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나는 리얼 크리스천?’ 생사 갈림길에서 믿음 택한 日 순교자들

[르포] ‘나는 리얼 크리스천?’ 생사 갈림길에서 믿음 택한 日 순교자들

한일연합선교회, ‘스즈타 감옥터’ ‘처자 이별 눈물바위’ ‘호쿠바루 처형장’ 등 400여년 전 일본 순교 현장 찾아

입력 2024-04-19 11:53 수정 2024-04-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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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자 화형장’ 전경. WGN 제공

18일 늦은 오후 일본 나가사키현 북서부 히라도섬. 한일연합선교회(이사장 정성진 목사)의 ‘WGN 나가사키 탐방단’은 히라도섬과 맞닿은 곳 끝자락에 있는 ‘야이자 사적공원’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야자수가 있는 이곳은 한국 제주도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님만 내 죽음 알아주신다면’

바다 건너 히라도성을 마주한 공원 내 ‘야이자 화형장’에는 일본에서 선교하다 화형당한 이탈리아 카밀로 콘스탄치오 선교사의 순교기념비가 있었다. 탐방단은 불길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응시하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기념비를 한참 응시했다.

‘야이자 사적공원’ 전경. WGN 제공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내 죽음의 의미를 알아주신다면 미련 없이 운명을 바칠 수 있다.’ 콘스탄치오 선교사가 환희에 찬 모습으로 화형 중에 고백한 말이다. 그는 누구보다 일본을 사랑했다. 1605년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1614년 도쿠가와 막부의 금교령에 의해 마카오로 추방됐다. 7년 뒤인 1621년 다시 일본에 돌아와 시가와 이키츠키에서 선교하던 중 체포돼 화형당한다. 1622년 9월 15일 그의 나이 50세 된 해였다.

한일연합선교회의 나가사키 탐방단이 18일 ‘야이자 화형장’을 바라보고 있다. WGN 제공

WGN 스태프들은 화형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일 국기를 걸어둔 공간에서 탐방단을 맞았다. 탐방단은 일본 복음화, 복음으로 하나 되는 한·일 관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찬양했다.

한일연합선교회(WGN)의 나가사키 탐방단이 ‘스즈타 감옥터’에서 스마트폰으로 AR체험을 가는 모습. WGN 제공

우리는 생사 갈림길서 어떤 선택 할까

이날 오전 탐방단은 히라도섬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오무라시 순교지에 갔다. 후미에 체험을 할 수 있는 ‘스즈타 감옥터’는 오무라시의 대표 순교 유적이다. 1600년대 초 에도 막부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후미에 정책을 고안했다. 매년 정초가 되면 전국에서 예수상을 밟도록 하는 후미에를 실시하도록 강요했다. 사람들이 예수상을 밟고 욕하거나 침을 뱉도록 한 것이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해 체포,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20㎡(6평)의 ‘스즈타 감옥터’는 많게는 33명까지 수용됐다. 당시 오무라에 거주하던 조선인 베드로 아리조와 토마스 쇼사쿠는 스즈타 감옥에 갇힌 선교사들에게 참외를 반입하게 했다가 발각됐다. 심한 고문을 받고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지만 거절, 니시자카 언덕에서 참수당했다.

WGN은 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곳에 실제 감옥 모습을 재현한 AR 체험을 기획했다. 탐방단은 스마트폰으로 큐알(QR) 코드를 인식한 뒤 감옥터에 카메라를 맞추고 화면을 터치해 처절했던 감옥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후 탐방단은 ‘처자 이별 눈물바위’ ‘호쿠바루 처형장’ ‘머리 무덤’ ‘몸 무덤’ 등을 방문했다.

한일연합선교회 탐방단이 ‘처자 이별 눈물바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WGN 제공

스즈타 감옥에 있던 수감자 131명은 검거된 다음 해인 1658년 호쿠바루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처자 이별 눈물바위’는 가족·친척들과 마지막 이별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던 장소다. 당시 너무 많은 눈물이 흘러서 지금까지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호쿠바루 처형장’ 앞에서 기도하는 한일연합선교회 탐방단 모습. WGN 제공

오무라 영내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곳은 ‘호쿠바루 처형장’이다. 참수형이 결정된 406명 가운데 131명이 1658년 7월 27일 이곳에서 처형됐다. 순교자들은 엄중한 조사를 받은 후 4열로 줄지어 무릎 꿇은 채 차례로 참수형을 당했다.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순간, 말 한마디만 바꾸면 얼마든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신음을 내지 않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탐방단은 이성로 일본 선교사의 인도로 무릎 꿇고 이들의 순교 정신을 기억하며 기도했다.

한일연합선교회 탐방단이 후미에 체험을 하고 있다. WGN 제공

한·일 순교 영성, 다음 세대에 알려야

‘머리 무덤’ ‘몸 무덤’은 참수한 사무라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공포감으로 압도돼 부활할 것을 겁내고 머리와 몸을 따로 매장한 곳이다.

네 번째 탐방단에 참여한 기독교대한감리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장 오수철 장로는 “올 때마다 순교 현장에서 ‘나는 진짜 크리스천인가, 가짜 크리스천인가’ 돌아보게 된다. 매년 은혜의 깊이는 더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섬 선교의 어머니’로 알려진 순교자 문준경(1891~1950) 전도사의 당조카인 문익수 안수집사는 이번 탐방에서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문태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한국과 일본에 순교자들이 많은데 이들의 순교 영성을 다음세대에 믿음의 유산으로 꼭 남겨줘야겠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2005년부터 일본 순교지를 알리며 순례지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WGN 활동에 고마움을 전했다. 히라도관광협회 사토무라 료 국장은 “지난 19년간 한국 크리스천들이 많이 방문해 전시 및 관련 콘텐츠가 업데이트되고 있다”며 “특히 WGN 문화행사를 통해 양국 시민이 역사와 정치를 떠나 가까워지는 것은 평화를 위한 좋은 노력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히라도·오무라(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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