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미니비숑 차마 못키워” 번식업자의 고백 [개st하우스]

“중국산 미니비숑 차마 못키워” 번식업자의 고백 [개st하우스]

운동장,수유실 갖춘 번식장 간신히 유지하다
유전병 많은 중국산 미니비숑 유행에 결국 폐업
동물단체에 구조 요청…“경매장·펫숍 없애야”

입력 2024-04-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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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업자 정기수(가명‧50대)씨가 동물단체에 스스로 구조 요청을 한 뒤, 비숑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모유 수유기간, 동물복지 의무사항 등을 준수하며 합법적으로 번식장을 꾸렸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대량 생산하는 불법 번식장에 밀려 파산했다. 이성훈 기자

“다른 번식장에선 강아지가 생후 20일만 돼도 어미 젖을 안줘요. 몸집이 커지면 경매 낙찰가가 5분의 1까지 떨어지거든요. 모유를 먹여야 항체가 생기는데 그러질 못하니 커서 잔병치레도 잦고 속된 말로 맛이 가는 거예요. 그게 싫어서 60일 동안 어미젖 먹이고 운동장에서 풀어 키웠는데 남은 건 수억 원 빚더미입니다. 진짜 눈물 밖에 안나요. 못 버티고 접습니다.”
-번식업자 정기수(가명‧50대)씨

지난달 20일, 경북 성주의 깊은 산골 농가에 동물단체 13개 연합 ‘루시의 친구들’ 5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이동장을 들고 도착한 곳은 농구장 8개 넓이의 대규모 비숑 번식장. 강아지들을 구조하러 온 겁니다. 활동가들이 번식장에 들어서자 벚꽃처럼 새하얀 비숑 300여 마리가 우르르 달려옵니다.

동물단체 연합 '루시의 친구들'이 300마리 번식장 비숑을 구조하는 모습. 전병준 기자

그런데 이상합니다. 번식장 하면 흔히 떠올리는 광경들, 이를테면 햇살 한 줄기 없는 어두운 실내에 두세 겹씩 쌓아 올린 철창이나 흘러내린 분뇨에서 풍기는 악취, 배설물 범벅이 된 채 짖어대는 모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이곳에는 우레탄 바닥으로 포장된 깔끔한 실내 견사와 넓은 운동장, 경계심 없이 사람을 반기는 강아지들이 있었습니다.

동물단체 위액트 함형선 대표는 “수십 곳의 불법 번식장을 적발하고 개들을 구조했지만 이렇게 청결하게 운영되는 번식장은 처음”이라고 감탄습니다. 구조 작업은 단 2시간 만에 수월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모든 비숑들이 손만 뻗으면 구조자들 품에 쏙 안겼기 때문입니다.

구조 작업 중에 북적이는 현장을 누비는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홍코야, 니 여기 있었나. 가서 잘 살아라.” “분홍아, 아빠다.” 한마리씩 이름을 부르며 이동장에 담긴 강아지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이 남성, 이곳 번식장을 운영한 정기수씨입니다. 기수씨가 허리를 숙이자 비숑 수십 마리가 우르르 몰려와 그를 반깁니다. 그는 “자식처럼 키운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니 미안하고 속상하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기수씨로부터 운영하던 번식장을 폐업하고 동물단체에 스스로 구조를 요청하기까지 지난 7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차마 철창에 가둘 수 없어…운동장 만든 번식업자

기수씨는 7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번식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번식장에서 인기가 높은 건 좁은 공간에서도 많이 키울 수 있는 미니푸들, 몰티즈, 포메라니안, 치와와 같은 소형견입니다. 하지만 기수씨는 8~10㎏의 중형견 비숑을 골랐습니다. 덩치는 제법 크지만 새하얗고 곱슬곱슬한 털이 귀여운데다 잔병치레가 없어 키우기 쉽다고 판단했습니다.

단독주택 마당에서 번식업을 시작한 기수씨. 모견과 종견 20마리는 1년도 지나지 않아 70마리로 불어납니다. 전용 번식장을 지어야 했던 기수씨는 인근 번식장들을 둘러보던 중 충격적인 실태를 목격합니다. 대부분의 번식장에서는 겨우 스무 평 남짓한 검은 비닐하우스 내부에 철창 수백 개를 층층이 쌓아놓고, 철창에는 소형견을 구겨 넣은 채 길렀습니다. 모견들은 평생 햇볕 구경도 못한 채 배변에 파묻혀서 새끼를 낳다 나이가 들면 몰래 폐기됩니다. 동물 학대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공장식 번식장입니다. 대부분의 펫숍 강아지가 이런 불법 시설에서 생산되죠.

정성껏 돌본 비숑들을 차마 철창에 가둘 수 없었던 기수씨는 철창 없는 번식장을 구상했습니다. 바닥을 푹신한 우레탄으로 포장한 방사형 견사를 짓고, 앞마당에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실외 운동장을 설치한 동물복지형 번식장입니다. 기수씨는 “실외 운동장과 수유실을 마련하느라 공장식 번식장보다 10배나 넓은 부지가 필요했다”면서 “건설비도 수억 원쯤 더 들였다”고 설명합니다.

번식업자 정기수씨가 구조를 앞둔 비숑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전병준 기자

인근 번식업자들은 기수씨 번식장을 ‘궁궐 같은 비숑 농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 강아지들은 운동장에서 햇살 쬐며 뛰놀았고, 간식으로 닭가슴살과 사과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키운 200마리의 모견은 매달 100마리의 자견을 낳았습니다.기수씨는 젖을 뗀 2개월 비숑들을 싣고 대전 유성구의 비숑 경매장에 갔습니다. 현행법상 자견은 수유기인 생후 60일이 지나야 분양이 가능합니다.

“공장식 퍼피 15만원, 운동장 퍼피는 단돈 3만원”…눈물의 폐업

전국 각지의 번식장 비숑 수천 마리가 경매장에 몰려들었습니다. 공장식 비숑은 작고 비실비실했습니다. 반면 기수씨네 비숑은 넓은 운동장에서 잘 돌본 덕분에 공장식보다 두배는 크고 건강했습니다. 기수씨는 당연히 자기네 비숑이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장식 비숑은 마리당 15만원에 낙찰되고, 기수씨네 비숑은 3만~5만원에 땡처리됐습니다. 소비자들이 더 작고 어린 강아지를 고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펫숍 업자들은 무조건 작고 어린 퍼피를 찾았고, 번식업자들도 어미젖도 못 뗀 생후 40일 미만의 퍼피를 내다 팔았습니다. 동물보호법 위반이지만 업계에서는 흔한 관행이었습니다. 심지어 더 작은 퍼피를 팔려고 생후 20일부터 모견을 굶겨 모유 공급을 중단하는 번식장도 있었죠. 기수씨는 웃자란 비숑 100마리를 넘기고 고작 300만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유행하는 미니 비숑들의 번식 실태. 비좁은 공장식 번식장에서 길러진 뒤 젖도 떼지 못하고 펫숍으로 팔려간다. 최근에는 기존 비숑의 1/3 크기로 개량된, 유전병 많은 미니 비숑이 유행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기수씨는 고민했습니다. 비숑 100마리를 젖 떼기 전에 팔았다면 1500만원을 벌었을 겁니다. 이윤으로 따지자면 매달 1000만원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지만 기수씨는 다른 번식장을 따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같은 방식을 고수했고, 운영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수익 대신 빚만 늘던 지난해 봄, 기수씨의 번식장에 또 한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기존 스탠다드 비숑의 3분의 1크기로 개량한 중국산 미니 비숑이 국내에 유입된 겁니다. 미니 비숑은 큰 인기를 끌었고, 번식업자들은 너도나도 미니 비숑을 번식시켰습니다. 그렇게 팔려나가는 미니 비숑은 어릴 적 문방구 앞에서 팔던 병아리처럼 허약했습니다. 소형견과 무분별하게 교배시켜 크기를 줄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각종 유전질환에 취약한 탓이었습니다. 기수씨는 “번식업자들 사이에서 미니 비숑은 시한폭탄 같은 견종으로 불렸다”며 “미니 비숑의 자견은 생후 1개월 안에 절반이 죽고 이후 1년 안에 80%가 죽었다”고 전합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경매장에서는 미니 비숑이 아닌 일반 비숑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수씨는 유전병으로 고통받을 미니 비숑을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6억원의 채무를 안고 번식업을 접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기수씨 손에 모견 200마리와 자견 100마리가 남았습니다. 일부는 팔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키우던 녀석들을 철창에 갇혀 일생을 보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기수씨는 동물단체에 스스로 구조 요청을 합니다. 그렇게 성사된 이날의 번식장 구조 현장은 개st하우스 유튜브 라이브로 소개돼 조회수 10만건에 달하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시청자들은 “합법적인 번식장은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300여건의 댓글로 기수씨의 용기있는 폐업을 응원했습니다.


경매장·펫숍 금지…루시법, 그 내용은?

번식업자 정기수씨 사례는 양산형 불법 번식장이 득세하는 국내 동물판매업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관련 입법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한국판 루시법입니다.

2018년 영국에서 제정된 루시법은 6개월 미만 어린 반려동물의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루시’는 영국의 한 번식장에서 평생 번식에 쓰이다 구조된 모견의 이름입니다. 기수씨네 번식장에 출동했던 13개 동물단체 연합 ‘루시의 친구들’ 역시 이 이름을 딴 단체입니다.

이미 국회에는 이른바 한국판 루시법이 발의돼 있습니다. 지난해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려동물의 공장식 번식과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경매 및 투기를 목적으로 한 동물 거래 금지, 6개월 미만 판매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루시법은 21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조만간 폐기될 운명입니다.

‘루시의 친구들’에 참여한 동물단체 카라 김현지 정책국장은 “경매장, 펫숍을 용인하는 한 양심적인 번식업자는 생업을 유지할 수 없다. 제3자 판매를 금지하고 번식장의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는 한국판 루시법을 도입해야 한다”며 “더 많은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오는 22대 국회에서 루시법을 재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루시의 친구들’은 한국판 루시법 입법을 응원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입니다. 20만명을 목표로 현재 15만명이 참여 중입니다.

👉루시법 온라인 서명운동 링크: https://campaigns.do/campaigns/838
👉루시의 친구들 13개 연합단체: KK9레스큐, 코리안독스, 위액트, 도로시지켜줄개, T.B.T레스큐, CRK, 유행사, 유엄빠, 애니밴드, 라이프, 동물권행동 카라, 안젤라, 다솜


입양 준비 마친 비숑들…"가족을 기다려요"

당시 구조된 모견 300마리는 13개 동물단체가 나눠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입양자를 모집하고 있죠. 지난 2일 개st하우스팀은 그중 44마리를 보호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의 레인보우 쉼터를 방문했습니다. 동물단체 코리안독스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현장에는 입양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미용과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가족을 기다리는 비숑들 모습. 최민석 기자

취재진이 나타나자 40여 마리의 비숑들이 달려왔습니다. 운동장에서 뛰놀며 자란 덕분인지 잔병치레 없이 모두 건강하더군요. 대부분은 3살 미만의 어린 암컷들로, 6~8㎏의 스탠더드 비숑입니다. 비숑은 성격이 온순하고 건강하지만 곱슬곱슬한 털이 엉키면 피부병에 걸릴 수 있어 매일 빗질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미용 교육이 필수적이지요.

전문가로부터 미용 및 산책줄 교육을 받는 비숑 꽃분이 모습. 최민석 기자

3살 비숑 ‘꽃분이’가 대표로 미용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선 미용도구의 감촉 및 소리와 친해져야 합니다. 꽃분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미용 도구의 냄새를 맡고 밟아보기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간식으로 칭찬하며 좋은 기억을 심어줍니다. 이어서 덜 민감한 발·이마부터 빗질과 가위질을 시도했는데요. 꽃분이는 편안하게 미용을 받았습니다. 이날 꽃분이는 생전 처음으로 산책줄도 착용했습니다. 미용 교육과 같은 원리로 줄의 감촉을 익힌 뒤 목줄을 착용하자 30분 만에 목줄을 착용하고 산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입양준비를 마친 운동장 비숑들이 가족을 기다립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입양준비를 마친 비숑, 꽃분이가 가족을 기다립니다

✔꽃분이 입양 정보
-3살 중성화 암컷, 6kg 스탠더드 비숑
-얌전하고 사람을 잘 따름. 미용 잘 받음
-산책줄이 익숙지 않아 교육 필요 (입양시 전문가가 무료 상담)
-입양시 코리안독스 입양센터 방문 필수 (경기도 용인, 레인보우 쉼터)

✔꽃분이의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인스타그램 'KDSrescue'(코리안독스)를 검색해서 DM문의 주세요. 함께 구조된 43마리도 가족을 모집 중입니다.

꽃분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31번째 견공입니다 (101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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