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나는 다시 가수다… 25년 만에 목사 은퇴 가수로 컴백 ‘윤항기’

국민일보

[얼굴] 나는 다시 가수다… 25년 만에 목사 은퇴 가수로 컴백 ‘윤항기’

입력 2015-02-28 02:06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기사사진

기사사진

역시 돌아온 전설이었다. 음악과 무대도 없이 손 마이크 하나로 충분했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3일 윤항기 목사가 서울 삼일대로 예음종합예술원에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트로트 신곡 ‘걱정을 말아요’를 부르고 있다.

기사사진

여동생 윤복희 권사와 함께한 젊은 시절의 윤항기 목사.
이전사진 다음사진
1 2 3
"이제 세상으로 다시 나가 어둠을 밝히고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세상 노래를 한다고 내가 목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목사 은퇴 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선교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5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하다 최근 담임목사직(예음교회)을 내려놓고 인생 3막을 위해 무대로 돌아온 윤항기(73) 목사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마치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마냥 설레어 보였다. 최근 인기 트로트 가수 태진아가 대표로 있는 진아기획과 손잡고 신곡 '걱정을 말아요'와 '당신편이야', '반짝반짝'을 내놓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다. 그는 왕년의 톱스타가 아니라 '37세(나이 숫자를 앞뒤로 바꿈) 신인가수'로 봐달라고 했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3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예음종합예술원에서 윤 목사를 만나 목회자로 살다가 다시 '세상 노래'를 부르게 된 사연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윤 목사는 1959년 미8군 무대에 서면서 가수활동을 시작, 1년 뒤 해병대 군악대를 거쳐 64년 한국 최초의 록그룹인 키보이스를 결성했다. 이어 70년대까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여러분’ ‘장밋빛 스카프’ ‘별이 빛나는 밤에’ ‘이거야 정말’ ‘해변으로 가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윤복희(68) 권사의 오빠인 그는 여동생의 최대 히트곡 ‘여러분’의 작사·작곡가로도 유명하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등 찬양 앨범도 여러 개 냈다.

그의 음악인생은 고난과 성취로 점철됐다. 윤 목사의 아버지는 현재 서울대 음대의 전신인 경성음악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성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일본 유학을 한 엘리트였다. 한국 현대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예술가 고(故) 윤부길(1912∼1957)이다. 그도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노래는커녕 극장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암울한 시대, 신산한 예술가의 삶을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 ‘끼’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성경자’라는 본명보다 ‘고향선’이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악극계 스타였다. 천재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였던 어머니는 일본 유학시절 아버지를 만나 ‘라미라가극단’에서 함께 활동했다.

유년시절, 그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의 마약 중독으로 인한 생존의 극한점에서 어머니마저 악극단 지방 공연 중 심장마비로 객사하는 비통함을 겪었다.

역경은 끝이 없었다. 그의 성장기는 온통 피눈물로 얼룩졌다. 마약에 빠진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까지, 행복했던 가정은 파탄나고 어린 남매는 청계천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칠흑 같은 어둠의 시대에 그를 이끌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하나님은 음악으로 남매를 당대 최고의 톱스타 자리에 오르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삶은 뭔가 공허하기만 했다. 어느 날, 폐결핵에 걸리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의 상처 속에서 아파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됐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목회자의 길이었다. 86년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한 뒤 9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목회자 길에 들어선 뒤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2000여년 전 강조했던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신앙의 힘은 아버지와 세상에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어둡고 가슴 아픈 노래의 곡조는 사라지고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행복이 가득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많은 이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던 그는 ‘음악신학원’(현 예음종합예술원)을 설립하고 교단(현 예장예음)까지 세웠다.



최근 그가 발표한 신곡 ‘걱정을 말아요’는 86년 음반 ‘웰컴 투 코리아’ 이후 29년 만이다. 윤 목사가 작곡을 하고 아내 정경신(68) 사모가 가사를 썼다. ‘걱정을 말아요’는 사실 지난해 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만 세월호 참사가 엄습하는 바람에 접어야 했다. 데뷔 55주년 기념 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윤 목사는 세월호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면서 때를 기다리다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예음콘서바토리에서 쇼케이스를 열었다.

윤 목사는 “경쾌한 멜로디의 ‘걱정을 말아요’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노래”라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갑오년을 넘긴 한국교회는 물론 온 국민의 응원가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목회자에서 다시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컴백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내가 전에 만든 곡의 사연을 알면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나와 동생 복희가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가슴으로 쓰고 부른 노래다. 이사야서 41장 10절을 읽고 기도하면서 만들었다. 이때 성령을 받았다.”

-‘여러분’의 작사자가 동생이라는 설도 있는데.

“(허허) 그 얘기를 또 해야 하나. 몇 년 전 동생이 모 TV 방송에 출연했다가 거기서 한 말이 불씨가 됐다. 나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고 기자가 묻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는데. 이게 또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은 이렇다. 동생이 원곡의 가사를 영어로 번역한 이는 자신이라고 한 게 와전된 것이었다.”

-4년 전 가수 임재범이 ‘여러분’을 불러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특별한 사이인가.

“그 친구, 참 노래를 잘 부르더라. 방송이 나간 후 찾아와서 만났다. 간증과 음악을 주제로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질 무렵,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의 암투병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목회자들이 은퇴 후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목회만 천직으로 알고 산 분일수록 사실 세상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경비원, 미화원, 택시기사 등 할 수 있는 일도 맘 놓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일하고 싶지만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극인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목회에 미련은 없나.

“지난 사반세기 오로지 목회만을 위해 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겠나. 후임 목사에게 모두 맡기고 나는 훌훌 털고 내려왔다. 원로목사란 말도 솔직히 부담스럽다. 이제 나는 다시 가수다.”

-음악신학원을 설립하고 교단까지 세웠다. 음악이란 인생의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음악을 가르치시고 목사가 되게 하신 것은, 찬양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주님을 노래하고 나아가 나와 같은 이들을 더 길러내라는 뜻으로 믿었다. 그 사명을 붙들고 지금껏 달려왔다. 그래서 행복하다.”

-요즘 어떤 꿈을 꾸고 있나.

“5년 후면 데뷔 60주년을 맞는다. 29년 전 웰컴 투 코리아를 불렀는데 동생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웰컴 투 통일코리아’(가제목)를 부르는 게 소망이다. 꿈같은 소린가∼(하하).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25년을 목사로 살아온 그는, 이제 사명을 완수하고 또 다른 사명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많이 본 기사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