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온정주의

국민일보

[한마당-김명호] 온정주의

입력 2015-08-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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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溫情)은 ‘따뜻한 정이나 마음’ 또는 ‘깊은 인정’을 뜻한다. 국어사전에는 온정주의가 ‘아랫사람에 대하여 냉정한 이해타산으로만 대하지 아니하고, 원칙을 누그러뜨려 위안, 이해(理解) 따위의 온정으로 대하는 주의’라고 풀이돼 있다. ‘그 사람 온정주의적이다’는 말은 일을 처리하거나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온정적으로 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온정주의적이라는 말은 참 따뜻하고 좋은 어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사전에도 있듯이 ‘원칙을 누그러뜨리는’ 행위를 할 때 곧잘 쓰인다. 누구의 잘못을 봐주거나, 어이없는 포상을 하는 등의 행태가 나타날 때 온정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곤 한다. 현실적으로는 좀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남성 교사들의 여학생·여교사에 대한 성범죄는 교육계의 폐쇄적·온정주의적 문화에서 기인했다. 초·중·고교장총연합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40여개 교원 단체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교단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교육계의 폐쇄적, 온정주의 문화’를 지목하고 이를 없애겠다고 했으니 정확한 분석일 게다. 비리가 발생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적당히 지나가고, 그러니 또 발생하고…. 교육계뿐이고, 성범죄뿐이랴.

끼리끼리 문화, 특권 문화가 강한 조직일수록 온정주의는 기승을 부린다. 서로 잘못을 눈감아주고 적당히 넘어가니 도덕적 해이는 만연해진다. 나도 그럴 수 있으니 그때 봐 달라는 의미도 있다. 조직 내 견제와 균형의 기능은 없어지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엄격히 원칙을 따지고 신상필벌하려 하면 ‘뭐 그렇게 빡빡하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려고 해’ ‘귀찮게 왜 저래’라는 저항이 뛰따른다. 가부장제적 유교 문화가 발달된 우리 사회에서는 윗사람의 온정주의적 행위는 오히려 대범하고 통큰 행위 쯤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엊그제 황교안 총리가 성폭력 등 4대악 근절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조치가 느슨하거나 온정주의적이라는 우려들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 모든 조직에서 왜곡된 온정주의는 합리성과 진취성을 갉아먹는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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