 18:00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으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연합뉴스

40대 여성 A씨는 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로부터 “세 군데에 암이 전이됐다”는 말을 들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과 딸이 눈에 밟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무균실에서 치료를 견뎌왔다. 3차 항암치료 도중 허리가 굽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반드시 암과 싸워 이겨 자녀들과 행복한 인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하며 버텼다.

그러던 A씨는 1일 “이제 포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의사 집단행동이 7주 차에 접어들면서 A씨의 항암 치료 일정도 기약 없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162㎝ 키에 체중은 40㎏대로 떨어지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있다.

A씨는 “내게 ‘치료를 더 늦출 수 없다’는 말을 했던 의사 선생님이 지금 사라졌다”며 “아이들한테 아픈 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것 보다, 차라리 지금 허리가 꺾여있더라도 자식들 옆에 있다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어린 아들 딸에겐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절망적”이라고 했다.

A씨를 지켜본 안선영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항암치료는 3주를 넘어서면 재검사를 한 뒤 다시 해야 한다”며 “치료가 밀리면서 정신적으로도 지친 상태인 데다 체력까지 떨어지면서 다시 치료 받는 것에 부담을 느껴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12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연합뉴스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일부 중증 환자들이 생존의 희망까지 흔들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계기로 의료계와 대화 물꼬가 트일 것을 기대했던 환자 단체는 언제 정상화할지 모르는 의료 체계를 기다리며 지쳐가는 상태다.

70대 췌장암 환자 B씨는 암이 2기에서 3기로 넘어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떠나 당장 치료를 할 수 없다며 퇴원 후 다른 병원을 알아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신규 입원을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B씨는 최근 자녀들에게 “의사가 날 버렸다. 절망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계속 악화하는 걸 기다리느니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지금 자유롭게 다니며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녀들은 속상한 마음에 여러 병원에 전화해 “어떻게 좀 해달라.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냐”며 문의했지만 어떤 대안도 찾을 수 없었다.

안 이사는 “항암치료는 ‘응급’이 아니라고 하지만, 치료가 1~2년 짧은 기간 걸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차질이 빚어지면 ‘서서히 악화한다’고 봐야 한다”며 “환자들은 무엇보다 의사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절망을 품고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정치적으로 풀 문제도 아니고 살고 죽는 문제”라며 “치료가 미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결국 마음부터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1일 한국중증질환연합회가 전공의 사직, 의대 교수 의료현장 이탈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이 속한 수련병원 노동자들도 전공의 복귀와 의대 교수 사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16개 병원 지부와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이 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 단체행동을 지속한다면 환자와 국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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