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유찬열] ‘국정원 논란’에서 우려되는 점들

국민일보

[시사풍향계-유찬열] ‘국정원 논란’에서 우려되는 점들

“동일한 해킹 프로그램 구입한 30여개 나라에선 국익 고려해 갈등 빚지 않아”

입력 2015-07-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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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가정보원의 대테러, 대공 업무 부서로부터 기술적 책임을 위임받아 감청 업무를 수행하던 과장급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가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구매한 해킹 프로그램으로 테러 및 대공 용의자들의 휴대폰을 감청한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국내 사찰용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과연 그가 자살할 정도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행위에 대한 판단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않았고, 국정원은 전모를 밝히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 사용 내역을 국회에 공개하고 일부 삭제된 파일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원상 복구하겠다고 했다.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만약 그가 법을 위반했더라도 그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면 그것으로 법치와 정의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법치다.

그렇지만 그가 비극적 결말을 선택한 것은 법에 위배될 것을 우려했다기보다 오히려 사회적 편견이나 비난, 주변으로부터 받는 감당하지 못할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로를 아끼는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강조함에도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일반시민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두 번째는 우리 정치와 사회가 너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여당과 야당은 철천지원수같이 행동한다.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여야의 입장이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 해킹 프로그램 사태도 그렇다. 동일한 프로그램을 미국 독일 러시아 체코 싱가포르 등 30여개 국가가 구입했고, 그 나라의 의회와 언론, 시민들이 그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가파른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오늘날의 정치권 행태가 후세에게 임진왜란 당시와 그 이후 국익보다는 정파 갈등을 중시했던 때와 비슷하게 비치지 않을까. 나아가 정치권의 갈등은 국민의 편 가르기로 이어진다. 국민들도 이념적, 지역적 편 가르기로 인해 점점 더 서로에게 지치고 더 멀어져 간다. 투표 행태에서 지역 몰표가 쏟아져 나오고, 이념 대결에서 상대방에 대한 설득보다 자기 편 결집에 집착하는 현상은 서글픈 현실이다.

세 번째는 국정원이라는 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정치나 사회 현실은 국가 정보기관이 얼마나 국내 정치에 개입됐는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획득하고, 특히 우리와 체제 대결을 벌이는 북한에 관해 얼마나 많은 필수 정보를 취득해 그것을 우리의 국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감청정보 수집을 위해 10만명의 요원이 일하는 에셜론(Echelon)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또 미국의 FBI는 대테러, 방첩, 산업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나.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무엇이 미래 국익에 더 중요한지 잘 판단해야 한다. 미국 CIA,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의 정보활동이 그들 국가 이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잘 알려져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0년 조지 테닛 국장 당시 CIA가 올린 보고서에서 알카에다의 국제 테러가 이라크나 북한의 위협보다 더 시급한 안보 위협이라고 지적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9·11사태 예방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유찬열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