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커피컵’ 수북…1시간 동안 홀로 치운 시민 [아살세]

버려진 ‘커피컵’ 수북…1시간 동안 홀로 치운 시민 [아살세]

명동 길거리 변압기 위 버려진 쓰레기
직접 청소한 네티즌 미담 화제

입력 2024-04-28 13:23 수정 2024-04-28 17:58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길거리에서 변압기 위에 쓰레기가 놓여 있다. 오른쪽은 시민 A씨가 이를 청소한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명동 길거리 창작물 치우면 처벌받나요?”

다소 뜬금없는 제목의 글이 지난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습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길거리 창작물을 훼손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느냐는 것이죠. 누군가의 창작물을 함부로 다루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의문을 갖고 글을 찬찬히 살펴보니 예상치 못한 내용이 전개됐습니다.

작성자 A씨가 말한 창작물은 다름 아닌 길거리 변압기에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였습니다. 변압기 위에 일회용 음료수 컵 등이 빈틈없이 놓인 모습을 ‘창작물’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부끄러운 시민 의식을 향한 A씨의 ‘재치 있는’ 일침이었습니다.

변압기 위에 가득한 음료수 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국내 명소 중 한 곳입니다. A씨는 “시민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이런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물 마냥 사진을 찍고 가더라”고 전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국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는 명동의 이같은 모습에 A씨는 무척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그는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하나하나 치워 보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A씨는 양손에 가득 든 짐을 잠시 내려두고,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 등을 차근히 분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음료가 들어있는 컵을 치우는 게 거북할 만도 하지만, A씨는 그저 청소에 집중했죠. 그가 손수 쓰레기를 치우는 중에도 변압기에 일회용 컵을 올려두고 가는 시민이 있어 잠시 씁쓸하기도 했지만요.

A씨가 변압기 위 쓰레기를 정리하기 위해 모두 내린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는 “국위선양 한다는 마음으로 1시간 정도 쓰고 나니 뿌듯했다”며 “BTS나 뉴진스만 한국을 알리는 게 아니고 우리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네티즌은 “멋진 청년” “진짜 좋은 일 했다” “오랜만에 이런 글 보니까 마음이 따뜻해진다” 등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A씨가 청소한 덕분에 깨끗해진 변압기 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가 컵을 분리해 놓은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가 올린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변압기에는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이곳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지요. 착잡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A씨 같은 이들이 있기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명’의 버려진 양심이 쌓여 쓰레기로 뒤덮여진 길거리 변압기. 그리고 그 변압기를 본래의 깨끗한 모습으로 돌려놓은 ‘한 사람’의 양심. 여린 새싹이 아름다운 꽃이 되듯,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건 거창한 기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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