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 범람 막는 보루” 사설보호소 지원하는 이유 [인터뷰]

“유기동물 범람 막는 보루” 사설보호소 지원하는 이유 [인터뷰]

입력 2024-05-15 00:03 수정 2024-05-15 00:03
사단법인 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과 VIP동물의료센터가 서울 목동의 사설 동물보호소, 길동이하우스를 방문했다. 50마리를 대상으로 예방접종, 구내염 치료 등 동물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 제공 서울 목동의 사설 고양이보호소 길동이하우스

지난 13일 서울 목동의 사설 유기묘보호소 길동이하우스. 동물의료봉사에 나선 수의사들이 고양이 50마리를 한마리씩 잡아 목보호대를 채우고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앞서 이들은 길동이하우스에서 예방접종 및 구내염 치료를 했고, 이날은 경과를 확인하는 2차 방문이었다. 봉사에 참가한 수의사들은 모두 VIP동물의료센터 가맹점 소속의 의료인력. 주사제 등 의료용품도 VIP 측이 제공했다. 검진 과정에서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고양이는 인근 가맹점으로 이송돼 처치를 받았다.

길동이하우스는 김현정(56)씨가 홀로 운영하는 1인 보호소다. 매년 학대 현장 등에서 구조된 고양이 50~60마리를 혼자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어서 전문가들의 이번 봉사활동은 큰 힘이 됐다. 김씨는 “입소한 고양이가 50마리를 넘으면 예방접종까지 일일이 챙기기 버겁다”면서 “전문가들의 재능기부 덕분에 미뤄뒀던 입양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고양이 격리장도 함께 설치됐다. 국내 건설사 후원으로 제작된 동물복지형 격리장이다. 국내 격리장은 바닥 면적 기준 0.1평에도 못 미치는 협소한 크기. 반면 이곳에 설치된 격리장은 국제고양이수의사회(ISFM) 요건에 따라 국내 격리장의 4배 크기로 제작됐다.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해 배변공간과 휴식공간을 구분하고 높은 곳을 오르내리도록 복층 구조로 설계됐다.

국제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제작된 고양이 격리장. 국내 법규에 따른 격리장(작은 사진 참조)보다 4배 커,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관리자가 내부를 청소하고 물과 사료를 급여하기 편리하다. 이성훈 기자

봉사활동을 이끈 건 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한보연)이었다. 지난해 설립된 한보연은 동물병원과 기업, 시민단체 후원을 모아 의료봉사부터 물품 및 시설 지원까지 열악한 사설보호소를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길동이하우스는 한보연의 두 번째 지원 대상.

한보연 조윤주 소장은 “지역 사설보호소는 유기동물의 범람을 막는 공중보건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기업과 시민 후원이 모여 더 많은 동물을 돕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한보연을 통해 격리장 지원에 참여한 기업 DBL 담당자는 “저희는 동물실험실을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한 뒤 “동물을 불가피하게 희생해서 번 수익을 동물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보연 조윤주 소장(가운데)이 새로 제작된 고양이 격리장을 설명하고 있다. 새 격리장은 건설사 DBL이 국제 동물복지형 격리장 요건에 따라, 기존 격리장의 4배 크기로 맞춤 제작했다. 조 소장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야 구조-돌봄-입양의 선순환이 보다 활발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성훈 기자

한보연 조윤주 소장은 2014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지역 보호동물 의학(Shelter Medicine)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서울시의 동물복지 정책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보호동물의학연구원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사설보호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보호소를 도와야 하는지 조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하 일문일답.

-지역 사설보호소를 돕는 이유는?
“사설보호소는 공중보건학적인 역할이 크다.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유기동물을 민간인이 대신 수용하기 때문이다. 사설보호소가 무너지면 공공보호소에도 과부하가 걸린다. 그런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영미권에서는 사설보호소를 대상으로 한 전문가의 재능기부, 기업의 대규모 기금 제공 및 시민의 봉사활동이 활발하다. 우리도 그런 흐름에 발맞추려면 사설보호소와 민간을 잇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설보호소를 하나하나 상담하고 개선하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국내에선 사설보호소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데
“국내 사설보호소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유별난 사람이 동물을 강박적으로 모으는 곳이라는 오해도 있다. 보호소장 혼자 200마리 넘는 유기동물을 돌보는 곳이 대다수이고, 관리 수준이 떨어져 심하면 애니멀호더라고 손가락질받기도 한다. 일부 시설에서 후원금을 잘못 관리해 모든 시민단체, 보호소가 지탄받기도 한다. 이런 인식을 뒤집으려면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민간의 도움이 절실하다. 전문가 그리고 시민들이 도와야 봉사, 후원, 입양이 활발해지고 보호소는 건강해진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공공보호소가 쏟아지는 유기동물을 1차적으로 수용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보호소에서 넘어온 유기동물을 세심하게 돌보고 입양 보내는 것은 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와 사설보호소들이 감당한다. 필요한 재원과 인력은 시민사회의 기부와 봉사로 충당한다. 이런 역사가 100년 넘게 축적됐다.”

미국의 군집 TNR 전문 비영리단체인 오퍼레이션 캣닙(Catnip)의 대규모 중성화 시술 장면. 최소 75명의 의료봉사인력을 확보한 캣닙은 매주 150마리 넘는 길고양이의 중성화 시술이 가능하다. Operation Catnip

-동물병원, 기업이 참여하면 얻는 이점은?
“보호소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얻는 이점이 많다. 후원사로는 반려동물 산업군, IT회사 등 다양한데 이번에는 동물실험 시설을 만드는 회사도 참여했다. 동물을 불가피하게 희생해서 번 수익을 동물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싶다는 취지다. 현직 수의사뿐만 아니라 수의대 학부생들도 보호소를 돕고 싶어한다. 학부생 때 봉사경험을 쌓으면 유능하고 동시에 윤리적인 수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위기의 동물이 도움을 받아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보람이 커서 참가자와 기업 대부분은 다음 봉사에도 함께하고 싶어 한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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