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의 행복? ‘좋은 중년’에 달렸다

노년기의 행복? ‘좋은 중년’에 달렸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정신실 지음/성서유니온

입력 2024-05-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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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령 여성이 중년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심리치료사 정신실(53)씨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찾아온 노안과 오십견에 막연한 공포감을 느낀다. 노년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두려움이다. ‘모태 기독교인’인 정씨는 신앙인으로서 잘 늙는 법을 배우고 싶지만 주변엔 반면교사 삼을 이들만 보일 뿐이다. ‘퇴행을 받아들이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던 그에게 80대 은퇴 교수 ‘최 선생님’이 눈에 들어온다.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을 강의하는 그를 보며 정씨는 최 선생님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닮고 싶은 노인’임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수강생과 식사자리를 가진 최 선생님이 한 혼잣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사람들 노인 배려 없네. 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밥 사는 거밖에 없는데.”

정씨는 이 일 이후 최 선생님의 교재 교정 작업 도우미를 자청하며 ‘중년 이후의 삶과 영성’에 대해 질문한다. 교회 권사이지만 자신을 ‘나이롱 신자’로 부르는 최 선생님은 이것저것 묻는 정씨와 대화하며 점차 그에게 우정을 느낀다. 늙은 육체와 사별, 노년의 성(性)과 존엄사 등 쉽사리 꺼내기 힘든 주제도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던 배경이다.

외젠 뷔르낭의 작품 '예수가 부활한 날 아침에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의 다급한 표정과 몸짓에서 사별 후 스승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졌음이 드러난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갱년기를 맞아 ‘좋은 노년’을 고민하는 정씨에게 은사가 내놓은 이정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남긴 말이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노인은 왜 밥 사는 것밖에 할 게 없냐”고 묻는 정씨에게 전한 답이기도 하다. “노인이 할 일은 무조건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임을 못 박은 최 선생님은 “자식이든 제자든 상대가 누구라도 남이 나를 주도하도록 내줘야 편하다”고 한다. 젊을 땐 깐깐해도 상관없지만 노년에 들어서도 그러면 누가 만나러 오겠냐는 것이다. 둘째는 “기실 좋은 노년이란 건 없다”는 것이다. “좋은 노년은 좋은 중년의 결과일 뿐”이니 인생의 밤이 오기 전 겸허하고 진실하게 살면 좋은 노년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의미다.

중년의 갱년기 증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갱년기는 죽음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이 신호를 알아채면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면 건강에 집착하고 노화도 거부하게 된다. “좋은 노인으로 사는 건 결국 죽음과 친해지는 일”이란 조언을 들은 정씨는 “죽음과 친해지는 것은 노년의 숙제가 아닌 지금 주어진 과제”임을 깨닫는다. 또 “인생이란 처음 40년은 본문을 갖추고 나머지 40년은 거기에 주석을 다는 것”이란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을 되새기며 “생의 후반기에는 살아온 날을 반추하며 성장할 것”을 다짐한다.

70대 노인의 고독을 다룬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컷. 이웃 주민이자 서로의 고독을 달래주는 주인공들이 기대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캡처

노년기 치매 역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걱정하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도리어 치매를 앞당기게 된다. “괜히 불안에 매여 있지 말고 오늘을 잘 살아 좋은 기억을 남기는 수밖에 없다”는 게 최 선생님의 조언이다. 그렇기에 노인에게 수퍼푸드만큼 유익한 건 ‘사회적 활동’과 ‘인간관계’다.

사별 등으로 긴 밤을 홀로 보내야 하는 노후의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정씨는 “노년의 밤이 유독 캄캄한 건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과 가장 가까이 있기에 그럴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죽음 너머 삶을 바라보는 ‘부활 신앙’이다.


인생의 밤이 찾아오기 직전인 중년기를 허무가 아닌 의미로 물들이는 책이다. 여기서 고언과 격려를 쏟아내는 최 선생님은 아쉽게도 실존 인물은 아니다. 정씨는 음악심리치료사인 저자의 존재가 투영됐다. ‘시니어 매일성경’에 3년간 연재한 글을 책으로 묶어낸 저자는 “노령화를 비롯한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에 명쾌한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최 선생님의 입을 빌렸다”고 해명한다. 읽다 보면 “노년은 몹쓸 시절이 아니”며 “노화의 강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라”는 최 선생님의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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