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피로 움튼 화해와 용서·복음의 씨앗

순교의 피로 움튼 화해와 용서·복음의 씨앗

[호남 기독교 근대문화 유산 답사]<상> 전남 염산교회·야월교회
일제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스러져 간 당시 교인들의 순교 정신을 엿보다

입력 2024-04-22 17:44 수정 2024-04-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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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 염산면 지금의 염산교회 앞에 복원된 1950년대 당시의 염산교회 건물이다.

호남 지역에는 6·25전쟁 당시 자유와 신앙을 지키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학살당한 기독교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다. 앞서 일제 강점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수호한 기독인들의 발자취 또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일보는 22일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장종현 목사)과 함께 전남 영광 신안 목포 여수 등의 기독교 근대문화유산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우리에게 근대 문화는 어떻게 왔을까’란 주제로 24일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믿음의 선진이 걸어온 길을 살핀다. 여정에는 한교총 이철 공동대표회장, 신평식 사무총장, 허은철 총신대 교수 등이 동행했다.

전남 영광군 염산면에서 봄을 맞아 녹음이 짙은 평야를 달렸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십자가와 염산교회(최성남 목사)가 보인다. 염산교회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야월교회(심재태 목사)가 나온다. 두 교회 주변으로 영광군 천일염 생산지인 염산면의 아름다운 경치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내내 두 교회에서는 믿음을 지키려 애쓴 크리스천들의 분투가 녹아있다.
최성남(오른쪽) 염산교회 목사가 22일 전남 영광군 염산면 염산교회 내에 마련된 순교기념관에서 과거 염산교회 교인들의 순교정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은 이철 한교총 공동대표회장.

6·25전쟁 당시 영광에서만 194명의 기독교인이 북한 인민군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당했다. 염산교회에서 77명, 야월교회에서 65명이 희생됐다. 인민군은 염산교회 예배당을 빼앗아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하며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다. 염산교회 담임인 김방호 목사의 아내는 예배당을 빼앗겨 저녁 예배를 알리는 종을 치지 못한 설움에 몇 번씩 울며 돌아갔다. 공산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교인들을 인식한 인민군은 예배당을 불태웠고, 결국 염산교회 청년 기삼도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김 목사와 교인들을 집단학살했다. 교인들은 흉기에 찔리거나 돌에 묶여 바다에 수장됐다. 희생자 중에는 세 살 아이도 있었다.
당시 염산교회 김방호 목사와 교인들이 사용하던 성경 등 서적 자료.

학살은 야월교회로도 이어졌다. 야월교회 교인들은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할 당시에도 이를 반대하며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회 문을 닫고 각자 집에서 예배를 드린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지켜온 믿음은 끝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스러졌다.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전 교인 65명이 몰살된 것이다. 두 교회에는 순교 당시 쓰인 돌과 죽창 모형부터 교인들이 실제 사용한 성경 등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최성남 목사는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교인들은 순교의 순간에도 찬송가를 불렀고, 그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전했다.
전남 영광군 염산면 기독교인순교기념관 전경

상처뿐인 전쟁이 끝나고 순교의 피가 뿌려진 염산 땅에는 용서와 화해의 싹이 움텄다. 전쟁 후 동네 사람들은 불에 탄 교회를 다시 세웠다. 당시 예수를 믿지 않아 살아남은 아홉 살 최종한군은 이제는 83세의 원로장로가 됐다. 그는 야월교회 옆 기독교인순교기념관에서 안내자로서 당시 역사를 전한다.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의 백미는 서로 맞잡은 손 모양의 돌조각상이다. 천장을 뚫고 하늘로 솟구친 두 손은 거룩한 하나님의 손과 전쟁과 인간의 욕심으로 상처 나고 부서진 손을 각각 표현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손이 사랑과 평화와 화합으로 인도함을 상징한다.
최종한 야월교회 원로장로가 기독교인순교기념관 내에 전시된 ‘맞잡은 손’ 조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철 공동대표회장은 “기독교 정신은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다”며 “한국교회가 갈등이 깊어진 우리 사회에 화해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과 북이 뼈저린 아픔을 겪었지만 서로를 용서하고 감싸 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갈등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는데 신앙의 선진들이 남긴 유산과 정신이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도 “호남 지역의 굴곡진 기독교 역사는 한마디로 용서와 화해의 현장”이라며 “복수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 두 교회는 지역민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저 순교로 끝나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이어졌다는 점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이정표가 되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6·25전쟁으로 불에 탄 당시 염산교회 서적들.

한교총은 이 같은 내용을 담아 현재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 문화유산 현황과 역사 등을 총망라한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답사를 앞두고는 책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답사-호남편’을 펴냈다.

장종현 목사는 발간사에서 “6·25전쟁 당시 자유와 신앙을 지키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학살당한 전남 영광과 신안지역 순교자 유적을 포함해 호남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살피는 귀한 자료이다”며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낸 호남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도 세상 물결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지켜나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영광·신안=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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