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쇳물 녹이던 네팔 노동자…고향에서 제2의 인생

한국서 쇳물 녹이던 네팔 노동자…고향에서 제2의 인생

인천·대구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 반다리·크리스
기아대책 통해 현지에서 교육·마을 회복 사역
마을에 ‘기독교인 삼거리’ 표지판 걸리기도

입력 2024-04-11 11:56 수정 2024-04-1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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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크리스나 버떠라이(왼쪽) 선교사와 허리 반다리 발딸센터 센터장이 10일(현지시간) 네팔 마카완푸르 발딸센터 교육관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남서쪽 마카완푸르. 불과 110㎞ 떨어진 목적지까지 3시간을 달려야 한다. 1차선 도로 위에 선 자동차는 앞차와 무단횡단 인파로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한다. 신호·횡단보도는 없다. 운전기사는 1분 간격으로 중앙선을 침범한다.

약 2시간 동안 종횡무진 바퀴를 굴린 차가 산 앞에 섰다. 이제부턴 네비게이션도 필요 없다. 길도 차선도 하나다. 준대형 트럭이 흙길 오르막을 타면서 좌우로 흔들린다. 해발 1100m, 왼쪽은 낭떠러지다. 일행이 중간에 내려 속을 게워낸다. 냇가를 가운데 끼고 산을 10바퀴 이상 크게 돌면 ‘발딸센터’에 도착한다. 2024 기아대책(회장 최창남) 회복 캠페인 사흘차인 10일(현지시간), 대구 대명교회 장창수 목사와 일행들은 아동결연개발프로그램(CDP)을 진행 중인 이곳을 방문했다.

발딸센터 아이들이 센터 인근에서 뛰어 놀고 있다.

발딸센터장 허리 반다리(46)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7년간 인천 주물공장에 일했다. 네팔어와 한국어를 섞어 쓴다. 지금은 기독 NGO인 기아대책 현지 스태프로 이곳에서 사역 중이다.

발딸센터는 2018년 문을 열었다. 초창기엔 인근 지역 아동 500명이 모였고 지금은 750명이 공부하고 있다. 센터는 일종의 학원 격인데, 영어와 컴퓨터를 일대일로 가르쳐 주는 게 공교육과 차이점이다.

센터는 교육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반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을 어른이 2배 늘었고 아이들은 10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센터가 처음 들어올 땐 이곳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안 좋게 봤다”면서도 “이젠 힌두교·불교 신자인 학부모들에게도 ‘교회 사람들 나쁜 사람 아니다’란 말을 듣는다”고 했다. 센터가 지어진 뒤 기독교인이 늘자 2019년 동사무소는 센터 앞 삼거리에 ‘기독교인 삼거리’란 표지판도 세워줬다.

반다리는 “어머니에게 기독교 신앙을 물려받았다”며 “생활은 어렵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서 센터장직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발딸센터 아이들이 골목에서 활짝 웃으며 놀고 있다.

기아대책은 발딸센터를 비롯해 네팔 현지 센터 2곳을 더 운영하고 있다. 발크리스나 버떠라이(크리스·46) 기대봉사단 선교사가 현지 사역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2014년부터 기아대책 네팔 법인인 CDPN(네팔국제아동개발프로그램) 회장으로 있다.

크리스 선교사 역시 2003년 한국의 대구 주물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였다. 기아대책과의 인연은 한국에서 다녔던 교회를 통해 맺어졌다. 그는 기아대책 첫 번째 네팔 현지인 선교사로 2009년 9월 파송 받았다.

크리스 선교사는 교육과 복음만이 네팔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팔은 여전히 30년 전 교육 체제를 따르고 있다”며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발전해야 하는데, 발전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네팔 아이들이 복음 안에서 꿈을 찾길 바란다”며 “CDPN 센터에서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 현지 의사·은행원도 되고 한국에 유학도 가봤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마카완푸르(네팔)=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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