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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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

입력 2015-10-0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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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이 말씀은 교회에 오래 다니는 성도들이 마음속으로 거부하는 구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신보다 늦게 믿은 성도가 먼저 임직을 받고 리더십을 맡는 것에 불편한 성도들이 이 구절에 상처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씀의 진의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기는 역설이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했고 “주를 위하여 잃는 것을 견디는 자에게는 여러 배를 주시고 영생을 상속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질문을 던진 동기를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선천적 종교 심리를 보여준다. 종교에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이 우리의 노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베드로는 천국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종교적 사고만 했다. 베드로는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의 선천적인 사고방식 속에 갇혀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는 데에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기대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

확실히 제자들은 먼저 된 자이다. 그들을 향한 축복과 영광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헌신의 대가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나중 된 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에게 만연된 보상심리와 특권의식, 우월의식에 답하기 위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들었다(마 20장).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품삯을 지불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경제 질서를 뒤집는 불공정한 처우이다. 만약 당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모든 조합원들은 파업에 돌입했을 것이다. 이 비유는 사회적 정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천국으로 받아들이는 원칙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포도원 주인은 불의한 것이 아니라 늦게 온 자들에게 관대한 사랑을 베푼 것뿐이다.

하루 종일 일한 일꾼은 당연히 불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불평은 주인이 악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선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주인이 제일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았던 비유처럼 하나님께는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왜 이같이 하시는가. 선하시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이 먼저 예수님을 만나 더 많이 희생했으므로 뒤에 믿은 사람들과는 대우가 달라야 한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은 세상의 논리이지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이후엔 분명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순교한 사도들도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았기에 천국에서 반드시 높은 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순교하면서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고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불평할 이유가 많았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사람들을 용납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러나 종교적 경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 사랑의 법칙을 가로막는 법칙이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사람과 속된 사람을 구분했다. 그들은 사람을 먼저 된 사람과 나중 된 사람으로 구분했다. 먼저 되었다는 헬라어에는 ‘첫 번째’라는 의미도 있지만 ‘고결한(honourable)’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에 유의하자.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병든 지도자들이었다.

비교가 만들어낸 공로의식과 보상의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없다. 우리 마음 속에는 여전히 바리새 의식이 숨어있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은 과대평가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은 과소평가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우리의 실체를 직시한다면 우리는 하루 종일 일한 일꾼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해 방황하다가 뒤늦게 들어온 일꾼들이다. 한국교회 위기의 이면에는 먼저 되었다고 자처하며 공로의식에 빠진 리더십들이 있다. 주님의 포도원에 불러주신 것만으로 감사하고 이를 보상으로 받아들일 때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것이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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