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모두를 용서함으로써 ‘분노의 노예’서 벗어났습니다… 美 필라델피아 첫 韓人 시의원 데이비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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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모두를 용서함으로써 ‘분노의 노예’서 벗어났습니다… 美 필라델피아 첫 韓人 시의원 데이비드 오

사촌 형 죽음·선거 운동 중 허위보도…

입력 2015-07-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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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교회를 세운 오기항 목사의 아들인 데이비드오는 2011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 됐다. 데이비드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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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의원이 지난해 1월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열린 ‘제1회 한인의 날’에 참가한 모습. 데이비드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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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폭력과 증오에 대해 사랑과 용서로 화답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묻게 된다. 최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이매뉴얼 감리교회에서 총기 난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가해자를 용서했다는 일련의 보도에 우리는 놀랐다. 1958년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10대 청소년들의 집단폭력에 유학생 아들을 잃은 한국인 아버지가 가해자를 선처해 달라고 미국에 보낸 편지에 감동했다.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자 이 편지를 보낸 가족의 일원인 데이비드 오(한국명 오승호·55)를 최근 현지 시 청사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용서에 대해 단호했다. “참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을 용서했다. 숨진 사촌형 오인호(당시 26세)씨는 오 의원의 부친 오기항(당시 37세) 목사와 필라델피아 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펜실베니아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오 의원이 태어나기 2년 전이다. 인호씨는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다 흑인 청소년 11명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댄스파티 입장권을 구입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랬다고 했다. 현지 신문들은 가해자들에게 극형을 내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인호씨의 부친이자 오 의원의 숙부인 오기병 장로가 가족회의 후 필라델피아 시 당국에 진정서를 보냈다. 오 장로는 ‘인호의 사망 소식에 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가해자들의 영혼과 인간성 마비도 슬프게 생각합니다’라며 무죄 선고 등 선처를 요청했다. 오 의원은 용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언급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마 18:21∼22). 수백만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그의 가족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범죄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적 빈곤이 직접적 살해 동기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후일 직업교육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성금을 기탁합니다’라며 500달러를 전달했다. 이에 감동한 필라델피아시는 ‘오인호기념장학금’을 마련했고 당시 미국 장로교회는 이 사건을 ‘한국에서 온 편지’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 5000여 교회에서 상영했다.

53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교회를 개척했던 오 의원의 부친은 필라델피아에 ‘오인호기념 코리아센터’를 짓고 교포2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아시아인들에게 법률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했다. 오 목사의 삼남인 오 의원은 뉴저지주 럿거스대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됐고, 군에서 검사로 활약했다.

오 장로는 당시 편지 서두에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승화(To Turn Sorrow into Christian Purpose, 오인호의 묘비명)’시켜 주신 데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우리는 가해자의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길 원합니다. 이것이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서 연결하는 길’이라고 마무리했다.

올해 11월 재선을 준비 중인 오 의원은 4년 전 선거 운동을 회고했다. “상대 후보 입김인지 당시 언론에 제 군 경력이 허위라는 보도가 나갔습니다. 그 오보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3가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군 복무, 검사 경력, 명예로운 가족…. 패배를 전망했고, 전 좌절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그는 시의원 17명 중 유일한 아시아계 당선자가 됐다.

“하나님이 제게 승리를 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군, 검사, 가족은 마음속 저의 ‘금송아지(Golden Calf)’ 우상이었습니다. 만약 그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우상을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로소 전 내려놓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간증이 생긴 거죠. 하하. 어떤 큰 불행이 닥치건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를 악의적으로 비방한 이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제가 당시 일에 대해 계속 화를 갖고 있다면 저는 결국 ‘분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시의원으로서 열심히 일했습니다.(미소)” 대단하다는 평가에 그는 정색했다. “어디에도 좋은 사람(Good Man)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천으로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임기 중 직장 여성의 수유 시간을 보장하는 법안 등을 마련했고 지난해 1월엔 필라델피아 한인의 날(매년 1월 13일)을 제정했다. 오 의원은 아내 정희선씨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선의를 갖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의 가족사에 흐르는 사랑 온유 평화가 느껴졌다. 가족을 대표했던 오 장로는 당시 편지에서 폭력에 사랑으로 화답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요,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매뉴얼 감리교회 총기 난사로 어머니를 잃었으나 가해자를 용서를 한 아들은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시기에”라고 했다.

필라델피아=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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