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의 고뇌 담은 ‘동조자’… 박찬욱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주변인의 고뇌 담은 ‘동조자’… 박찬욱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입력 2024-04-18 17:52 수정 2024-04-18 20:39
쿠팡플레이 시리즈 '동조자'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캡틴(호아 쉬안데)은 끊임없이 고민하는 상황에 놓인다. 온전한 베트남 사람이지도, 그렇다고 프랑스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그는 ‘잡종 개’란 멸시적인 말을 일평생 들어왔다. 캡틴은 북베트남 스파이이자 미국 CIA의 이중간첩으로도 활동한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의 인생은 끝없는 주변인 삶의 연속이다. “나는 반반입니다. 두 가지 피, 두 가지 언어, 나는 모순의 결합체죠”라고 하는 캡틴의 말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5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동조자’ 1화에는 캡틴의 이야기와 1975년 종전을 4개월 앞둔 베트남의 상황이 압축적으로 담겼다. 남베트남 비밀경찰에서 대위 계급으로 일하며 북베트남으로 주요 정보들을 빼돌리던 캡틴은 또 다른 북베트남 스파이가 발각되며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남베트남이 전쟁에서 패하며 긴박하게 미국으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도 놓인다.

이 긴박한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화면 연출과 위트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펼쳐진다. 전화기의 둥근 다이얼이 회전하면서 자동차 바퀴로 이어지고, 타오르는 담뱃불이 섬광탄의 빛과 이어지는 감각적인 연출, 플래시백을 보여줄 때 화면이 잠깐 멈췄다가 빠르게 되감기 되는 편집 방식과 피식하게 되는 위트가 긴장감 넘치는 작품에 숨통을 틔워준다.

박찬욱 감독이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조자’는 박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처음 내놓는 작품이자 그의 두 번째 시리즈물이다. 그가 공동 쇼러너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 각본,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동조자’는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18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지금 냉전이 끝났다지만 신냉전이라고도 하지 않나. 결코 끝나지 않았다”며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은 또 얼마나 격렬한가. 생각해보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조자’가 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동조자'의 포스터. 쿠팡플레이 제공

박 감독은 작품을 촬영하며 제작진에게 “이 작품이 갖는 아이러니, 패러독스, 부조리성에 대해 항상 명심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원작이 가진 메시지를 살리기 위해 원작에 녹아있는 문학적이고, 재치 있으면서도 냉소적인 유머들을 영상의 기법으로 담아내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그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유머를 최대한 만들려고 했다”며 “말도 안 되고 논리적이지 않아서 불쌍하기도, 비극적이기도 한 이상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베트남도 미국 사람도 아닌 그가 베트남 역사를 다룬 작품을 만드는 게 부담이진 않았을까. 그는 오히려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으면서도, 이념 전쟁을 통한 내전과 그 배후에 강대국이 있었다는 한국과 베트남의 공통점이 이 작품을 연출하는 데 오히려 장점이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이런 역사와 현실은 미국인이 이해하긴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우리에겐 숨 쉬듯, 공기처럼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적어도 미국인보다는 제가 적임자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동조자'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이 작품에서 또 눈길을 끄는 건 1인 4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감쪽같은 분장과 연기다. 그는 하원의원, 영화감독, 교수, CIA 요원의 4역을 작품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연기한다. 이처럼 연출한 이유에 대해 박 감독은 “한자리에 모인 백인 남성들, 자기 분야에서 자리 잡고 있는 성공한 교수, 영화감독, CIA 요원, 하원의원 같이 중요한 인물들이 결국은 미국 시스템, 미국 자본주의, 미국이란 기관을 보여주는 네 개의 얼굴일 뿐이구나, 하나의 존재구나 라는 걸 느꼈다”며 “그 점을 시청자가 단박에 알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월드 프리미어에서 공개된 이후 ‘동조자’는 미국 현지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대담하고 야심차고 눈부신 TV 시리즈”(타임지) “올해 HBO의 최고 작품”(인버스) “주제의 무게를 잘 담아낸 블랙 코미디”(TV 가이드) 등이다. ‘동조자’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쿠팡플레이에서 한 편씩 공개된다. 박 감독은 “하나씩 한 주를 기다려서 보는 재미도 꽤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남의 나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느껴지는 바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