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도 생수병도… 지구 살리는 호텔방 ‘비건룸’ 비밀

쿠션도 생수병도… 지구 살리는 호텔방 ‘비건룸’ 비밀

[굿굿즈]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비건룸’

입력 2024-05-12 12:30 수정 2024-05-12 13:50
지난 8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건룸'에서 비건룸을 꾸린 주역들인 (왼쪽부터)임희영 부지배인, 이현정 지배인, 정선희 매니저가 방에 설치 된 '스마트 그린 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스윙힐'이 달린 실내자전거도 방에 설치돼 있다. 문수정 기자

호텔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대감’이라는 게 있다. 최고의 쾌적함, 최상의 서비스, 그리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많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겠다는 소소한 다짐까지. 하룻밤을 묵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이용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기대감을 꽉 채우려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쾌적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집에서와 달리 수건을 여러 장씩 쓴다거나, 일회용품을 다 뜯어서 사용하고, 혼자 묵더라도 베개와 이불을 양껏 쓴다. 좋은 서비스를 받는 기분을 느끼려면 화장실의 휴지나 샴푸 린스 비누 등도 ‘새것’이 놓여 있어야 좋다. 탄소발자국을 숱하게 만들어낸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는 친환경 움직임을 저해하기 십상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투숙객도, 호텔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호텔은 서비스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고, 투숙객 또한 호텔 숙박의 기대감이 최대한 충족되길 원한다. 그러는 동시에 환경을 망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부담감 또한 들곤 한다.

이 딜레마를 최소화할 방법은 없을까.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의 ‘비건룸’은 그런 고민 끝에 나온 대안 중 하나다. 비건은 식물성 음식만을 먹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대개의 비건은 환경주의자다. 높은 기준과 까다로운 조건이 두루 맞아야 비건에 부합한다. 워커힐호텔은 어려운 벽을 넘고 비건룸을 마련했다.

비건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인테리어부터 각종 비품과 소품까지 친환경 제품으로 최대한 교체하는 데 앞장선 이들 또한 예사롭지 않다. 흔히 하우스키핑이라고 부르는 객실팀 소속의 직원들이 비건룸을 꾸렸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 현시점 만족도는 어떤지,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없는지 등을 듣기 위해 비건룸을 만든 주역들을 만났다.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비건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는 이현정 호텔사업부 지배인, 임희영 호텔사업부 부지배인, 정선희 지속경영담당 매니저가 함께했다.

지난 8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건룸'에서 비건룸을 꾸린 주역들인 (왼쪽부터)임희영 부지배인, 이현정 지배인, 정선희 매니저가 비건룸에 비치된 비건 상품들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수정 기자

비건룸에 들어서면 초록 식물들이 작은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게 눈에 띈다. LED 조명을 받으며 초록빛을 내는 식물들은 ‘친환경 방’이라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비건룸은 다른 호텔 방과 달리 건조하지 않고 공기가 맑은 느낌이 든다.

“풀잎들을 자세히 보면 손톱자국이 여러 개 보여요. 이 방에 묵는 분들이 ‘진짜야, 가짜야?’하고 손톱으로 눌러보신 거죠.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조 식물이었으면 손톱자국이 안 났을 텐데(웃음) 진짜 살아있는 식물이라 자국을 남겼죠. 이 방이 ‘친환경 비건룸’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실 수 있도록 만든 ‘스마트 그린 월’이에요.”(이현정 지배인)

그린 월은 진짜 식물들로 만들어졌고, 낮 동안 줄곧 켜있고 수경재배용 물이 순환하는 데에는 전구 하나 정도의 전기만 쓰인다.

“비건룸에는 친환경 제품이 아닌 게 거의 없어요. 이불과 베갯잇을 친환경 인증 제품으로 바꿨습니다. 동물성 제품인 구스다운 대신 한국비건인증원에서 인증받은 비건 충전재를 넣었고요. 쿠션에 쓰인 가죽은 닥나무를 소재로 한 ‘식물성 한지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욕실 제품 또한 비건 브랜드 ‘수페’와 협업으로 개발해 대용량으로 채워 넣었죠.”(임희영 부지배인)

다른 친환경 호텔 룸과는 얼마나 다른 걸까.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디테일하게 친환경 제품으로 꾸민 곳은 거의 없어요. 저희가 2021년 하반기에 최초로 만들었고요. TV나 전기포트처럼 친환경 제품으로 교체하는 게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다 바꿨다고 보시면 됩니다.”(정선희 매니저)

하우스키핑 업무를 하는 이들이 비건룸을 기획하고 구성했다는 것도 차별적인 지점이다. 대개 마케팅이나 기획팀에서 하는 일을 현업에서 진행한 것이다.

이 지배인은 “매일 각각의 방에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지, 충분히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새것으로 교체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일이 맡겨졌다”며 “6개월가량 눈 뜨고 있는 시간은 내내 고민하면서 발굴해냈다”고 말했다.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대개 소규모로 운영된다. 대기업과 협업의 경험이 없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 많은 순간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워커힐 호텔 비건룸에 비치된 닥나무 소재로 만든 '한지 가죽' 쿠션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제공

“쿠션의 가죽을 비건 가죽으로 바꾸려고 알아봤더니 대부분 해외 제품이더라고요. 파인애플이나 선인장을 재료로 만드는 거죠. 호텔은 운영을 위해 유지·보수가 중요한데 해외 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찾고 찾다 ‘한지’가 식물성 가죽으로 쓰이는 걸 알았죠. 업체에 덜컥 전화해서 쿠션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가능하다는 거예요. 어찌나 기쁘던지.”(이현정)

없던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한 번도 거래한 적 없는 곳에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 거절당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거절은 없었다. 이 지배인은 “요청 사항이 간단한 게 아닐 때도 있었는데 ‘우리도 그런 것 해보고 싶었다’며 흔쾌히 답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일하며 마음이 뜨거워지더라”고 했다.

처음 시도하는 일들에는 고생담이 동반되곤 한다. 이들에게는 ‘고체치약 담기’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작은 알약 모양의 고체 치약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용량으로만 판매한다.

비건룸에는 1~2인용을 비치해야 했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 위해 이들은 유산지를 구입한 뒤 집에서 쓰는 고데기로 밀봉하는 수작업을 일일이 해야 했다. 임 부지배인은 “이제 일회용품을 비치하지 않기로 해서 고체치약 밀봉 작업은 안 해도 된다”며 웃었다.

워커힐 호텔 비건룸 전경.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제공

비건룸에서는 호텔에 비치된 물건들만 썼을 때 쓰레기가 일절 나오지 않는다. 무라벨 생수병마저도 우산으로 업사이클링된다. 비건룸 한켠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는 자전거도 놓여있다.

에너지를 전환시켜 주는 ‘휠 스윙’이 바퀴에 달려서 전기가 생산될 때마다 불빛이 들어온다. 3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려도 핸드폰 충전이 얼마 안 된다고 한다. 전기 생산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험하는 식이다.

정 매니저는 “투숙객들은 비건룸을 경험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실 것”며 “고객의 요구가 많아지면 호텔 또한 친환경 행보에 속도를 낼 것이니 선순환을 만들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부터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부터 고민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