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특수’ 죄책감에…” 1억 기부한 이 남자[아살세]

“‘코로나 특수’ 죄책감에…” 1억 기부한 이 남자[아살세]

입력 2024-06-01 15:17 수정 2024-06-02 10:52
부산 북구에 거주하는 류동령씨가 지난 3년 5개월 동안 주변에 기부한 물품들. 류씨 제공

“남들 다 어려운데…이상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최근 ‘1억원 기부 달성’ 후기를 인터넷에 올린 류동령(44)씨가 지난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류씨는 경제가 휘청이던 코로나19 시기 외려 1억원 상당의 현물 기부를 목표로 세웠다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사업체가 코로나19 기간 급속도로 성장할수록 류씨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기회였던 코로나19가 누군가에게는 큰 타격이었다는 생각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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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류씨는 자신에게 온 행운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로 했다. 2021년 1월 막연하게 ‘기부액 1억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네이버 ‘해피빈’ 등 기부 캠페인이 올라오는 각종 사이트를 뒤지고, 자신의 거주지 관할 구청인 부산 북구청 등 여러 기관에도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아동복지전문기관, 보육원, 소방서 등 100여곳에 온정을 전했다. 이와 별도로 17년 동안 5개 단체에 정기적으로 해온 현금 기부도 꾸준히 이어갔다.

류씨 제공

단발성 기부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단체도 있었다. 소규모 아동 보호 시설을 뜻하는 ‘그룹홈’ 2곳에 아이들이 필요한 옷, 신발, 가방, 세탁기, 에어컨 등을 종종 보내게 된 것이다. 류씨는 “북구청을 통해 인연이 닿은 곳인데 기부하면서 그룹홈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다”며 “아이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여유 자금이 생길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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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부를 시작한 지 3년 5개월 만에 류씨는 목표를 달성했다. 류씨는 기부하는 동안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세한 후기글을 자주 올렸다고 한다. 언론에 소개된 적도 여러 차례다. 이에 일부 네티즌이 “과시하는 것이냐”고 비판한 적도 있지만, 류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글을 올린 이유는 한 가지였다. 한 명이라도 더 기부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류씨는 말했다.

“좋은 기운은 주변에 전염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글을 올리다 보면 사람들이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류씨 제공

글을 올린 덕분에 뜻밖의 ‘기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류씨는 한 달 전쯤 해피빈을 보던 중 천장 누수로 수리비 1000만원이 필요한 전남 구례의 한 그룹홈을 알게 됐다고 했다. 긴급히 수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혼자서 당장 1000만원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류씨는 자주 방문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도움을 청했다. 그 결과 24시간 만에 모금액이 달성됐다. 류씨는 “제가 평소에 기부 후기를 올리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급한 사안이 생겼을 때 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글을 계속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해피빈에 올라온 전남 구례의 한 그룹홈 후원 페이지. 류씨 제공

류씨는 긴 시간 기부를 해오며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우선 돕는다’이다. 류씨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아이들과 절대로 대면하지 않는다’라고 류씨는 말했다.

“저는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제가 그 아이들의 삶에 개입할 권리는 없는 거잖아요. 기관의 원장님, 선생님과는 긴밀하게 연락하지만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주로 물품을 택배로 보내고, 급할 땐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이용해 방문해요.”

세 번째는 ‘주변에 기부를 강요하지 않는다’이다. 류씨는 “이건 어쩌면 내가 내 마음 편하자고 시작한 일이자, 나만의 취미생활”이라며 “거창한 대의를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남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말은 있다고 했다. “누구든 가끔은 주변을 둘러봐 주시면 좋겠어요. 그냥 들여다보기만 하는 거죠. 그럼 언젠가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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