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똘레랑스 소개한 홍세화씨 별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똘레랑스 소개한 홍세화씨 별세

좌·우 없이 필요한 목소리 낸 실천적 지식인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

입력 2024-04-18 14:02 수정 2024-04-18 18:02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2015년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장발장은행 100일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이름을 알린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1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7세.

이날 장발장은행 등에 따르면 홍 은행장은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유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은 후 투병 생활을 해왔다.

홍 은행장은 대기업 주재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이 터지면서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상의 자유 침해’에 다른 난민 인정을 받으면서 프랑스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 국내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펴냈다. 책에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전하며 우리말로 관용에 해당하는 ‘똘레랑스’ 개념을 소개했다. 홍 은행장 본인은 똘레랑스를 두고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용인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홍 은행장은 1999년 5월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2002년에 영구 귀국했다. 2001년 2월부터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편집위원을 지낸 후 2011년에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초대 편집인으로 일했다. 2012년 진보신당 공동대표로 활동한 후 2015년 장발장은행을 설립하고 은행장이 됐다.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낼 형편이 되지 않아 노역을 하는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차상위계층 등에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다.

귀국한 이후에는 좌우 가리지 않고 한국사회에 쓴소리를 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020년 11월 한겨레신문에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이라는 칼럼을 써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 신동아 인터뷰에서 ‘586’을 겨냥해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1947년생으로 경기중,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자퇴한 후 서울대 외교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된 후 8년 만이 1977년 졸업했다.

장례는 18~21일 한겨레신문사 사우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 및 영결식은 21일 오전 8시이고, 같은 날 오후 3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봉안식을 엄수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선씨와 자녀 수현·용빈씨가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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